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피난민 행렬, 월남전 당시 폭격의 화염을 피해 질주하는 벌거벗은 소녀의 사진 등 퓰리처상(The Pulitzer Prize) 하면 지난 세기 전 세계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전달해준 언론보도 사진수상작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퓰리처상은 ‘저널리즘의 아카데미상’ 또는 ‘언론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언론 분야에서의 명성 뿐 아니라 문학상으로서도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퓰리처상은 신문발행인인 조셉 퓰리처(Joshep Pulitzer, 1878～1911)에 의해 만들어졌다. 헝가리 출신인 퓰리처는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1878년부터 신문경영에 뛰어들게 되었고 당시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 St. Louis Post-Dispatch>지와 <뉴욕 월드 New York World>지 등을 통해 언론인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의 사후 유언에 따라 1912년 컬럼비아대학에 저널리즘학과가 설립되었고 1917년 당시 2백만달러의 유산을 토대로 저널리즘과 문학 두 분야에서 퓰리처상 시상이 시작되었다.
현재 퓰리처상은 컬럼비아대학의 퓰리처상위원회에서 저널리즘 14개 부문, 문학 5개 부문, 드라마, 음악의 모두 4개 분야 21개 부문에서 그해 가장 탁월한 업적을 이룬 작품을 추천받아 선정, 시상하고 있다. 특히 문학분야는 처음 픽션, 역사서, 전기 또는 자서전의 3개 부문에서 시작하여 1922년 시, 1962년 넌픽션이 추가되어 모두 5개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퓰리처상은 같은 영어문화권의 문학상인 영국의 부커상(Booker Prize)과 달리 수상자를 미국인 만으로 한정하고 있다. 미국인에 의해 주로 미국인의 삶을 다룬 픽션, 미국사에 관한 역사서, 미국인이 쓴 전기, 자서전, 시, 넌픽션 등이 수상 대상이다. 이는 프랑스인에 의해 쓰여지거나 프랑스 국내에서 쓰여진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공쿠르상(Le Prix de Goncourt)보다 그 수상범위가 더 편협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상작을 살펴본다면 퓰리처상이 결코 미국인 만의 문학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한말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 양반가문의 4대에 걸친 삶을 통해 과도기 한국역사를 극적인 묘사와 치밀한 고증으로 세계에 알린 소설 『살아있는 갈대 The Living Reed』와 국내 아동구호사업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펄 벅(Pearls S. Buck)이 『대지 The Good Earth』로 1932년,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리지다 Gone with the Wind』의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이 1937년, 『에덴의 동쪽 East of the Eden』의 저자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를 통해 1940년,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의 헤밍웨이(Earnest Hemingway)가 1953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이중 펄 벅과 존 스타인벡, 헤밍웨이는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미국의 인종차별과 기성세대의 부도덕성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고발하여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영화화돼 아카데미상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2개 부문을 수상한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가 1961년 수상작이다. 작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였던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 역시 『거북섬 Turtle Island』으로 1975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퓰리처상 문학분야에는 보통 800여편 정도 작품이 심사에 올라 부문별로 최종 3편의 후보작 가운데 1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매년 5월에 열리는 퓰리처상 시상식은 그 위상에 걸맞지 않게 컬럼비아대학 법학도서관의 원형홀에서 수상자와 가족, 퓰리처상 및 컬럼비아대학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매우 검소하게 개최되며 텔리비전 중계도 하지 않는다. 소박한 시상식 뿐 아니라 심사에서도 위원회 관계자들과 저널리즘 심사위원들은 무보수로 참여하며, 다른 분야의 심사위원들는 오랜 기간의 심사에 대한 대가로 2천달러 정도를 지급받는다. 이러한 퓰리처상의 진행 과정은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퓰리처상재단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겉치레 뿐인 형식과 호화로움의 배제를 통해 상 고유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퓰리처상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pulitzer.org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