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정부도 시장도 아니면서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영역이 소위 제 3의 부문, 즉 비영리단체(NPO)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어느 서구학자는 일찍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회단체의 혁명(Associational Revolution)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 혁명은 19세기 후반에 있었던 국민국가의 대두가 우리 사회 안에 미친 영향에 비견할 만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소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제 3부문의 중요한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 비정부단체(NGO)의 역할과 함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부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비정부단체의 정치성을 띤 활동이 주목받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제 3부문의 다른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기업의 공익활동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이제 경제규모가 커지고 경제활동이 정상적인 방법들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기업 스스로가 과거의 정경유착에 의한 비합리적인 이윤창출보다는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높아가고 있다.
한때는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 때문에 기업재단 활동의 동기가 의심받았고 정부에서도 장려보다는 규제 쪽에 중점을 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업의 공익활동은 날로 그 비중이 높아가고 있으며 사회적인 인식도 개선되고 있고, 특히 수혜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재단의 원천을 따져보면 본래 자선사업(Philanthropy)의 일환으로 출발하였다. 교육재단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시작하였으며 중세에 풍미했던 각종 종교재단을 거쳐 자선과 교육, 그리고 문화예술의 지원과 창달을 겸비한 카네기와 록펠러 재단의 출현으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가드너는 기업재단에 대하여 “이들은 인간의 불행을 치료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방하려고 했으며, 또 인간의 불행을 완화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원인을 추적하려고 했다. 이러한 아이디어와 활동으로 이들은 20세기 전반부를 자선사업의 기나긴 역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대로 평가 받도록 하였다”고 두 재단에 대해 논평하였다.
이와 같이 기업재단은 국가와 시장 사이(Between States and Markets)에 존재하면서 이 두 영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독특한 존재양식을 띠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사회의 여러가지 활동범주를 세 가지 영역모델로 단순화시키면 권력으로 조직화되고 정당화된 국가와 수요와 공급의 가격 메커니즘에 의해 이익을 추구하는 영역인 시장, 그리고 강제나 이윤추구와는 거리가 먼 잉여적(剩餘的)이며 자원적(自願的)인 활동영역인 제 3부문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재단 활동은 민주사회의 다원주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공공선(公共善)에 기여하며 정부 활동의 보완 또는 새로운 방향을 잡아주는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재단이 안고 있는 잠재적인 부정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구미의 거대재단들은 규제와 감시, 감독을 받지 않은 가운데 권력과 부를 과다하게 소유함으로써 이를 통해 재능과 재화를 사들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 재단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 면에서 경제, 사회적으로 기존 질서의 유지에 급급하고 소수민족, 노동계층, 제 3세계의 이익에 반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선진국 재단들의 활동 양상을 보면 미국의 명문재단 중의 하나인 포드재단은 교육과 제도 개선, 개발도상국에 대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지원을, 록펠러재단은 농업과 의료프로그램 및 사회과학의 지원, 카네기재단은 예술 분야와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교육제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초창기에는 개인재산에 의한 소규모 장학재단으로 출발하였으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재단의 설립목적과 활동이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창업 이래 공익에의 봉사를 경영이념으로 삼아 온 미쓰비시(三菱) 그룹은 학술연구와 사회복지사업에, 도요타(豊田)재단은 세계적인 시야에서 장기적인 사회활동에 기여한다는 설립취지를 내걸고 과학기술진흥과 함께 특히 ‘이웃을 알자’는 캐치프레이즈로 동남아 국가들의 학문적 저술과 문학작품에 대한 번역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기업재단의 설립목적은 기업의 사회봉사 활동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일류 수준의 재단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화된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본 재단으로서 재단의 존재의의와 가치, 그리고 원대하면서도 실현가능한 사업계획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외국의 사례를 비추어 보면서 다시금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