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군사력 등 힘의 우열을 비교하는 경우도 있고 인구, 영토 등 규모를 비교하는 경우, 생활수준, 행복지수와 각종 스포츠경기 또는 문화예술 수준의 비교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순위를 가릴 수 있으며 그럴 때마다 국민감정은 희비를 느끼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랫동안 극동의 한모퉁이에서 은둔국으로 자리잡고 있던 우리나라가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남북분단과 냉전, 유엔군이 참전했던 6․25전쟁, 월남참전, 그리고 88올림픽 정도였고 지금은 경제성장과 수출증대로 인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OECD 회원국이 될 정도의 성장국가로 투영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직도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은 한국을 중국문화의 일부로 보고 있거나 일본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며 심지어 국제정세에 어두운 사람들은 남북한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유력신문인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이며 저명한 국제문제 평론가인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러시아의 스파이 사건을 다룬 「Code Red」라는 칼럼에서 자기 딸들이(12세, 15세) 숙제를 하면서 “남한이 좋은 나라냐 북한이 좋은 나라냐”고 묻는데 놀랐다면서 “아마도 딸들은 남북한 어느 쪽이 우리 편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기술했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프리카 여러나라를 순방한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나라에선가 환영식장에 인공기를 게양하여 충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미국 미시건대학에 연구차 머물고 있는 어느 대학교수가 “매주 대형강당에서 중국학․일본학 세미나가 열리고 있는 데 비해 한국학 콜로키엄은 소형교실에서 한달에 한 번 정도 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자존심이 상하더라”고 신문에 투고한 것을 보고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은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몇가지 사례에서 우리 상품이 세계에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고 우리 여행객들이 지구촌을 누비다시피 하고 있지만 의외로 우리나라가 널리,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차에 최근 미국 몬태나주립대학 역사학 교수이며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인 웨스트(Philip West)씨 일행이 우리 재단을 방문, 『‘잊혀진 전쟁’을 회상하며 - 문학과 예술을 통해 본 한국전쟁 Remembering the ‘Forgotten War’ - The Korean War through Literature and Art』이라는 책자를 기증했다.
이 책자는 1999년 가을 몬태나대학에서 대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열린 한국전쟁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한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즉 참전군인, 정치인, 학자, 언론인, 사진작가, 문인, 예술가들이 보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발표했던 내용을 웨스트 교수와 고려대 서지문 교수의 공동편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책자가 17가지나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이 전쟁사와 국제정치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반해 이 책자에는 특히 문인과 예술인들이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한 것이었고 그 내용도 이념을 초월한 신선한 관점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전 주한미국대사인 그레그(Donald Gregg)씨는 문인들이 거침없이 쏟아낸 반전사상에 대해 다른 모임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이라면서 “미국은 소방수로서 한국의 가옥들이 전소되는 것을 막아주었는데 한국인들은 너무 많은 물을 뿌려 피해를 입었다고 불평하는 것 같다”고 비유해서 논평하기도 했다.
대화(Dialogue) 형식으로 진행된 그 심포지엄에는 한국 측에서 문인으로 재미교포 작가인 리처드 킴(한국명 김은국)과 박완서, 김원일, 홍성원, 이문열씨 등이 참가했다.
주한미국대사관 측에서는 웨스트 교수 일행의 방한과 이 책자의 출간을 기념하는 만찬모임을 베풀었는데 웨스트 교수는 이 자리에서 맨스필드재단 창립자인 맨스필드(Michael Joseph Mansfield) 전 주일대사의 석사학위 논문을 소개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그 논문에는 ‘1866년부터 1910년까지의 한미 외교관계(American Diplomatic Relations with Korea - 1866～1910)’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67년 전인 1934년에 작성되었다는 사실과 당시 미국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에 관한 연구논문이 한 대학원생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그 학생이 오랫동안 미 상원의원과 외교관을 지냈고 나중에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거물정치인으로 성장하였으며 말년에는 국제문제연구재단을 운영하면서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했다.
2001년 프리드먼 논설위원 딸들의 남북한에 대한 인식과 1934년 맨스필드 박사에 의해 작성된 한미 관계에 관한 논문 사이에 가로놓인 격차의 크기를 비교하면서 해외에서 한국학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