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 전 런던으로부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하여 1백여 명의 외국인들이 그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펼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몇몇 국가만의 외교적 문제일지도 모를 사안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에서 온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한국 및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그러한 성명을 발표했다는 데에 적지 않은 놀라움과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들은 유럽한국학회(AKSE)의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해외의 한국학자들이었고 이날 성명을 주도한 이는 함부르크대의 베르너 삿세(Werner Sasse) 교수였다.
삿세 교수는 유럽의 한국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유럽한국학회의 회장이자 함부르크대 한국학과의 학과장이다. 함부르크대에는 일본학, 중국학, 한국학 등을 연구하는 독일에서 가장 큰 아시아학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 1992년 설립된 한국학과는 독일 한국학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히며 유럽에서도 상당한 지위에 올라있다. 함부르크대 한국학과장인 삿세 교수가 유럽한국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10년이 채 안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함부르크대 한국학과는 학부과정에서부터 석사, 박사과정까지 갖춘 완전한 정식학과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학) 및 한국문화(사), 한국고전․현대문학 등으로 특화된 전공과정과 함께 규모는 작지만 한국학 도서관과 전담 사서도 있다. 학과장인 베르너 삿세 교수를 비롯한 안정희(연구조교), 오명호, 이강선(강사), 헬렌 강(사서) 등이 한국학과의 주역이다.
이곳에는 비교적 체계적인 연구기반에 이끌려 멀리에서 유학을 오는 학생들도 많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기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해외 한국학계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두르소 빈첸자(D'Urso Vincenza, 이탈리아 카포스카리대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대학은 독일의 어느 대학보다 한국, 그리고 재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함부르크 주정부의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뒷받침되어, ‘한국 다(茶)잔치’가 함부르크대에서 열리기도 했고, 한독문학교류의 일환으로 펼쳐진 ‘한국문학주간’ 행사를 함부르크대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삿세 교수는 재단의 지원으로 『월인천강지곡』을 번역하여 곧 출판을 앞두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빈첸자 교수 또한 재단의 지원을 받아 기녀들의 시조에 대한 번역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몇해 전 우리나라가 IMF 체제로 경제가 어려울 때 여러 재단이나 기업의 해외 한국학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독일의 어느 대학에서는 한국학과를 폐지하였다. 본국의 재정적 지원 없이는 해외에서의 한국학이 독립적으로 존재할만한 학문영역이 아닌 것인지,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시절을 거치면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며 독일 한국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함부르크대. 한국학과의 교수 및 학생들이 지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해외 한국학의 갈 길은 멀다. 삿세 교수는 다른 한국학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와 같이 3백년 전통의 중국학이나 일본학의 수준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다고 아쉬워한다. 한국학 전공자와 한국학 교원수의 증가에 발맞춘 우수한 연구자의 양성이 시급하겠다. 그렇다면 함부르크대 한국학과의 사명 또한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국학자라면 이젠 함부르크에서 오는 ‘벽안의 한국인’들을 눈여겨 볼만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