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전국 청소년 연극제 - 그래, 우리들의 꿈을 펼치자’에서 광주 살레시오여고의 「만선」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지난 2000년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이번 연극제 기간 동안 살레시오여고는 10월 27일 일요일 오후 2시에 공연을 펼쳤다. 추첨에 의해 공연일정이 결정되는 만큼 살레시오여고의 공연은 비교적 행운이었다. 다른 평일 공연에 비해 보다 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게 된 것은 무대에 선 이들 뿐 아니라 최고의 참가작을 관람하게 된 이들 모두에게 즐거움이었다. 물론 그들은 대상수상작 「만선」이 아니라 수상후보작 「만선」을 관람한 것이며 시상 결과를 확인하고 또 한 번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만선」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주로 수도권 지역의 학생들이었고, 광주에서 올라온 살레시오여고 친구들과 동문들은 간혹 눈에 띄었다. 살레시오여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참가학교가 전국 각 광역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하여 참가하였지만 정작 관람은 수도권 학생들만을 위한 자리가 되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한 문제를 해결하고 전국 청소년 연극제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지역 공연예술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이번 제 4회 대회부터 시범적으로 대상 수상작에 한해 해당 지역에서 재공연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대산문화재단, 한국연극협회, 예술의전당, 살레시오여고가 공동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한 제 4회 전국 청소년연극제 대상 수상작 재공연은 2000년 12월 5일 오후 7시 광주 청소년수련원, 12월 18일 오후 4시와 7시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모두 3차례 열렸다.
12월 18일 광주에는 오후부터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저녁에는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렸다. 광주의 심장부인 전남도청 앞에 자리잡은 남도예술회관에는 대형 현수막이 「만선」 공연을 알리고 있었다. 지하철 공사로 가뜩이나 복잡한 광주 도심은 겨울비까지 더해 퇴근시간 정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재공연 행사의 취지에 맞게 많은 지역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넓은 공연장 시설을 보며 더해갔다. 그러나 연이어 밀려들어오는 관객들에게 바쁘게 프로그램을 배포하는 살레시오 여고 연극반 ‘연하이(연극을 사랑하는 이들)’ 후배 반원들의 벅찬 표정에서 이날 공연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장에는 살레시오여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광주지역 전 고등학교 연극반원들과 지도교사들로 500여석 공연장이 가득 차 소극장에서 열렸던 서울 본선대회보다 더 성대한 느낌이었다. 같이 예선을 겨뤘던 경쟁자였지만 수상을 축하하고 전국을 제패한 실력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다른 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앙코르 무대에 오른 「만선」은 천승세의 소설 「만선」을 이희규 지도교사와 학생이 함께 각색한 것인데 지난(至難)한 우리의 정서를 말해주는 희곡으로 주어진 환경과 운명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인간의 몸부림을 확인시켜주는 비극이다. 외딴 어느 어촌을 배경으로 우직하게 그려지는 주인공 곰치의 만선을 향한 힘과 무모함, 본능적으로 자식을 보호하려는 한 맺힌 모성애를 지닌 곰치의 아내 구포댁, 가난을 이용해 이들을 착취하는 간교한 인물 임제순과 범쇠, 별처럼 빛나는 사랑을 나누지만 끝내 좌절하고 마는 곰치의 딸 슬슬이와 연철, 그리고 이들의 삶을 이어주고 꾸며주는 도삼과 성삼이가 부딪치는 ‘만선’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풍요에 감추어진 앞선 세대의 험난한 족적과 우리들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
솔직히 고등학생들이 이끌어가기에는 벅찬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류에 편승해 가볍게 연극을 하고 싶지는 않다”, “「만선」을 통해 극복과 인고의 미를 배우고 싶었다”는 담당교사와 학생들의 말처럼 이들은 삶의 진지함을 배우는 과정으로 이 연극을 해결해 나갔다. 물론 제 1회 전국 청소년 연극제 우수작품상, 2000년 동국대학교 전국 청소년 연극제 최우수작품상, 2000년 동랑연극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이들은 실력파이다.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곰치역의 이은혜와 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구포댁 김유진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으며 험한 남성역 등 개성있는 캐릭터들을 소화해낸 출연진 모두가 고등학생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바쁘고 고단한 고 3임에도 무대에서 열정을 다한 선배학생들의 장래가 기대되었고, 분주히 무대 주변을 뛰어다니는 후배 스태프들을 보며 살레시오여고 연극반 연하이의 힘은 계속되리라 확신했다. 학업성적 위주의 입시에서 외롭게 연극에 도전하는 용기있는 지역 연극반 학생들에게 격려가 되주었고, 문화혜택에 소외된 지방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의 자리가 된 이번 행사가 앞으로도 전국 곳곳으로 확대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