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역본으로 만나는 중남미문학의 정수 : 조구호 역 『백년의 고독』내가 뽑은 번역서 - 스페인어권
글 / 나송주_번역가, 한국외국어대 외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1965년생. 역서 『질투심 많은 늙은 이』 등
중남미문학은 20세기에 보르헤스를 필두로, 고갈된 1세계의 글쓰기를 대신하는 세계문학의 중심역할을 수행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서구인들이 걱정했던 ‘20세기 소설의 죽음’을 한낮 기우로 만들기나 하듯이, 『백년의 고독』(1967년)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우리들에게는 마술적 사실주의, 마콘도, 근친상간, 현실과 환상의 혼합, 고독, 메타픽션 같은 수많은 토론 거리들을 남긴 걸작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런 훌륭한 중남미 문학작품들을 영역본에 의존해왔다. 이번에 출판된 『백년의 고독』(조구호 역, 2000년, 민음사)은 영역본이 아닌 스페인어 원작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스페인어 전공자들과 외국 문학에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이 희망하는 원본의 충실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중남미 문학은 우리와는 지리적․문화적인 차이가 워낙 클 뿐만 아니라, 그 원작이 갖는 특징으로 들 수 있는 다의성,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혼돈으로 말미암아 난해한 소설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출판된 스페인어 직역본에서는 독자들을 위한 성실한 주석으로 소설의 재미와 중남미 문화의 이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안겨주었다. 그 예로써 플라타노, 말랑가, 유카, 냐메, 구아카마야 같은 식물 이름들, 그리고 속담에 대한 충실한 설명들, 보통의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마력을 지녔다고 믿어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맸던 현자의 알(靈卵), 기름에 튀긴 돼지 비계인 치차론, 풀이나 나무를 벨 때 쓰는 칼인 마체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중남미의 문화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독자를 제외한 일반 독자들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들이어서 책읽기에 장애요소로 인식된다. 따라서 명쾌한 주석 없이는 중남미 문학작품을 완전히 소화한다는 것이 어렵다. 이런 번역상의 문제점들을 말끔이 해결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의 자랑거리는 원문에 대한 충실한 번역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문맥상의 표현들도 원작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매끄럽고 성실하게 번역한 덕분으로 마르케스의 원작에 대한 의심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호세 아르카디아 부엔디아와 탐험대가 자석으로 강바닥에서 끌어올린 갑옷을 뜯는 장면에서, “구리 로킷(사진, 머리털, 기념품 따위를 넣어 목걸이 등에 다는 작은 금합이다)을 건 석회처럼 변한 해골 하나가 들어 있었다”라는 구절은 충실한 번역의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억 속의 잔상들과 일상의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이여! 이 소설을 통하여 낮선 글쓰기에 대한 당혹감에서 해방되어 상상의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