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영역 한국시선을 읽고- 『Looking for the Cow 암소를 찾아서(한국현대시선)』
글 / 이영걸_시인,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교수. 1939년생. 시집 『귀향』, 저서 『영미시 개관』『영미시와 한국시』 등
케빈 오록(Kevin O'Rourke) 교수가 낸 『암소를 찾아서: 한국현대시선 Looking for the Cow: Modern Korean Poems』(Dublin: Dedalus, 1999)은 도합 72명의 작품을 실은 사화집으로 한용운(1879～1944), 김억(1893～?)에서 황지우(1952～), 박노해(1958～)의 작품까지 수록하고 있다. 한 편 내지 두 편의 작품이 실린 시인들이 있는가 하면, 열 편 또는 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시인들도 있다. 이전의 영역 한국시선들보다 선정 시인과 작품의 수효가 많지 않을까 한다.
오록 교수는 시선집의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한국시에 대한 일반적 「서론」과 각개 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논평을 제시한다. 예컨대 이상화(1900～1941)에 대해서는 “그의 시는 한국의 비극적 역사를 낭만적 양식으로 취급한다”고 지적한다. 번역된 시는 그의 명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나의 침실로」 두 편이다.
「서론」에서는 한국 고전시의 특성을 개괄해 설명한다. 첫째, 한국시는 자아 중심적 성향을 지녔다. 이런 유의 주관적 전통은 심각한 제한성을 지니지만 훌륭한 시인들의 손에서는 독자는 그 자신의 경험 뿐만 아니라 만인의 경험까지도 시인의 경험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둘째로, 시는 초월 지향적인 것이었다.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불교 전통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비록 질서와 통제를 지향하지만 역시 구경적 예지를 추구하는 유교 전통도 반영한다. 셋째로, 시작은 자발적인 경향을 지녔다. 절을 찾아감, 벗을 만남, 봄의 도래를 축하함, 술을 선물로 받음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정서가 시의 쓰기를 촉발하며, 시는 평정 속의 정서의 회상이 아니라 흔히 허구적 양식의 현재적 경험의 기록을 취한다. 넷째로, 시인들은 자연을 관념적으로 접근했다. 시각보다 심정을 도야했으며, 물리적 아름다움보다 도덕적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한국 고전시의 전통은 청록파 시인들 뿐만 아니라 자연을 즐겨 다루는 여러 시인들의 세계에서도 다소간 찾아 볼 수 있는 성향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대 한국시는 다양한 관심을 다루는 만큼 시의 성격도 훨씬 다채로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김수영의 「눈」에 담긴 감성은 밤새 내린 눈과 가래를 뱉는 일을 대조하는 만큼 격렬한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 고전시의 전통 및 자아 중심적 성향은 박목월의 「한복」 또는 구상의 「홀로 놀기」 등에 적절히 나타나지 않는가 한다. 「한복」은 노경에 접어든 이의 관점에서 한복을 입은 이의 감각을 다루며 “바람은 언땅을 두드리지만 / 내 한복은 풍성히 안을 채웠다”고 한다. 동시에 노년의 심경을 “나는 내 귀가 / 다른 바다의 소리를 듣는 / 나이에 도달했다 / 눈이 쌓이는 나이에”라고 한다.
「혼자 논다」는 이웃에 사는 소녀에게 비치는 ‘유명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첫 번째 만남은 소녀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의 만남이었다. 유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이기에 할아버지는 단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두 번째 만남은 보다 의미있는 만남이다. 소녀는 이제 중학교 2년생이며, 시인의 작품을 교재에서 읽기도 했다. 소녀는 급우들에게 자기가 시인을 잘 안다고 말했다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 물었더니 꽤 통찰력 있는 말을 했음이 드러난다. 보통 할아버지인데 흔히 홀로 노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인의 독특한 생활 양식을 꿰뚫어 보았다는 점에 소녀의 귀한 통찰력이 있다 하겠다.
오록 교수의 『한국현대시선』에는 이미 몇 차례 영역된 작품도 보이지만 새로 시도한 작품도 많기에 여러 차례 찬찬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쉽게 이해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되풀이 읽어야 함축하는 바가 확실히 잡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시선』은 데덜러스 출판사에서 나온 기존의 두 권 시집 - 『한국고전시선』(1993) 및 『서정주시선』(1995) - 에 추가되는 훌륭한 업적이다.
* * *
혼자 논다
이웃집 소녀가
아직 국민학교도 안들어 갔을 무렵
하루는 나를 보고
― 할아버지는 유명하다면서?
그러길래
― 유명이 무엇인데?
하였더니
― 몰라!
란다. 그래 나는
― 그거 안좋은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올해 그 애는 여중 2학년이 되어서
교과서에 실린 내 시를 배우게 됐는데
자기가 그 작가를 잘 안다고 그랬단다.
― 그래서 뭐라고 그랬니?
하고 물었더니
― 그저 보통 할아버진데, 어찌보면
그 모습이 혼자 노는 소년 같아!
라고 했단다.
나는 그 대답이 흐뭇해서
― 잘 했어! 고마워!
라고 칭찬을 해주고는
그날 종일이 유쾌했다.
(『유치찬란』, 삼성출판사, p. 33)
Playing Alone
"Haraboji, are you as famous as people say?"
the little girl next door asked me one day ― this was before sh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