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해방후 한국문학사에 획을 긋는 이런저런 사건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작가 황석영씨의 방북사건을 들고 싶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남녘의 한 소설가가 1989년 3월 20일, 분단고착화 이후 44년만에 최초로 ‘금단(禁斷)의 땅’이라고 불리는 저 북녘 땅을 밟음으로써 한국은 물론 멀리 해외에까지 그 충격파를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 황석영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이후 만 4년 동안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사실상 정치적 망명생활을 해오다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던 1993년 4월 23일 귀국을 단행하였고, 이후 안기부와 공안검찰의 터무니없는 사상적 매도와 누명 속에서 장장 5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98년 3월 1일 그가 비록 특별사면의 형식으로 석방되었다고 하나 사상범이자, 양심수인 작가에게 5년이란 수감생활은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는 망명생활까지 합하면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을 조국과 우리문학의 현주소에서 떠나 있어야 했으니, 방북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그런데 하고많은 작가들 중 왜 하필이면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그 자신의 안위를 뿌리치고 분단체제의 금기에 도전했을까? 중편 『객지』와 대하장편 『장길산』 그리고 『한씨연대기』『무기의 그늘』 등 숱한 화제작으로 한국문단의 확고부동한 중진으로 자리잡은 그가 왜, 자신의 문학적 성공을 뒤로 한 채 실정법을 가로질러 북한 방문을 결행하게 되었는가?

작가 황석영씨는 인생 초입부터 기복 많은 삶을 자청한 사람이다. 가출과 출분, 막노동판과 수도승 생활, 그리고 월남전 참전에 이르기까지, 또한 70년대 민족문학 작가군들처럼 그 또한 민족․민중현실의 가장 첨예한 복판에서 문학과 삶과 운동을 일치시키고자 몸부림쳤다. 작가 황석영의 문학을 읽노라면 ‘문학은 다름아닌 체험이다’라는 괴테의 말이 떠오를 정도다. 그의 삶은 곧 그의 문학이 되었고, 그의 문학은 민족적․당대적 삶의 총체적 표현이자, 꿈이었다. 아울러 그는 이산가족이자, 실향민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족은 1949년 남하하게 되는데 평양 출신의 그의 모친은 남쪽에서의 삶은 임시에 지나지 않고,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늘상 강조하였다고 한다. 1986년에 그가 발표한 단편 「골짜기」를 보면 그의 모친께서 작고하시기 전 그간 애지중지 간직해온 이북의 집문서와 땅문서를 모두 불태우며 “이런 거 까탄에 고향에 못가디. 문서가 머이가. 쪽박을 차두 가야디” 하면서 없애버리는 대목이 나온다.

