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우리 나라 현대소설을 읽는 것은 1920년대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어 나에게 더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최근 나는 채만식의 작품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채만식의 글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계기는 학교 문학수업을 통해서였다. 일제 치하의 금강 하류 군산과 서울을 배경으로 당대 사회현실의 부조리와 갈등을 표현한 『탁류』를 다시 읽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폐해를 다시 한 번 간접적으로 접해보면서 안타까워 했었던 기억이 있다.
『탁류』를 읽고나서 채만식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탁류』 외의 작품을 찾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치숙」이었다.
‘치숙’이란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강한 호기심에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것이 흥미진진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부정적 인물(나)에 의해 긍정적 인물(아저씨)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나중에 사전을 통해 ‘치숙(痴叔)’의 뜻을 찾아보니 어리석은 아저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서술자인 나의 눈에 비쳐지는 아저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제목에서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한때 사회주의 운동으로 징역살이를 하고 폐병으로 누워 있는 아저씨란 인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과연 이런 전개로 작가는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화자로 설정되어 있는 ‘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작품의 내용이 겉과 속이 다름을 알게 된다. 즉, 표면적으로는 ‘나’의 생활 방식이 칭찬받고 아저씨의 생활방식이 비난받고 있지만 이면적으로는 칭찬과 비난의 대상이 바뀌어져 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미묘한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놀라운 역전 기법인지……. 채만식의 놀라운 구성방식에 칭찬을 하고 싶었다.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독특한 말하기 방식에 의해서였다. ‘나’는 아저씨를 비난하지만 오히려 아저씨의 삶의 태도는 반어를 통해 긍정되고, ‘나’는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말하기 방식에 의해서 작가의 숨은 의도가 드러나고 있었던 것에 환희를 느끼기까지 했다. 결국 ‘치숙’을 통해 작가는 표면상으로는 긍정적인 인물로 ‘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현실에 야합하는 ‘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현실을 잘못 인식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풍자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현실에서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아저씨를 표면적으로는 ‘나’가 비난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치하에서 현실에 순응하는 노예 근성을 가진 ‘나’를 비난하고 있다.
“사람이란 것은 누구를 물론하구 말이다. 아첨하는 것같이 더러운 게 없느니라.”
“아첨이요?”
“저, 위로는 제왕, 밑으로는 걸인, 그 모든 사람이 위선 시방이 제도의 이 세상에서 말이다. 제가끔 제 분수대루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말이다. 제 개성을 속여 가면서꺼정 생활에다가 아첨하는 것같이 더러운 것이 없고, 그런 사람같이 가련한 사람은 없느니라. 사람이란 진 밥 두 그릇이 하필 밥 한 그릇보다 더 배가 부른 건 아니니까.”
글 마지막 부분에서 ‘나’와 ‘아저씨’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개인의 이익과 안일을 위해서 국가와 민족을 등지고 현실에 순응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가. 작게는 친구 관계에서, 크게는 정치, 세계,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어 아첨을 하는 이들을 수없이 봐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가치관과 굳은 신념을 갖고 당당하게 때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정형화된 이상적인 삶의 이론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지를 실천하며 굳게 지키고 따르는 것이다. 또한 현실에서라도 무조건적인 순종은 위험하다. 이 글에서 풍자하고 있듯이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노예 근성을 가진 삶의 자세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비판할 줄도 알고 그로 인해 세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채만식의 「치숙」을 통해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굳은 신념을 꺼내어 다시 한 번 다짐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게 되어 흐뭇하다. 또한 내 인생에 있어서 확실한 신념을 지닐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값지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