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내가, 캐나다 밴쿠버라는 도시의 한 변두리(北밴쿠버)에서, 그 변두리에 알맞은 크기의 책방을 운영하던 시절, 향수병 탓에 일시 귀국을 한 일이 있었고, 그때 나는, 그들의 업적을 존중하여 만나보기를 원했던, 세 분 평론가(겸 교수)들과 저녁을 같이 한 일이 있었다. 그 중의 두 평론가는 프랑스에 유학하였으며, 한 분은 독일에 유학하여, 이미 갖춰갖고 있던 훌륭한 비평적 안목으로, 문화적으로는 세계의 앞장에 서 있다는 유럽을 익히고 돌아와, 우리 문학의 진흥을 위해 노심초사하고들 있던 이들이었다. “호서(湖西)에서는 아직도 마음의 우주를 개벽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관찰하고 있지 않다면, 호서라는 책은, 그 표지는 현란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데다, 그 내용은,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익어진 지혜와, 썩 잘 운영되고 있는 민주주의로 하여, 깊고, 넓고, 또 소피스티케이트하여, 무엇에서나 ‘담백’함을 구하는 호동인(湖東人)이 얼핏 오독을 했다 하면, 이런 독자를 대번에 홀려, 반호서인/반호동인이라는 투의(이건 별로 좋은 어휘 같지는 않지만, 다른 어휘로 환치할 수가 없으니 용허를 구하는 바이지만) 혼혈 잡종을 만드는 독성이 있는데, 이것이 ‘지구촌’ 시대의 지구인일지 어떨지는, 내가 판단할 것은 아닌 듯하다. 숭늉 보다는 커피의 맛이 더 구수하며 향기롭고, 막걸리 보다는 포도주가 격식이 높다고 여기다 보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과연, 저 세 평론가들도 그런가 하면, 내가 나름으로 알아차리게 되었기는, 숭늉을 대접받으면 숭늉을 즐거워 했고, 커피를 대접 받으면 그것 또한 좋아 했으며, 막걸리를 마시다 포도주를 마신다 해도, 두 맛의 다름을 거론할 뿐이지, 우열을 가리지 않는 평등한 마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당시까지 대략 십여년 동안 해온 책장사로서, 한 의문을 토로하고, 유럽쪽 실정은 어떤가를 물었드랬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시(그리고 현재도) 북미주 쪽에서는, (내가 이해했기로는) 자체 내의 문학의 어떤 빈곤을 채우기 위하여, 남미나 아프리카의 문학까지 수입하여 범람했던 바, 특히 지적으로 상위에 있다는 계층에서 많이들 읽고 상찬을 바쳤으나, 그들은 어째선지 동양, 또는 한국으로부터서는 문학을 수입하려 하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인 책장사의 가슴엔 참을 수 없는 우울함이었던 것. (여기서 분명히 선을 긋고 계속해야 할 것은, 동양인이라도, 영문으로 쓴 책은, 비록 그 내용이 동양적인 것이라 해도, 예를 들면 펄 벅이 『대지』를 썼다 해도 중국 작가가 아니듯, 그것은 영문학이며, 동양문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 해야 될 소린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북미주 쪽에도, 영역(英譯)된 한국문학책이 몇 종류 없던 것은 아니었으며, 한국인 책장사로서는 그 책들을 팔고 싶어했음은 당연했으나, 결과는 늘 울울증만을 더했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출판사의 책값이 19달러95센트였다면, 종차는 1달러95센트까지 값이 낮춰져, 바깥 덤프빈에 놓여 햇볕에 노래졌다가, 근처 고등학교 도서실 꾸미는데 기증이나 되어버리는 것이곤 했다. 그런 뒤 읽혀져본 적 없는, 영역된 한국문학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건, 밴쿠버 변두리 책방에서만 일어난 현상이었을 것이므로, 나로서는 강조해서 말할 수도, 그럴 의도도 갖고 있지는 않다. 어찌되었든, 내가 알게된 실정은 그러했으므로, 내 책방에 드나드는 가정주부로부터,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기에 한철을 보낸 일이 있다. 당신들은, “동양문학, 또는 한국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답은 그때마다, 누구나 없이, “아 거 좋은 질문이군. 그런데 이거, 어째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 대답은, 내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오늘날, 인도나 티베트의 고전들에 대해서는 전에 없이 많은 관심을 보임에도, 그곳들의 현대문학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같은 이치속으로, 저들은 동양으로부터, 오래된 사상을 수입해 간 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문학이 북미쪽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과 함께 일어나는 울울함은 울울했다. 그러나, 내가 저녁을 같이 한, 예의 저 세 비평가들의 의견은, 반드시 그런건 아니었다. 저들의 의견은, “자국어로 쓰여졌거나, 타국어로 쓰여졌거나, 이 세계의 어느 출판사가, 좋은 책 출판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겠느냐”며, “이런 의미에서 저들은 팔을 벌리고 손을 내밀어 좋은 상품을 기다리고 있으나, 쥐어 줄 상품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처음 나는, 아연 실색했고, 그런 뒤, 자신도 잡설(雜說)이라는 것을 쓴다고 해온,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쳐들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세계적 문학시장의 추세나, 수준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 부끄러움은, 낫지 않을 종창 같은 것이 되어, 아직 오늘까지도 때로때로 고름을 터뜨려 낸다. 그런 후, 그 셋 중에서 제일 젊었던 한 평론가를 제외한, 두분 평론가들의 비평문 찾아 읽기가 어렵게 되었는데, 그 까닭을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이런 침묵은 손실, 그것도 큰 손실만 같아서, 또한 울울하다.

첫 번째 거둔, 깨알 한톨만한 성공과 달리, 두 번째 연 책방 때문에는 고배를 마시고(예를 들면, 이곳의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이 우후죽순이었던 것), 전에는, 오란데는 없어도 갈데는 많은 듯하게 여겼으나, 나이의 까닭이었겠지만, 지금은 갈데까지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한 각설이는, 고향이라도 둘러보자고, 귀국해선, 문단의 동구되는 데서 지내고 있는데, 듣자니, 귀에 음악 같은 소식이 있어 기꺼웠다. 그것은 “大山愼鏞虎 선생의 뜻에 따라, 민족문화의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문학인 창작지원, 한국문학 번역지원, 해외 한국학 연구지원, 국제문학교류” 등을 창건의 대의로 삼았다는 대산문화재단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런 활동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하나라도 그런 숭지(崇志)가 펴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나 많은 말을 동원해 찬양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할 듯하다. 대산문화재단의 일익번영을 기원하는 바이거니와,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이 문제겠는가? ‘세계가 혈안이 되어 찾고 있다는 그런 상품’의 제작을 위해 지원금이 주어지며, 그것의 세계화를 위해 또한 번역군이 동원되고, 동시에 출판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관이 있으니,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같은 닭이라도 웅지를 갖는 닭은 붕(鵬)이라고, 또 봉(鳳)이라고 이르는 것 ―, 이 새가 한 번 날개를 펴 나르면, 하늘을 가린다고 하잖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