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 박완서 씨의 소설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는 6․25 중의 삶의 진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진실을 범접할 수 없는 필봉으로 잔잔하게 읊고 있는 작가의 대표작이다. 50년 전의 한국의 모습을, 그것도 가장 질퍽했던 역사의 한 장을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에 오붓하게 전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이 처음으로 대산문화재단에 의해 스페인어로 번역되고 스페인 출판사에 의해 발간되었다. 일간신문의 가로 세로 3센티도 안되는 박스 안에 눈에 띌까 조바심 내며 실은 듯한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렇게 밖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스페인어권 나라의 숫자와 그에 속한 문인들을 안다면 이건 신문기사 이상의 엄청난 사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돈 키호테의 나라이다. 보르헤스와 옥타비오 파스의 후손들은 어떤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 보다 문인들을 위대하게 여기고 있다. 이사벨 아옌데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 지금 세계의 문단을 지배하는 이 사람들이 이 번역서를 읽는다고 상상해 본다면 이건 분명 하나의 번역서로서의 가치로 논할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보아야한다.
6․25 때의 서울의 모습과 생활상, 한국의 어머니 상으로 대변될 수 있는 한 여인의 살아가기 위한 영악한 몸부림, 가족간의 애증 등, 한국의 내재적 역사가 한 번역가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을 따라잡기 위한 역자의 노력이 만만하지 않았음을 이 번역서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번역가의 시대적 고찰 및 작품의 상징성과 저자의 의도에 대한 이해 노력 또한 진지하게 엿보였다. 이 정도면 번역작업은 일단 성공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 번역서가 불티나게 팔려 재판을 찍게 된다면 이 부분들을 수정 보완하고 싶다는 욕심이 인다.
박완서 특유의 소설적 긴장이 번역자의 간섭으로 유지되지 못한 경우이다. 모두가 피난가고 없는 서울에서 남은 작가의 가족은 오빠의 성화 때문에 늘 상황에 불안해 한다. 올케를 시켜 밖의 동태를 살피게 하지만 한참 후에 돌아 온 올케가 긴장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하는 말이 “바로 집 앞에 우물이 있어요. 물이 충충해요”이다. 이 말에 연이어 오빠가 “사람을 못 봤냐니까, 인민군이나 국군이라도 말야” 라고 다그쳐 묻는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구체적 설명이 없어도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코드들을 읽을 수 있다. 문학의 함축미라고도 말할 수 있고 문학의 행간 읽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여운의 미학과 문맥의 흐름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통해 문학이 제공하는 맛을 음미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자는 “내게는 그 답이 터무니없어 보였다”라는 말을 끼워 넣음으로써 맥빠지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번역은 얼마 뒤에서 또 반복되는 데 결국 이런 간섭은 문학의 질을 훼손한다.
감정의 파문을 여는 묘사에 동원하고 있는 어휘나 표현들이 작가의 감정을 충분히 따라잡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글의 고유어가 주는 느낌을 똑같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대어를 찾기란 어렵다. 하지만 가능한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용어를 그네들 문화권에서 찾아야한다. 몇 가지 예를 보면 “서리서리”, “인기척”이 “사행하다”, “사람의 소음”으로번역되면 곤란하다. 서울로 입성한 인민군을 반길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운 상황에 처한 작가의 기분이 드러나는 부분에 엄마와 오빠에 대한 대목이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번역문은 액면상의 해석에 그치고 만다. 보다 좀 더 심각한 부분은 언어적 감각을 살려 표현했더라면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전달할 수 있으면서 번역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들이 완전 삭제되고 없는 경우이다. “양회가 벗겨진 틈으로 부스럼딱지처럼 드러난 부뚜막엔 무쇠솥…… 시루, 바가지, 양철통, 궤짝 등이 꾀죄죄하고 귀살스럽게 나딩굴고 있었다” 의 9줄이 되는 그 당시 우리의 부엌모습을 그려놓은 대목이 번역서에는 없다. 그래도 나은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몸을 던진다 해도 한번이면 족할 소리가 반복된다는 게 수상해서 나가보니 조그마한 계집애가 노깡 언저리에 발돋움을 하고 서서 두레박질을 하고 있었다”로 시작되어 11줄을 할애하여 두레박질 기술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 5줄로 정리되어 버렸다. 풀어쓰기나 대체 용어를 사용해서라도 이런 대목은 제대로 전달이 되어야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으로서의 품격 훼손의 수준이 아닌 번역서의 무거운 책임을 절감하게 하는 차원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공군은 꽹과리를 쳐 사기를 북돋으며 아이들과 부녀자를 닥치는 대로 살상하고 욕보인다고 들었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인민군보다는 중공군이 몇 배 순하다는 유언비어도 있었으니까”에서 인민군이 ‘한국군’으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를 미화시킬 필요도 없지만 왜곡시킬 필요도 없다. 이에 비해 보면 그 밖의 몇 가지 작은 오역은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번역서를 읽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다. 우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의 글이 처음으로 스페인어권 나라의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대가들의 손에서 평가받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면서 우리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된다고 생각하면 그러하다. 그래서 번역서의 역할은 막중하고 그 의미는 참으로 무겁다. 이번 번역서가 그와 같은 사명을 다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번역에 대한 나의 애착이 어쩔 수 없이 옥의 티를 가려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