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정례_시인. 1955년생. 시집 『내 귓 속의 장대나무 숲』『햇빛 속에 호랑이』 등
팔릴 수 있는 것들로만 가득찬 세상을 상상해 본다. 모든 물건은 다 경제성만으로 그 가치를 따진다. 모든 시간 모든 공간도 다 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비는 시간은 있을 수 없고 빈터도 있을 수 없다.
팔리지 않는 잡풀 같은 것은 제초제에 의해 멸종된다. 모든 식물은 먹을 수 있는 것만 매달아야 한다. 열매든 꽃이든 잎이든 줄기든 식용 아니면 약용으로의 가치가 있어 인간에게 팔리지 않는 것은 멸종시키거나 아니면 유전자 조작으로 먹을 수 있는 부분만 확대해서 길러진다. 인간에게 당장 이익을 주기는 커녕 과수원을 망쳐놓는 까치같은 것, 너구리같은 것, 쥐나 바퀴벌레 모기 파리 같은 것은 멸종시킨다. 유전자 조작으로 날개 없는 닭을 만들고, 내장 없는 생선을 만들고, 젖통만 큰 우유 전용 젖소를 만든다.
팔리지 않는 물건을 만들거나 팔리지 않는 생각을 한다거나 팔리지 않는 공부를 하는 자들은 멸시를 당하거나 저절로 격리되었다가 사라진다. 안 팔리는 소설이나 시 같은 것을 쓰는 자, 인기 없는 노래를 부르거나 작곡하는 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붙잡고 있는 자, 당장 필요 없는 공자나 맹자, 플라톤의 말씀들 같은 낡은 정보는 도서관에서 추방된다. 대학에서 인문학과 예술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웃기는 헛소리를 하는 자들이 되고 그 말을 공부하는 자들은 격리되고 소외된다.
모든 거리는 다 상업지구가 되고 모든 지붕은 다 간판이 되고 모든 건물은 다 공장이나 상업공간이 된다. 그 많은 쓸모 없는 것들을 한데 모아 내버려야 하니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되기도 한다. 빈터가 혹 있다면 그 쓰레기들로 산을 이루게 되고 여러 개의 난지도 같은 게 생긴다.
인간들은 모두 효용가치가 큰 인간이 되어야 하므로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여유를 가지고 쉬었다가는 당장에 실업자가 된다. 특별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콩팥과 간의 일부를 떼거나 피를 빼내어 팔아야 한다. 남녀가 만나면 우선 상대에게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을지 속셈을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몸을 파는 것으로 사랑을 대체한다. 팔 수 있는 몸이 늙거나 병들면 상대는 헌 세간을 버리고 새 살림을 들여놓듯이 새 사람을 주문한다. 모두가 어쨌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장기간 일생동안 쉬지 않고 쓸모 있어야 한다. 늙은이와 병든 이는 재빨리 죽도록 하는 안락사 제도나 약이 만들어진다.
길가엔 잡풀이 날 흙이 없다. 교외의 경제성 없는 산들은 전부 골프장 스키장이 된다. 도시엔 빈터가 없다. 거리는 간판 투성이고 모든 매체의 정보는 결국 광고다. 문학과 예술은 오락화 상업화로 치닫는다. 예술가들은 사기꾼 아니면 장사꾼이 된다. 여유를 부리고 빈둥거리는 자는 바보 취급을 당하다 도태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착한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대신에 쓸모 있는 자 경제적 능력이 많은 자가 되어야 살아 남는다고 가르쳐야 한다.
징그러운, 끔찍한 세상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이건 단순한 상상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 같다.
“뭣땜에 팔리지도 않는 책을 재판을 찍나요?”
“팔리지도 않는 책은 갖다 놔서 뭐합니까?”
“이 책은 100만부나 팔렸는데 나쁜책이라니요?”
등의 말들을 연속해서 듣는다.
정말 안 팔리는 책을 쓰는 비베스트셀러 작가들, 한심한 시인들, 유유자적하는 철학자들은 이 베스트의 대열에 밀려 사라져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