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뱃속에 긴 ‘창시’를 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짐승의 곱창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슬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곱창집 식탁에 응고된 기름방울에서 이 세상을 억울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눈물과 회한을 떠올린다는 것은 일종의 눈뜸이다. 왜 하필 광주 전남도청 근처, 외진 곱창집에서 그것도 문학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던 나이에 서러운 것이 치솟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광주가 아닌 수원이나 대전의 어느 곱창집에서 순대를 씹고 소주를 부었다면 긴 창시에 가득찬 울음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울음이 붉은 빛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 경우에 환경은 여지없이 시에 상관한다. 돌돌 말린 곱창이 듬성듬성 썰리는 핏빛 도마와 곱창집 아주머니의 일하는 손은 곱창집과 돼지띠인 나를 연결시켜주는 카오스였다.

나에게 시란, 그리고 문학이란 카오스속에서 하나의 정연한 질서를 발견하는 일이다. 서석동 어귀에서 그걸 씹었던 것이 1996년 봄이었으니 14대 총선 취재차 보름 가량 출장 가 있던 때였다. 나는 무엇을 씹었던가. 1980년 5․18 민주항쟁을 전후해 광주에 내려가 있었던 나에게 곱창은 단순한 술안주가 아니었다. 선거벽보가 덕지덕지한 골목길에서 역사는 낮은 것들을 외면하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날 밤 먹었던 것은 돼지의 창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였고 시간이었고 그 생김새처럼 길고 긴, 끝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무엇이었다. 곱창집에서 발견한 것은 사실과 사실 사이에 놓여있는 나의 존재였다. 나는 세상의 진실과 내적 진실 사이에 놓여 있었다. 여관으로 돌아와 「곱창집에서」, 「선거에 대하여」, 「세수」 그리고 아직 미발표인 두 어편을 연달아 끄적거렸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내가 태어난 서석동에 다시 돌아왔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난 것은 1992년 9월이었으니 꼬박 2년을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눈을 맞았다. 아침에 문을 나서면 무릎까지 내린 눈은 예사였고 자작나무 가지들은 휘어지다 못해 툭하고 분질러졌다. 눈의 온도가 인간의 체온보다 진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큰아버지의 집을 대여섯번 방문한 것도 번번히 눈내리는 겨울이었다. 알마티는 중앙아 재소한인들에 관한 자료가 묻혀 있는 곳이지만 자료를 찾는다는 것은 겉핑계였을 뿐, 그것은 언제나 잊혀진 무엇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에 살 당시에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1996년 초여름, 이번에는 러시아대선 취재를 위해 모스크바로 갔다. 숙소인 모스크바대학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 빗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새벽 1시쯤, 바깥은 어둡지 않았다. 유학시절 백야를 보려고 페테르부르크를 다섯 번이나 여행했을 때도 그런 감동은 없었다. 태양은 쉽사리 넘어가지 못한 채 보랏빛 빗줄기를 날리고 있었다. 그날 새벽 「백야」, 「돔텔레그라피」, 「고산족」을 끄적였다.

나는 안다. 시집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은 허명임을. 표사를 써주신 신경림 시인이 ‘순례의 이미지’를 지적했을 때 나는 결국 나를 찾아가는 순례자임이 밝혀졌다. 내 운명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에 시를 만났으니 무엇을 더 바랄 처지가 아니다. 더욱이 1999년, 가족과 떨어져 다시 광주에서 9개월 남짓 살기도 하였으니 여기엔 이승적 소관을 넘어선 운명적인 암시가 있는 것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이제 하나의 근본으로 돌아갈 뿐 새삼 내 삶을 증거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시에 담긴 진실의 힘이 남아있는 한 시집이 어리석은 나를 증거할 것이다. 시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네팔로 날아갔다. 잔주름진 히말라야의 계곡을 굽어볼 때 차창을 밝히던 밝은 빛은 내가 살아온 시간이었지만 ‘살고 싶은 아침’을 둘러싸고 있는 아우라는 거기에 빼곡한 절규의 문자가 아니라 삶은 결국 텅빈 어떤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나는 다시 시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이 삽화가 시집에 대한 몇몇 평문들을 보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살고 싶은 아침』은 재단의 ‘문학인 창작지원’을 받아 2000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

* * *

곱창집에서

나는 인정하지 못한다

나의 무덤은 광주도청이 아닌 것 같다

(아줌마 광주가 많이 변했소

머시라고요 난 암시랑토 않은디요

그저 밥 세끼 묵고 사는디 변할 것이 있간디요)

그래도 나는 인정하지 못한다

나의 무덤은 망월동이 아닌 것 같다

어둑한 곱창집 긴 통로 끝

하얀 소기름 한방울이 응고된 탁자에서

나는 입을 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자는 곱창을 썰고 상추를 씻고 소금을 담고

붉은 침묵을 잘랐다

나의 무덤은 여천 앞바다 씨프린스호가 침몰한

심연 아래 심연이다 그보다 더 깊은

광주의 침몰과 침묵을 나는 인정하지 못한다

어두운 기름을 가득 안고 가라앉은 유조선처럼

광주의 바다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파도가 흔들어댄다

소곱창 안에서도 파도는 출렁인다

거대한 초식동물의 꼬리까지 울음을 실어나르는

튼튼한 곱창은 기억을 씹어대는 위장이었다

무수한 융털돌기의 물결이 만들어낸

곱창의 기억은 느끼하다

길고 구불구불한 기억의 골목은

어둡고 질기다 곱창을 씹으며

나는 인정하기 시작한다

나의 무덤은 곱창일 것이다

적당히 질기고 적당히 길고 적당히 끈적거리는

한 소녀가 꽃잎을 실핀으로 꽂고

곱창 같은 골목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