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성곤_평론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 1949년생. 평론집 『미로 속의 언어』 『탈구조주의의 이 해』 『뉴미디어시대의 문학』 등
최근 민음사에서 나온 『경계를 넘어 글쓰기: 다문화 세계 속에서의 문학』은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다문화 시대에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며, 작가들의 글쓰기는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다각도로 성찰하고 있는 주목할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여러 문화가 뒤섞이며 공존하는 다문화시대는 필연적으로 문화적 정체성, 문화의 세계화, 문화의 상품화, 문화적 헤게모니, 또는 문화 제국주의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수반하며, 작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그리고 더 진지하게 그러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문학이 그동안 시대의 전초병과 자명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작가들의 바로 그러한 사명감과 비전 때문일 것이다.
『경계를 넘어 글쓰기』는 지난 2000년 9월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가했던 세계 저명 작가․비평가들의 발표논문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발표논문 모음집이 아니라, 급변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들을 포괄적․심층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하는 한 권의 값진 지적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행사의 규모 때문에 두 군데로 나누어 동시에 진행되었던 수많은 분과의 논의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오고 보니,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현안들과 그것들에 대한 세계 작가들의 통찰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이제 이 책 한 권이면, 금세기의 중요한 문화적 현안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정확한 파악,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세계 지성들과의 교감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예컨대, 이 책은 세계화 문제, 동아시아 전통의 가능성, 문학과 시장경제, 대중문화, 포스트식민주의, 그리고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 같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관심사들을 진지하게 논의함으로써 과감한 문제 제기는 물론 앞으로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수록된 글의 필자들이 상아탑의 학자들이 아닌, 창작 현장의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학(學)’ 보다는 ‘문(文)’의 향취가 풍기고 있으며, 구절구절마다 작가들의 육성이 들려오고 있고, 때로는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를 다룬 글들도 있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시종일관 생동감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현재 세계문단과 한국문단을 이끌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비평가들이 필자로 참여해 책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는 것도 이 책이 갖고 있는 커다란 장점이다. 더욱이 세계작가들과 한국작가들의 목소리가 분야별로 나란히 들려오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동서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쓰여지고 편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좋았으며, 토론자들의 토론도 논리적이었고 설득력 있었다.
다만, 『경계를 넘어 글쓰기』에서 아쉬웠던 점은 해외나 국내를 막론하고 필자로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작가들이 미처 다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표자 선정과 섭외에는 나름대로의 사정과 고충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예컨대 연락이 잘 안되거나, 사양하거나, 또는 필자 사정으로 포럼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넘어 글쓰기』가 우리 문단과 문인들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세계 문인들에게 한국문학과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주위에서 무슨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으며,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고 또 배울 수도 있다. 또한 이 책은 우리에게 자기문화와 자기문학의 편협한 영역을 넘어서 이제는 세계를 향해 “경계를 넘어 글쓰기”를 시도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계를 넘어 글쓰기』의 출간은 문학의 미래를 위해, 작가들의 눈뜸을 위해, 그리고 독자들인 우리 모두의 인식전환을 위해 반가운 소식이자 대단히 고무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