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권위있는 문예지 『뉴요커』가 ‘21세기 미국 문학을 이끌 젊은 작가 20인’ 중 한명으로 꼽은 바 있는 이창래의 소설이나 관련자료를 읽다 보면 동포문학, 혹은 재외교포문학이라 불리는 문학장르의 정의나 성격, 그 효용성 등에 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의 소설을 재외교포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만약 포함시킬 수 있다면 어째서 그런지, 그리고 그렇게 분류하는 것이 그의 소설을 접근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이 실리게 될 코너의 이름이 ‘재외 한국인 작가’지만 그가 이 코너의 주인공으로 적합한지도 확실치 않다. 그는 분명 한국땅에서 한국인 부모를 두고 태어났지만, 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학교에서 영어로 교육을 받았고 영어로 글을 쓰고 있으며 미국 여자와 결혼했고 한국말을 전혀 못하지는 않지만 우리들 대다수가 영어에 대해 그런 것처럼 한국어에 대해 이질감을 느낀다. 그를 세상에 알린 두 장편 『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와 『제스처 라이프 A Gesture Life』는 한국인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들에게서 우리가 기대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따위를 발견하기는 힘들고(『네이티브 스피커』에 나오는 한국계 정치인 이름이 ‘존 쾅’이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우리나라에 ‘광’씨는 없는 것이다) 소설의 모티프 역시 이들의 한국인으로서의 특수성보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소외문제를 겨냥하고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창래는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계 작가라는 이유 때문에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는 기색을 은연 중에 내비친 바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창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이 코너에 초대되었던 이미륵이나 김은국을 비롯해 강용흘, 수잔 최, 차학경, 김학철, 아나톨리 김, 이회성, 유미리 등이 단지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 만으로 때로는 우리들의 과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리고 민족이나 국가와 관련된 행위들이 대개 그렇듯 이것 역시 논리적이거나 문학적인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감정적․정서적 차원에서 촉발된 반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창래의 작가적 역량을 확인시켜준 두 번째 장편 『제스처 라이프』를 살펴보면 주류 한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그의 문학세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정신대 문제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다수 한국 독자들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분노 에 찬 묘사와 격렬한 비난 같은 것들을 떠올리겠지만 이창래는 이같은 독자들의 기대를 멋드러지게 배반한다. 오히려 그는 일본군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차분히 따라가는 시선을 취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분노에 익숙해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작가의 이런 태도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 때문에 독자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인 한 인간의 비극에 대해 깊이있게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상징성 강한 제목인 ‘제스처 라이프’는 소설의 주인공 구로하타의 껍데기 뿐인 삶을 가리킨다. 그의 삶의 허구성은 과거와 현재, 두겹의 층위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인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인에 입양돼 대동아전쟁에 일본군 장교로 참가하게 된다. 거기서 한국인 위안부 K를 만나 사랑을 나누다 K의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는 일본인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그 죽음에 저항하기 보다는 이를 애써 묵인한다. 그는 전쟁 후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되고, 미국인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성공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양녀 서니와의 갈등을 통해 그는 이 역시 제스처 뿐인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창래는 94년 신문에서 정신대 기사를 처음 읽고 심한 충격을 받아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애초의 집필의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이창래는 성공한 미국인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예일대 영문과와 오리건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뉴욕시립헌터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PEN/헤밍웨이 어워드와 아메리칸 북 어워드, 반스앤노블 신인작가상 등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36살이라는 나이, 두 장편에서 보여준 탄탄한 역량, 그리고 데뷔작보다 두 번째 작품에서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세계적인 소설가로의 성장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그가 한국인이면 어떻고 미국인이면 또 어떤가.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를 지켜본다는 것은 그의 국적에 상관없이 즐거운 일이다.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제스처 라이프』가 <아이스 스톰>과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를 강타한 대만 출신 이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