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지원_번역가, 세종대 영문과 교수. 1951년생. 저서 『해학과 풍자의 문학』 『윌리엄 포크너 : 시간과 비극』, 역서 『전쟁과 인간』 등
이 소설은 나사니엘 호손이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인 브룩 농장(Brook Farm)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초절주의자들의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기획으로 이루어진 이 농장에서 호손은 1841년 4월부터 10월까지 활동적인 구성원으로 일곱 달을 보낸 뒤에 그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탈퇴했다. 처음에 브룩 농장은 그에게 가정을 마련해주고 결혼을 허용해 줄 수 있는 희망찬 설계처럼 보였다. 호손은 인간의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은 채 이념적이기보다는 이같은 실제적 이유 때문에 거기에 참여했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는 한 무리의 남녀가 원대한 꿈을 갖고 ‘블라이드데일’이라는 ‘행복의 골짜기’ (blithe + dale)에 모이나 점차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꿈이 좌절되고 마는 이야기이다. 블라이드데일과 같은 실험 농장에 대해서 호손이 내리는 마지막 평가는 이 작품 서문에 나오는 대로 “기본적으로 백일몽이지만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일찍이 서술자의 문제에 남달리 관심을 표명한 나사니엘 호손이 이전에 즐겨 사용했던 삼인칭 전지적 시점으로부터 탈피하여 일인칭 서술자를 과감히 등장시켜 기교가로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호손의 주요 로맨스 네 편 중 유일하게 일인칭으로 서술된 이 작품에서 호손은 마일스 커버데일(Miles Coverdale)이라는 수다스럽고 논평하기 좋아하는 서술자 - 참여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호손은 바로 이 인물에게 일인칭 형태의 기술적 중요성이라 할 불확정적이고 의심쩍은 귄위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일인칭 서술자의 상상력이라는 주관적이고 다소 편파적인 매개체를 통해 모든 사건들과 작중인물들의 초상화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에서 커버데일은 전형적인 일인칭 서술자의 두 가지 뚜렷한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작가의 목소리로서 서술자로서의 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이야기 속에 깊이 참여하는 주요 작중인물로서의 기능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보다 큰 구조상의 어려움은 그의 서술자로서의 기능에 의해 생겨난다. 커버데일은 고도로 자의식적이어서 행동자이기보다는 반영자이다. 그는 가장 서투른 서술 방식의 사용으로 인해 처음 읽는 독자들을 종종 당혹시킨다. 따라서 독자는 정확한 하나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커버데일의 표면적인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되고 그가 표현하는 모든 것을 일일이 검토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작품 전편에 걸쳐 부분적으로만 노출되는 분위기는 바로 ‘커버데일’(cover + dale), 즉 ‘골짜기를 덮는다’는 뜻의 이름과 함께 설정된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에서 우리의 관심은 세 명의 주요 인물들, 즉 홀링스워스(Hollingsworth), 제노비아(Zenobia), 프리실라(Priscilla)에게 집중된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서술자의 눈과 입을 통해 제시되기 때문에 우리 관심의 초점은 서술자인 커버데일에게 고정된다. 결국에 이 작품은 커버데일이 블라이드데일 모험에 직접 참여하고 그곳의 삶을 보고하는 형식을 기본 구조로 갖고 있다. 그는 실제로 그 모험을 경험한 지 12년이 지난 후에 그 이야기를 회상해 나간다. 작가인 호손은 커버데일 뒤에 숨어서 그를 따라다님으로써 소설의 세계로부터 한발 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호손은 커버데일을 통해 다른 작중인물들의 음모나 행동으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미학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블라이드데일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은 호손이 아니라 커버데일의 마음에서 반사되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호손이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에서 작업하는 형식은 호손의 전지적 관점에가 아니라 전적으로 커버데일의 극히 제한적인 시점에 의존한다. 발라드를 만들어 나가는 서술자로서의 커버데일은 사실상 이 책의 “의미와 형식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서술자로서의 성격 이해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의 이해를 위한 관건이자 그 형식에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해준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호손이 소설 기교의 대가인 헨리 제임스(Henry James) 못지 않게 이미 서술의 주체에 대해 대단히 관심을 갖고 고뇌한 흔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문학적 의의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서술자와 작가의 관계, 거기에서 파생되는 진술의 모호성과 서술자의 신뢰성 문제 등에 주목하는 이 소설은 호손의 기교가로서의 일면을 확실히 조명해 줄 것이다.
※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는 재단의 2000년도 ‘외국문학 번역지원’에 선정되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일환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