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지문_번역가, 고려대 영문과 교수. 1948년생. 역서 『The Rainy Spell and Other Korean Stories』『The Golden Phoenix』 등
유럽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유럽한국학회(AKSE : Association of Korean Studies in Europe)는 각별한 애정이 가는 학회이다. 1984년도에 처음으로 영국 더럼(Durham)에서 열렸던 학회에 가 보았을 때, 당시 유럽에서는 존재가 너무도 미미했던 한국이라는 나라를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고달픈 노력을 하는 많은 유럽인 학자들의 모습은 애처롭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국정부에서 해외의 한국학에 대한 지원도 거의 없었던 때여서, 같이 처량한 처지에 있는 한국학 전공자들이 서로에게서 위안과 격려를 받는 것이 눈에 보이다시피 했다.
그 후, 유럽 내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향상되고, 학술진흥재단의 지원도 많이 확대가 되어서, 90년대에 참가를 했을 때는 어떤 애절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학자들이 훨씬 어깨가 펴지고 당당하게 보였다. 93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학회와 95년 프라하에서 열렸던 학회에 참가했을 때는 특히 동구라파의 젊은이들이 한국학을 많이 전공하고, 『왕오천축국전』 등 우리학생들도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고문서, 경전들을 연구하는 것을 보고 경탄스럽고 마음 든든했었는데, 이번의 런던회의를 가보니까 서구라파의 젊은이들도 한국학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고맙고 기쁜 마음이었다.
1984년에 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런던대학에 파견한 방문교수로서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한국문학과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었는데, 그 해의 학회에 소련에서 니키티나(Nikitina)와 트로체비치(Trotsevich)라는 두 명의 여성학자가 참가하게 된 것을 주최측에서는 크게 다행으로 생각했다. 소련 정부가 매번 여행허가를 내주지 않다가 학회 개최날짜가 임박해서야 허가를 내주어 수속을 할 시간이 모자라서 소련 학자들이 참가를 못하곤 했다고 한다. 이 두 여성학자는 구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동양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서 『구운몽』 등 한국고전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오로지 연구와 번역을 하는 순수한 학자들이었다. 그때 만난 불란서의 파브르(Fabre), 부셰(Bouchez), 기예모즈(Guillemoz), 폴란드의 밀로세비치(Milosevich), 서독의 삿세(Sasse), 아이케마이어(Eikemeier), 체코의 푸체크(Pucek), 폴란드의 오가렉-최(Ogarek-czoj), 멜라노비치(Melanovich), 후시차(Huszcza), 동독의 피히트(Picht), 렌트너(Rentner), 네델란드의 왈라벤(Walraven) 등 학자들이 지난 10여년간 유럽 한국학을 이끌어 왔다.
원래 유럽한국학회는 회원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 매년 열렸었는데, 80년대 초부터 학술진흥재단이 학회개최비를 지원하기 시작해서 84년도 더럼학회 때에는 여비의 일부 보조도 있었고, 식사도 맛있고 풍족해서 모두들 몹시 즐거워했다. 그런데 학진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태평양한국학회’도 지원을 하게 되면서 격년으로 지원을 하게 되어서 현재는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1993년 전 동독의 흄볼트대학에서 열렸던 16차 학회에서는 유럽의 대학에서 가르치거나 공부하고 있는, 또는 도서관, 박물관들에서 한국 관계 사서나 학예관으로 종사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북구, 중앙아시아 등에서 한국학을 보급하는 문인, 학자들도 만나게 되어 마음 든든하고 기뻤다. 그때, 조선조 후기의 신분이동의 정도에 대해서 일본인 가와시마 교수와 열띤 논쟁을 벌였던 백승종 교수는 공부를 마치고 지금 서강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1995년 프라하에서 열린 한국학회에는, 출발하기 전에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몸도 가누기 힘든 상태에서 생명을 걸다시피하고 갔는데, 도시도 너무 아름답고 프라하의 봄은 진정 따사로워서 돌아올 때는 감기가 다 나았다. 이 학회에서 북한 학자들의 발표도 들었고,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송두율 교수도 만났는데, 한국에서 입국을 허가하지 않아서 고령의 부친을 20년 이상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의 사상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입국을 허락해서 한국의 자유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면 그의 남북한관은 많이 수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번 런던에서 열린 20차 학회에서도 북한 학자의 논문 3개를 포함해서 60개 가량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150명 정도가 참가를 했다. 여기서도 『몽유록』, 『규원사화』, 홍대용의 언문일기, 카자흐스탄의 한인문학 등 나에게는 새로운 한국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고, 서울대학교 최병헌 교수가 일본 교과서 왜곡에 관한 자료를 가져와서 참가자 전원이 일본 정부에 대해 유럽한국학회의 명의로 우려를 표명하는 선언서에 서명을 했다.
유럽한국학회는 보통 고급호텔에서 하는 여느 학회와는 달리 대부분 참가자들이 부활절 휴가 때 비는 학생기숙사에 머물며 대학의 강당과 교실에서 학회를 하고, 이동을 할 때도 걸어서 하기 때문에 더욱 정이 가는 학회인데, 그러나 이번의 런던대학 기숙사는 너무 누추하고, 세면실 등 이용이 너무 불편해서 닷새를 그럭저럭 견디기는 했지만 이제는 유럽한국학회도 조금은 격상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논문발표는 SOAS의 새로 지은 깨끗한 별관에서 쾌적하게,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런던대학의 박영숙 교수(한국학 프로그램 주임, 현재 AKSE 총무)와 연재훈 교수의 노고가 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