* 신화적 세계의 아우라와 그 번역 : 심혜영 역 『붉은 수수밭』내가 뽑은 번역서 - 중국어권
글 / 성민엽_평론가, 서울대 중문과 교수. 1956년생. 평론집 『지성과 실천』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 『문학의 빈곤』 등
중국어권의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물론 중국어로 씌어진 것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 한자문화권에서 보편서면어(普遍書面語)로 사용되었던 한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문으로 된 문학작품의 한글 번역은 반드시 외국문학 번역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일단 중국어권에서 나온 한문 문학의 한글 번역으로 좁혀 생각한다면 그 최고의 번역으로는 의당 『두시언해』가 꼽혀야 할 것이다. 『두시언해』의 교묘한 직역은 번역 문학의 한 전범이다.
중국어 문학의 한글 번역 중에서는 해방 직후에 김광주 선생이 루쉰(魯迅) 소설을 번역한 것을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번역은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적 태도가 약점이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말의 싱싱한 구사를 원동력으로 하는 능란한 의역이 단연 압권이다.
근자의 번역 중에는 심혜영 교수가 번역한 모옌(莫言)의 소설 『붉은 수수밭』(문학과지성사, 1997)을 추천하고 싶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장이모우(張藝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紅高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작 소설 자체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 사실 소설과 영화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나타나며, 어느 편이냐 하면 소설 쪽이 한층 더 깊이가 있고 의미가 풍부하다(영화는 소설을 많이 단순화했다). 198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뿌리찾기’파라고 불리는 유파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서, 형식상으로는 아방가르드를 추구하고 내용상으로는 전통의 뿌리를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추구되는 전통은 유교적인 것이 아니라 무속적이고 원시주의적인 것인 바, 그것이 아방가르드적 형식과 맞물려 일종의 신화적 세계를 빚어내며 원시적 생명력으로 충만한 인간이라는 상징을 제시하고 있다(작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오싱젠의 『영산』도 신화성은 약하지만 기본적으로 유사한 성격의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문체의 특이성으로 말미암아 번역하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역자는 직역과 의역을 적절히 섞어가며 기표 차원의 번역에 상당한 충실을 기해 원작의 아우라를 잘 살려내고 있다. 이만하면 번역문학의 한 모범적 사례로 꼽힐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