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순이는 뭐 그리 썩 이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고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되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10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 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아래위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하릴없이 감참외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단 눈이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한데 한 가지 피가 있다면 가끔 가다 몸이(장인님이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 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다 깨박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할까 봐서 이걸 씹고 앉았노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 김유정 「봄 봄」
조윤이 색시의 행방을 나보다 더 걱정하는 사람이 오늘 낮에 나를 찾아왔다. 명색 처녀다. 스물서너댓? 옆에서 본 그녀의 콧날이 예각을 훨씬 넘어 직각에 가깝다. 이런 우스꽝스런 콧날은 높기는 하지만 상큼하다고 할 수도 없는 데다 살까지 많이 붙어 있어, 소위 그 특유의 매부리 코만이 얼굴에 가득하다는 첫인상이다. 그 큼직한 터를 잡고 있는, 그러나 결코 보기 싫지는 않은 콧잔등 위에 있어야 할 얼굴보다 큰 나비안경이 곱슬하게 볶은 머리칼 위에 점잖게 올라앉아 있다. 눈두덩 위에는 숯검정이 얇게 도포되어 있어 상당히 고혹적이다. 눈은 작지만 깊어서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공연히 내 동공을 수줍게 만든다. 입은 말을 생명으로 삼았던 한때의 직분에 충실하도록 크고, 입술은 얇은데 물기가 잘잘 흐르는 분홍색 색감이 발라져 있다. 키는 중키를 넘었지만 얼굴과 드러내놓은 팔뚝의 살빛이 검어서 작아 보인다. 상의의 오른쪽에만 단조로운 꽃무늬가 흰 바탕에 청회색 물감으로 찍혀 있고, 긴소매를 팔꿈치까지 둘둘 말아 걷어붙이고 있다. 팔뚝에는 거뭇한 잔털이 곱게 누워 있다. 그 잔털의 올에 눈이 가면 이상히도 성충동이 일어난다. 다리통을 드러낸 치마는 흔히 엎어놓은 물통처럼 좌우가 봉해져 있는 법인데 이놈의 치맛자락은 개폐가 가능하게 한쪽이 터져 있는 채로 다른 한쪽 자락에 포개져 있다. 한복치마식이다. 그걸 풀어헤치면 그대로 부채꼴의 옷감이 될 터인데, 이 요상스런 치마 디자인마저 꽤나 성감을 자극시킨다.
- 김원우 「무기질 청년」
편집자 주) 동덕여대 조병무 교수는 한국 소설에서 등장하는 각종 대상과 행위 묘사를 ‘사랑과 성’, ‘인물’, ‘무대․장소’, ‘직업․집회’, ‘자연․서정’ 등 유형별로 분류해 총 6권의 『소설 묘사 사전』을 펴냈다. 위 인용문은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