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용희_평론가,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1966년생. 평론집 『꽃과 어둠의 산조』『김지하 문학 연구』 등
한승원의 중편소설 「누이와 늑대」(1980)는 이른바 생태소설 계보의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대개의 생태소설의 경우와는 변별되는 미학적 형질과 구성원리를 지니고 있다. 특정한 주제론의 계보에 뚜렷하게 부합되는 대개의 작품이 그러한 것처럼 생태 소설의 경우 역시 환경 파괴의 극단적 사건과 정황을 다양한 시각의 원근법으로 조망하면서 환경 의식의 자각을 계몽적으로 강조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들 작품의 양상은 대체로 철새떼의 죽음, 화학물 중독, 공장 폐수, 대기 오염, 자연 파괴 등에 대한 극명한 성토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 대한 향수 혹은 인간과 자연의 전일적인 관계성에 대한 설파를 향해 선형적으로 급박하게 치닫는 형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소재주의적인 고발문학의 범주에 가까운 생태문학 일반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충격적으로 환기시키면서 근대 산업문명의 급박한 가속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주지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대적 유효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생태문학의 본령이 소재주의적인 고발과 성토의 즉자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생태문학의 본령이 궁극적으로 생명의 본성과 존재 원리에 대한 미학적 직시와 견성을 향해 열려 있지 못하다면 생태계 파괴의 실상에 대한 인식은 물론 그 원인과 극복의 대안 역시 표면적인 층위에서 운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 앞에 한승원의 「누이와 늑대」는 이미 20여년이 훌쩍 지난 1980년에 발표되었으나 생태문학의 미학적 가능성의 한 전범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먼저, 이 소설은 애틋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곡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생태’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문학’의 생태로서의 내밀한 절조와 위의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 구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음은 소년의 청순한 시선과 감성의 정조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늑대의 울음소리, 누이의 관능적인 건강미, 황새 등의 소재가 중심점을 이루고 있는 토속적인 농촌 풍경이, 아직 현실과 환상이 미분화된 신화 속을 살고 있는 소년의 눈빛을 통해 반사되면서, 삶의 원형공동체의 심층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형적인 삶의 터전은 점차 야만적인 어둠의 습격에 의해 해체되고 파괴되어 간다. 누님의 관능적인 건강미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질되고,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소년 모두가 “염병”과 같은 증세의 재앙에 노출된다. 또한 마을 뒷산에 내려오던 황새 역시 원시적 생명력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생명의 그물망에 파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재앙의 직접적인 연원은 농약이다. 농약은 소출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곡식의 ‘병치레 물 것 치레’를 위해 사용되지만 그러나 궁극에는 곡식과 사람까지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치명적인 유해 요소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농약이나 ‘금비’와 같은 것은 ‘꼭 소주나 사탕 같아서’, ‘소주 많이 먹으면은 속이 상하고, 사탕 많이 먹으면은 이빨이 썩는’ 원리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유현한 미의식이 이와 같은 근대 산업화의 유해한 속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미학적 원리의 핵심은 ‘늑대의 울음소리’에서 찾아진다. ‘늑대의 울음소리’, 그 지시적인 의미로 규정할 수 없는 언어화되기 이전의 음역의 존재성이 이 소설의 미학적 원리의 가능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초입부에서 ‘늑대의 울음소리’는 삶의 원형공동체에 대한 어둠의 세력의 습격을 예고하는 전조음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온한 야만의 얼굴은 곧 희석된다. 점차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늑대의 울음소리’는 누님을 향한 ‘만식’의 간곡한 사랑의 표상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이 야수적인 짐승의 울음으로 표상 되는 사랑은 기어코 누님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비극적 결말을 재촉한다. 농약 중독에 시달리면서 ‘만식’의 아이를 지워야 했던 누님은 끝내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소년의 시선에 비친 누님의 죽음은 ‘초롱처럼 빛나는 북극성 옆’으로 사라져 작은 별이 되는 것이다. 이제 늑대의 울음은 하염없이 먼 하늘의 작은 별을 향한 그리움의 절규가 된다. 꿈 속에서 황새가 된 소년이 하늘을 날아 누님의 ‘아기별’을 지날 때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는 결말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우리의 삶의 신화적인 원형질에 대한 미적 환기와 갈망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일러준다. 한승원의 「누이와 늑대」는 생태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생명의 존재성에 관한 문제를 문명과 야만, 전통과 근대, 환상과 현실, 사랑과 죽음, 이성과 감성, 언어와 환청 등의 비선형적인 변주를 통해 우주적 무한의 영역으로 심화시켜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소설의 미학적 생성원리의 중심점이 특정한 의미의 규정과 분절을 거부함으로써, 그 모든 의미를 넘나들며 포괄할 수 있는, 음성의 영역에 해당하는 ‘늑대의 울음소리’라는 사실과 직접 연관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