즉, 작가 황석영씨는 자신의 삶과 이력, 그리고 분단문제의 실상을 다각도로 조망한 여러 작품을 통해 그 스스로 분단시대의 작가임을 천명해왔고, 분단모순에 대해 자기 문학과 심신을 바쳐 싸울 때라야만 그 존재가치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소설 「골짜기」에서 암시하는 바처럼 언젠가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희생함으로써 결빙(結氷)의 분단체제를 깨뜨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1988년 7월 2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남북작가회담’ 개최를 전격 제의한다. 이는 분단 이후 민간 차원의 남북문학예술교류를 처음으로 주창한 것이었다. 그리고 5일 후 대통령 노태우씨가 ‘적대적 원수의 관계에서 동반자적 화해 관계’로 남북 관계를 전환하겠다고 이른바 7․7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남측의 ‘전민련’ 등 40여 단체가 북과의 대화를 제의하였고, 출판계에선 ‘북한 바로알기 운동’ 차원에서 『조선통사』, 『꽃파는 처녀』 등 북한 원전이 쏟아져 나와 날개돋친 듯 팔리게 된다. 한반도는 일순 민간 차원의 자주교류에의 열망으로 뜨겁게 휩싸이게 된다. 이때 작가 황석영씨는 작가회의의 민족문학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남북작가회담의 당위성을 힘차게 주창함은 물론 그해 12월 하순에 창립된 민예총 대변인으로서 남북 이질화 현상 극복과 민족동질성 회복작업에 문화예술인들이 적극 떨쳐나서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중순 남북작가회담 개최를 찬성하는 북한의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측의 공개서한을 전달받은 작가회의는 흥분과 감격 속에서 이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장에 고은 시인, 준비위원에 신경림, 천승세, 백낙청, 황석영씨 등이 선임되었고 바야흐로 분단 후 최초로 남북 문학인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작가 황석영씨는 민예총 창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가야 되겠다,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 시대의 보편성을 짊어져야 하는 작가가 북한땅을 직접 가서 보고들은 바를 객관적으로 써냄으로써 남북간의 불신을 해소하는데 일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자신이 먼저 분단의 철벽을 뛰어넘음으로써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면 봄이 오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굳힌 작가 황석영씨는 1989년 1월 어느날 민예총 담당 안기부 직원을 만나 “북에 갔다오고 싶은데 가도 좋으냐?”라고 그 의사를 타진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1주일 후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받는다. 이어 2월 중순경 민예총 김용태 사무총장 등과 함께 집권 민정당 사무총장인 이종찬 의원을 인사동에서 만나 그 자신의 방북의사를 흘리게 되는데 이때 이의원은 “작가가 갔다오면 여러 가지 성과가 있지 않겠느냐?”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런 절차를 거친 황석영씨는 작가회의의 후배 문인 강형철, 김사인을 인사동 탑골주점으로 불러 곧 방북하게 될 거라고 미리 귀띔해주고는 강형철 시인에게 북한 방문시 도움이 될 만한 서적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아울러 방북 1주일 전쯤에는 작가회의 근처 아현호프 집에서 10여명 안팎의 후배 문인들과의 술자리 도중 불쑥 “내가 곧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후배 문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설마 갈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했지만, 이내 그 용기에 찬사와 경의를 보내고, 건강히 잘 다녀오시라는 말씀을 건넸다.

그리고 지금에야 밝히는 얘기지만 방북에 앞서 황석영씨는 민예총 김용태 사무총장 등과 조직 차원에서 의견수렴을 거쳤다. 그러기에 1989년 4월 23일 평양에서 민예총 대변인 자격으로 북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측과 남북 문예교류의 내용과 방법을 상세히 담은 합의서에 서명할 수 있었고, 훗날 그 합의서 정신에 따라 통일미술전 등 여러 사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가회의 집행부와도 방북에 따른 의견 교환이 비공식 차원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황석영씨의 방북은 그 내용적으로 작가회의와 민예총의 대표자격을 가졌으나, 조직 보호의 차원에서 개인 자격의 방북으로 의견조정을 한 것이다.

1988년 2월 28일, 황석영씨는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간행된 『무기의 그늘』 일본어판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게 된다. 일본에 도착한 황석영씨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일본사회당 당수의 비서에게 방북의사를 밝히고, 북한 방문시 필요한 초청장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3월 16일, 황석영씨는 사회당 당수 도이 여사를 만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명의의 초청장을 전달받고 그 즉시 중국대사관으로 가서 통과비자를 발부 받았다.

토요일이던 3월 18일, 중국 민항기를 타고 도쿄에서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황석영씨는 평양행 비행기가 월요일에 출발하는 관계로 천안문 광장 등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기다리지만 그의 머릿속은 미지의 북한 땅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역사적인 방북이 이뤄지던 1989년 3월 20일 월요일 아침, 황석영씨는 베이징 공항에서 조선민항기에 탑승하였다. 그리고 1시간 30분만에 평양 북방의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였고, 감격과 흥분 속에 그 첫 발짝을 내딛게 된다. 분단 고착화 이후 44년 만에 최초로 남녘의 문학인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이다.

아리따운 한 소녀가 다가와 “선생님 조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며 바바리 차림의 작가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곧이어 문예총 백인준 위원장과 최영화 제1부위원장, 그리고 작가 최승칠씨 등이 다가와 그를 환영했다. 그러고는 백인준 위원장이 “잘 왔소, 이게 얼마만이오!” 하고 외쳤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긴 포옹을 서로 멈추지 않았다. 황석영씨의 북한 방문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