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 번역에 있어서의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옮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작에 담겨있는 사상과 문화를 함께 옮겨야 하는 소명이 숨어 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번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해당 외국어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적절한 우리말 표현이 뒤따라야 한다. 문학 번역은 언어 구조와 두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충실성과 가독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험난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문제들을 안은 채 조금씩 발전해 왔다.
외국 문학 작품의 우리말 번역은 1885년 이수연의 『신약 마가젼 복음셔 언해』를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한 해에 1천여권이 넘게 시장에 나오고 있으며 이는 총 문학 도서 중 24.8%에 해당한다(1999년 1,247종, 한국출판연감).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나 출판 문화의 개화기를 맞이한 50년대에는 출판사들이 주로 세계문학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했으며 양주동 박사가 T. S. 엘리어트 전집을 번역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60년대에는 5․16에 이은 군사정부의 등장으로 동구, 중국 및 제 3세계 문학의 소개는 전무했던 반면 서구진영의 문학이 급속도로 번역되어 전집류와 문고류가 크게 증가하였다.
70년대는 번역문학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과 시집, 수필집 등이 전집으로 출판되었고 제 3세계 문학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이 60년대 2종에서 25종에 이르기도 했지만 공산권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던 창작과비평사는 문을 닫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80년대에는 70년대의 수요를 넘는 공급의 영향으로 양적으로는 하강곡선을 그렸다. 다만 세계적인 화해 분위기와 사회주의 국가와의 수교, 내적인 민주화 욕구 등으로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사회주의권 문학이 급격히 소개된 점이 특징이다. 이때에 이르러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고리키의 『어머니』가 번역되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UCC)에 가입함에 따라 저작권 보호 문제로 외국문학의 번역은 근본적인 환경 변화를 맞이하였다.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한 이후로 번역물 출판이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변하면서 저작권 대행사를 통한 교섭 및 계약이 꾸준히 늘어났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외국문학의 번역, 출판은 원저작물의 국가 편중, 중복 출판, 중역과 오역, 전문인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냈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전집류들 대부분은 60～70년대에 번역된 것을 수정, 증보한 것으로 오역이 많고 그나마 중고생을 위한 문고판이 대부분이다. 서반아어권이나 동구어권, 제 3세계 문학들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기는 중역이 대부분으로 제대로 된 번역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기 전에는 출판계 전 분야에서 중복, 유사 출판이 다반사였다. 1995년 교보문고 조사를 보면 『어린 왕자』 75종, 『데미안』 48종, 『좁은문』 44종, 『제인 에어』 35종이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되었다. 번역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은 전문 인력의 부족이다. 60년대 여러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세계문학전집을 내면서 전문 번역가가 부족하자 주로 대학 교수들에게 번역을 맡겼다. 소수의 양심적인 번역가를 제외하고는 원고료만 챙기고 번역은 조교나 대학원생에게 시켰다. 장(章)별로 찢어 맡아 단기간에 이루어진 번역이 대부분이다 보니 저질 번역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오역과 졸역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번역물과 번역가를 낮게 평가하게 되었고 올바른 외국문학의 수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낮은 번역료도 문제다. 한 작품을 번역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이 투입되지만 대가는 보잘 것 없다. 번역활동 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보니 유능한 번역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출판사들도 상업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면서 불소급 조항에 의거 87년 이후 발행된 작품에만 저작권료를 지급했으나, 1996년 베른협약에 추가로 가입하면서 저작자의 권리를 사후 50년 동안 보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카뮈, 사르트르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새롭게 보호대상이 되었다. 출판사들은 꾸준한 매출이 보장되는 유명작가나 인기작가들의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고 저작권료는 터무니없이 오르게 되었다. 과다한 저작권료 지불은 외화 유출을 가져 왔고 과당, 저질 경쟁으로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반면에 상업성이 없는 학술 서적은 출판사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자비 출판도 어려운 실정이 되고 말았다.
외국 문학의 번역, 출판이 안고 있는 이와 같은 병폐들은 90년대 이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외국문학 전공자가 증가하고 이들에 의해 관련 연구와 작품 번역이 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정부나 기업이 설립한 재단들이 문학을 포함한 학술서 번역 지원에 나서면서 체계적인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 후 이루어진 외국문학의 번역은 한국문학의 발전과 이국(異國)문화의 이해에 기여하였다. 이제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으로 문화 교류가 일어나는 시대가 되었다. 인문학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학의 가치가 존중되고 있음을 공감하며 반역(反逆)의 번역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제 2의 창조적인 번역을 통해 세계문학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한국문학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