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통영엔 두 번째였다. 해군 시절 상륙 허가를 받아 잠시 들려서 세병관(洗兵館)과 해저터널을 둘러봤던 것이 20여년 전 첫 번째 방문이었고 이번이 그 두 번째였다. 첫 번째로 갔던 통영이 어른거린다. 당시 나는 작대기 두 개의 해군 수병이었다. 그 작대기 두 개는 수평선 위로 뜬 태양만큼이나 자랑스럽고 당당한 것이었다. “교육받다가 칵 디비져 자믄 되갔나 안되갔나”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다가 그것이 ‘교육받다가 엎드려 자면 안된다’는 말임을 알고 웃음이 나와 그것 때문에 교관(당시 그 교관의 별명은 살모사였다)에게 실컷 얻어맞았던 신병 시절을 지나 당당한 수병이 되어 한참 세월이 지나서 얻은 것이 일병 아니던가. 가끔 외출허가를 받아 진해와 마산간에 있는 마진터널을 넘을 때의 감격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는데 하루의 상륙증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가능하면 진해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 갔던 곳이 바로 내가 처음 가본 통영이었다. 그러나 낯설었다. 세병관에 들렸을 때나 해저터널을 걸을 때도 너무나 나 자신과 멀어보였다.

그런데 그때의 낯설음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나는 한국 현대 장편소설의 성과를 말할 때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그 예로 드는데 바로 그중 한 분인 박경리 선생의 고향을 찾아보는 일이란 실로 나에겐 먼길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더했던 것은 박경리 선생이 통영을 떠난지도 50여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가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통영에 가기 전에 박경리 선생과 통화를 했다. 박선생은 선생의 어머니께서 친가인 문화동에서 살았는데 박선생을 낳기 직전에 간창골이라는 친정으로 가서 자신을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씀하셨지만 확실한 것인가에 대해선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거기서 나고 세병관이 있는 제일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 가서 중학과정을 마쳤으며 거기에서는 기숙사생활을 했다는 것이 내가 들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결국 내가 의지할 것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내며 펴낸 『토지사전』에 적혀 있는 연보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연보 또한 한 사람의 작가적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으로서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 낯설 수밖에.

대신 나는 얼마간 자유스러운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4월이었다. 새벽에 도착한 마산에서 군항제가 열리고 있던 진해를 거쳐 거제도행 페리호를 탄 것은 오전 열시 경이었다. 새벽녘의 진해 벚꽃은 다소 침울했으나 뱃전을 때리는 물살은 싱싱했다. 스크루가 일으키는 하얀 뱃길을 뒤로 하며 거제도에 도착해서 다시 충무로 가는 택시를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통영 시청이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은 문화 부문을 담당하는 민영현 계장이었다. 해군사관학교 교수이며 문학평론가인 최영호 선생의 소개로 왔노라고 말하자 친절하게 나를 안내했다. 하지만 민영현 선생도 박경리 선생의 충무 시절을 말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워낙 대가이신데 자칫하면 누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은 박경리 선생의 진정한 고향은 분명 통영이라는 말이었다. 작품상의 고향인 평사리도 기념관이 있는데 그리고 뒤에 이주하신 원주에 토지문학관이 있는데 왜 통영에는 변변한 기념관 하나 세울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나를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박경리 선생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을 조금 못미친 곳에 있는 청마 거리였다. 얼마 전에 ‘청마거리’로 지정되었다는 곳은 후미진 골목길이었다. 그러나 그 골목을 따라가니 우체국이 나왔고 우체국 옆에는 청마의 「행복」이라는 시가 새겨진 조각품(?)이 있었다. 민 계장은 나에게 우체국 앞의 건물을 가리키면서 “저기 이층집에서 이영도 시인이 살았고 청마는 이층집의 불빛을 보면서 이 우체국에서 행복이라는 시를 썼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행복」이라는 시를 보니 너무나 분명하였다.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1연의 탄생 지점이 너무도 선명하였고 정녕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시구가 가슴에 들어와 나가지 않았다.

민영현 선생은 다시 조금 걸어 언덕길로 안내했다가 통영문화관 앞에서 양옥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반대편 언덕쪽을 가리키면서 “저기가 박경리 선생의 생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곳이 분명하지는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기사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생가를 그 누가 알 것인가! 나는 그곳에 직접 올라가려다 말고 박경리 선생이 다녔다는 통영초등학교를 물었다. 민 선생이 가리켜준 곳은 벚꽂이 하얗게 담장을 이룬 언덕 쪽이었다. 나는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생가보다도 유년의 시절을 더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곳은 차라리 초등학교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곳에 이르러서야 나는 비로소 박경리 선생의 어린 시절 한 자락을 분명히 알 수 있었고 그것을 매개해 준 것은 학교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였다. 300년 이상은 되어보이는 느티나무, 그렇다면 박경리 선생이 어린 시절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러나 그 느티나무는 연초록 빛을 뿜어 통영의 맑은 공기를 빛내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세병관과 담을 이룬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세병관 안에서 초등학교 쪽으로 고개를 들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직 이울지 않은 동백꽃이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봉을 탄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취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게 감추고 있는 통영시 그리고 무슨 일인지 고향을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박경리 선생, 그런 일들의 사이엔 무언가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의 더미가 있을 것이지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따님과 함께 전후의 아수라를 건너뛰면서 만났을 어떤 신산의 세월이 거기에 암초처럼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 점에서 아직 우리의 한국문학은 채 규명되지 않은 원시의 보고이며 동시에 거대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간직할 만한 문화적 틀들이 갖추어지지 않은 미숙아라는 생각도 갖게 했다.

학교 아래로 포구가 보였다. 나는 장편 『파시』를 떠올리고 선창이 있었던 곳을 물어 부둣가로 갔다. 선착장은 이사했고 대신 일을 마치고 정박한 배들이 코를 맞추어 부두에 걸린 밧줄을 의지삼아 찬찬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했다고, 기억하지 않는 풍광들은 이렇게 물결 위에 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얼핏 일러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