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한국에서 산 지 1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한국어를 알면 알수록 보통의 외국인이 아닌 특별한 외국인 - 일본인으로서 사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매주 경상도와 전라도를 왕래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나는, 최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작은 배려를, 국적을 밝히는 것으로 인해 깨고 싶지 않은 내 나름의 일종의 방어본능이라고 할까, 생활의 지혜라고 할까, 아무튼 심기가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러한 부자유스러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일본에 있으므로 현시점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인 줄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러한 특별한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 한국문학을 볼 때, 그 속에서 일본인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그것이 나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접해 온 소설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강경애의 「장산곶(長山串)」(1936년)과 허준의 「잔등(殘燈)」(1946년)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중일전쟁으로 돌입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층어민인 조선인과 일본인의 우정과 연대를 그렸고, 후자는 해방 직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중국에서 돌아오는 여로에서 본 패전국 일본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둘 다 그 근저에 작자의 깊은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고, 그 당시 시대를 생각할 때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던 작자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특히 전자의 결말 부분은 신사참배에 온 일본인이 갑작스러운 폭우로 앞다투어 피신하는 중에 혼자 버려진 노파를 업은 아들의 친구인 조선인을 그리면서, “황해에서 밀어닥친 노도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장산곶을 집어삼키고 있었다”고 하는 표현으로 일본의 패전을 암시했다. 또 후자에서는 일제에 의해 남편과 아들을 살해당한 노파가 아들과 뜻을 같이 했던 일본인 친구 얘기를 하면서, 누더기 꼴이 된 패전후의 잔류 일본인을 “어디 매가 갑니까. 벌겨 벗겨 놓고 보니 매 갈 데가 어딥니까”라고 말한다. 조선인․일본인의 구별 없이 초췌한 피난민에게 밤새도록 국밥을 준비하는 노파의 가게에 걸린 ‘잔등’은 나이도 차지 않은 소년이 밀정으로 활동하는 시대의 어둠을 비추는 󰡒인정의 등불󰡓이었다. 이 두 작품은 개인차원의 우정․공감에 기반을 두고, 국가차원에서의 지배-피지배관계를 비판한 점에서 공통하고 있다.

이들 작품을 읽으면서 같은 시대의 일본에서 비슷한 문학작품이 존재하였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그에 상통하는 작품을 찾아내지 못 했다. 근대 조선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인식의 약함이 일본문학에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흔히 말해지지만 근대 일본문학에 이만큼 이웃나라 이웃사람의 모습이 희박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람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데 사실 그 바탕에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의 이러한 무지, 무관심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82년 제1차 교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불충분하지만 재일한국․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대등한 인간으로서의 “시민의식”이 생겨났다. 그것이 지문날인 반대투쟁과정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시민의식”의 형성이라는 의미로써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만이 일본인 자신들도 더욱더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술한 두 작품은 냉전시대에는 둘 다 그 존재조차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었다. 냉전시대의 종언으로부터 10여 년, 작년의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에 의해 한반도에도 본격적인 ‘화해와 협력’, 즉 평화공존의 시대가 도래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보다 깊이 있는 문학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요구되어지고 있다. 국가를 넘어서 문학적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 공존․공생이라는 사실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장을 창출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강경애와 허준이 용기를 갖고 제시한 인간애와 우정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미력이나마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수한 한국 문학작품을 일본으로 소개하면서 21세기 초반 동아시아에 필요되는 ‘시민의식’ 형성에 이바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