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광림_극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원장. 1952년생. 희곡 「홍동지는 살아있다」「사랑 을 찾아서」「저 별이 위험하다」 등
나라가 흔들린다. 한마디로 개판이다. 대규모 패싸움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도둑들이 떼로 이합집산하며 강토를 어지럽힌다. 좀도둑은 예나 지금이나 그만그만한데 정치꾼, 장사꾼의 탈을 쓴 큰도둑들이 온갖 재주를 다 피우며 난리 법석이다. 배운 놈들은 도둑놈 곁에 붙어 알량한 지식 팔아먹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개털들은 이 북새통에 부화뇌동하며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천년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이다. 지난 20세기 초․중반만 하더라도 선비정신이 살아 있었다.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가 있었고 정쟁을 하더라도 명분을 중히 여겼으며 폭정을 하더라도 구실을 찾았고 문화의 소중함은 당연시되었다. 이런 것들이 언제 왜 사라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회의 구성원 중에 아름다운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추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추한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왜 아름다운 사람이 적을까? 그것은 이 사회가 이름다운 사람을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아름다운 사람을 길러내지 못했는가? 그것은 사회 생리와 구조에 문제가 있겠지만 직접적으로는 교육이 그 원인이다.
해방 후 우리 교육은 영․수․국에 중심을 두었다. 모든 국민을 영․수․국 잘하는 순서대로 한 줄로 세워 온 것이 우리 교육이다. 온 국민이 영․수․국을 잘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그런데도 영․수․국 중심의 교육이 날이 갈수록 확장되고 취직을 하기 위해서도 영․수․국이고 취직을 한 후에도 영․수․국이다. 실제로 집단의 리더 격이 되는 사오십대가 되면 비로소 영․수․국에서 해방된다. 이런 영․수․국을 왜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가? 이러니 학생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는 부모들도 ‘아이들 학교 안보내기 운동’을 벌인다. 교육 이민으로 일년에 수조원의 외화가 나가고 과외비 역시 일년에 수조원이 지출된다.
지금 많은 선진국들은 혁명적 교육 개혁을 진행 중이다. 일례로 프랑스에서는 ‘5+5+2 모델’을 채택했다. 처음 5년은 예술교육 중심의 과정이다. 다음 5년은 예술교육에 일반교육을 접목시키는 과정이다. 마지막 2년은 전문교육 과정이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소양 위에 2년만 배우면 된다는 생각이다. 대학은 소수의 사람만 간다. 잘난 사람이 아니라 학문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영․수․국 중심 교육, 입시 위주 교육, 취직 알선 교육, 일년에 이삼십만 명의 전공 실종자를 생산하는 대학교육 등에 비해 볼 때 얼마나 앞서 있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을 내다보고 교육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비단 교육을 담당한 정부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나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야 한다. 교육구조를 바꾸는 것은 곧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따라서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 모여 이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우리 어린이들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어야 좋은 세상이 될까? 답은 하나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인간성의 다양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 삶의 긍정적 측면을 받아들이고 이에 감사하는 사람, 우주 속에서 인간이 한없이 미약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 뭐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자기 발견이다. 자아를 통해 사물을 보는 눈을 길러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교육과 환경친화교육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위치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글쓰기야말로 자기 발견 과정의 핵심이다. 지난 10여년간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쳐 오면서 내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글을 쓰되 올바르게 쓸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보다 잘 쓰거나 멋있게 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쉽게 쓰기, 정직하게 쓰기, 자신이 아는 것 느낀 것을 제대로 표현하기, 자기 존재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글쓰기, 글쓰기를 통한 자기 창조. 어려서부터 이런 글쓰기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많아진다면 장차 이 나라에 아름다운 사람의 숫자가 늘어날 테고 따라서 지금보다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