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문예교사’라는 이름으로 안산의 한 중학교를 오가며, 나는 십오륙 년 전의 내 모습과 부대끼느라 설레는 여름을 보냈다. 그 소년들은 내가 궁금해했던 것을 물었고, 그 소녀들은 내가 간절해했던 이야기를 썼다.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나이가 되어 가을을 맞았고, 그들과 헤어진 뒤 훌쩍 세월을 건너뛴 모습으로 한 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았다. 그래서 지난 1월 12일에 있었던 ‘객원문예교사제 후기 워크숍’에서 쏟아진 이야기들은 나를 비롯한 50명의 객원문예교사들이 대면한 오래 전 자신들의 모습에 관한 것이거나 멀지 않아 만나게 될 예비 작가들에 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시범 운영한 ‘객원문예교사제’는 전국에서 신청, 선정된 50개 중․고교에 전업 문인 50명이 파견되어 열다섯 시간의 문학 수업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객원문예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각급 학교로 파견되기 전, 나름의 설레임과 조금의 막연함으로 만났던 때와는 달리, 두번째 워크숍은 짧은 여행을 끝낸 사람들처럼 피로해 보였지만 모두들 밝은 얼굴이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여전히 달뜬 채였다. 어떤 이는 손수 문학 교재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수업 중에 쓴 글들을 모아 문집을 만들기도 했으며,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노라고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문학을 호흡하는 문예교사들의 고민이란 대체로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 학생들을 만나러 갈 때, 대부분은 한 가지 물음에 골몰했다. 지금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문학의 외양이 왜소해진 것은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은 이러한 고도의 산업화와 정보화 속에 막혀 있는 ‘인간’의 숨길을 트는 유일한 항체가 될 수 있다는 신념 또한 만만치 않다. 정보나 이성은 물론 감정과 상상 또한 인간의 사회를 그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의 위치에 대한 자성적인 물음이, 자라고 배우는 동안 필요한 무수한 것들 속에 문학은 돈과 물질에 대한 하나의 면역체로서 자리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문예교사들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믿음을 현실화시키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정답을 고르기 위한 수업이 아닌 본연의 문학을 만나기 위한 수업을 한다는 것, 그것도 열다섯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생소하다면 생소할 문학을 허물없이 나누기란 차라리 곤혹스러움이었다. 생각보다 학생들에게 있어 문학은 멀리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관심이 영상매체를 비롯한 컴퓨터 게임에 쏠려 있는 것이 우선적인 이유였고, 진지하고 사려 깊은 고민보다는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자극을 원하는, 이미 관성화된 문화 향유 방식이 그 본질이었다. 결국 어떻게 학생들의 문학 불감증을 헤쳐나갔는지가 워크숍의 주요 내용을 이뤘다. 문학이 존재하고 발현되는 방식이 다양하듯 그 방법 또한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한 문예교사는 처음 학생들을 대면하고 그들이 교과서나 교재에 나오는 것 외에 읽어본 작품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고 했다. 부랴부랴 도서관이며 서점을 뒤져 학생들이 읽어봐야 할 작품 목록을 설정하고 직접 복사해서 일일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뒤 토론하는 형식으로 수업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영화나 음악 속에 삽입된 문학 작품을 통해 학생들에게 문학적 흥미를 유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문학기행 형식을 빌려 가까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 이도 있었다.
문학의 내용보다는 문학과의 접점을 찾는 데 수업을 할애하고 말았다는 나름의 부작용이 피력되기도 했으나 창조적 삶의 모태를 이루는 기초예술, 그것도 복잡다단한 세계를 질서화시키는 언어예술의 정점에 선 문학의 소외를 방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는 게 이유가 되었다.
문예교사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는 학생들 사이에 만연한 인터넷 소설 열기에 관한 시각이었다. 이는 문학의 갈래와 진의에 관련된 것인 만큼 조심스럽고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예교사들의 시선은 대체로 냉정했다. 학교 앞 가게 진열대에 놓인 형형색색의 예쁜 과자들처럼 인터넷 소설은 구미를 당기기엔 충분하지만 우리의 살을 어루지는 못한다는 것. 문학의 진정성이 인간과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확장에서 비롯된 것임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길은, 그것을 구현한 텍스트를 접하게 하고 그 진정성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전체적인 의견이었다.
문예교사제 수업은 각 학교의 사정에 따라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각 반을 순회하며 진행하기도 하고, 희망자에 한하여 별도의 반을 꾸려 진행되기도 했다. 각각의 장단점은 차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부딪친 가장 큰 난관은, 소수에 한정된 것이긴 하나, 문예수업을 논술 시험에 도움이 되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있었다. 문학적 글쓰기와 논설적 글쓰기를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 교사의 말에 사교육비 세계 1위라는 불명예가 말하듯 입시 강박이 가져온 가치의 굴절에 모두들 씁쓸한 침묵을 지키기도 했다.
문학이라는 잡을 수 없는 대상을 놓고 흐드러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50명의 문예교사들은 학생들과 조금은 서먹한 시간을 보냈고, 얼마간 문학을 놓고 함께 고뇌했으며,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졌다. 여전히 학생들은 작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했고, 문학에 대한 나름의 동경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문학이 창조적 이성의 절정을 형성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장에서 창작활동을 실천하는 작가들과 미래의 주인인 학생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이번 문예교사제 시범 실시는, 다소 미흡한 감이 있었지만, 모두의 미래를 위해 분명 필요한 ‘시작’이었다.
좀더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개인의 창조성은 주입할 수도 반복하여 숙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창조적 접근이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계발되어야 한다. 비록 호의적인 환경 아래 많은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예술적 창조성의 광채는 매우 약한 것이어서 불을 지피는 심정으로 빛이 반짝거리는 곳 어디서든 조심스러운 부채질이 필요하다. 그 결과를 예측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지만, 확실히 문학 환경에 대한 배려는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접근되어져야 한다. 문예교사제는 그것을 증명한 작은 사례였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