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어떤 분야라도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 괴리의 소인 규명에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론을 들 수 있겠는데, 역사적․제도적 문맥에서 찾으려는 거시적 탐구벽과, 개개인의 지성적․도덕적 성찰을 조감해보려는 세부적 염탐벽이 그것이다. 문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있을 수 없으며, 특히나 오늘날 한국소설의 독창적 개진이 어느 수준에 이르러 있는지, 그것이 과연 구태의연한 세상 읽기에 대한 진정한 도전인지를 논란하려면 위의 두 잣대는 반드시 두루 써먹어야 하는 어떤 능률의 기제가 아닐까 여겨진다.

  한편으로 문학 일반에서의 독창성 성취라면 그 본말은 당연하게도 두 가지 지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는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통한 변신에의 몸부림이고, 다른 하나는 기왕의 문학사에 입적한 선행 작품들에 대한 전면적 반기 내지는 선별적 부정에의 모색이다. 앞엣것은 흔히 변주라는 미명 하에 고만고만한 소재나 작의에의 천착에 머무르거나(이 경우를 말의 바른 의미에서 개인적 ‘통속화’, 나아가서 ‘세속화’에의 안주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시대적 변수의 호응에 힘입어 개별적 문학세계의 견고한 축성으로 완결되어버린다. 뒤엣것은 흔히 현실을 달리 보려는 도저한 욕망에 휘둘려 그야말로 ‘실험적’인 수공예품의 제작에 몰입하거나(이 경우는 소수의 마니아형 동조자의 기림과 부추김에 따라 이른바 ‘인디’라는 독립사단을 구축한다), 운좋게도 급변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기미를 한발 앞서 대변한 독보성으로 말미암아 한 유파나 미구에 곧장 사그라질망정 어떤 문예사조의 박두에 일익을 담당한다. 그렇긴해도 두 지향은 어느 특정 언어권의, 여러 장르 전반의 문학세계를 활성화․다양화․풍요화하는데 있어서 그 기여도는 막강하며, 동어반복의 원천적 봉쇄에서도 유효하게 기능한다. 따라서 자기갱신과 전통부정이라는 이 두 멍에는 문학이 감당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과연 어느 선까지를 독창성의 범주에 묶을 수 있는지, 도대체 세상을 얼마나 새롭게, 또한 정확하게 읽는 것이 독창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지 따위는 면밀히, 또한 앞서의 거시적 문맥에서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그것을 너무나 허술하게 다루는 통에 어떤 판박이형 작품들만 양산하는 한국문학 특유의 체제가 여일없이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이 제도화 국면 자체도 아울러 점검해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주변 환경이 디지털 문명권으로 급속하게, 이미 깊숙이 진입해 있는 만큼 한국소설이 달라져야 하고,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실적을 점검해 보라며 편집자가 필자에게 통독하기를 강요한 작품은 김영하의 『검은 꽃』,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였다. 나름의 안목으로 분별하건대 세 작품의 성과는 워낙 일목요연해서 점수로라도 매길 수 있었지만, 지나친 상찬만이 유령처럼 떠도는 오늘의 좀 이상하나 거들먹한 우리 비평계를 얼핏 뒤돌아보더라도 내 의견만을 눈치없이 흩뿌릴 수도 없고, 또 제대로 평가할 충분한 지면도 마련되어 있지 않는 만큼 그 지배적인 경향 같은 것이라도 주마간산격으로 적바림하여 편집자의 본의에 다소나마 부응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우선 세 작품 다 어떤 형식에의 변주를 시도한 흔적은 역력하다. 물론 그런 실적들이 전적으로 새롭다기에는 어폐가 심하고, 그 성과들도 ‘이것이다’ 싶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귀한 노력의 결과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긴 해도 그런 노력이 수미일관하게 지속되어 유종의 미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숱한 사실(史實)과 사건들을 일종의 점묘법 화풍으로 채색하고 있어서 논픽션을 방불케 하는 『검은 꽃』은 (이 기법의 특이성은 주목에 값한다) 각 부와 그 밑의 각 장들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으며, 연작 장편 형식이라기에도 무리가 없지 않은 『일요일……』은 그 반어법적 세태 읽기의 유별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적 기법과 후반부의 에세이풍 서술이 혼재해 있다기보다도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고, 『낭만적……』은 8편의 단편마다 이런저런 형식에의 실험을 경주하고 있으나 하나같이 신선미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잠시 걸치고 있는 듯 날림공사에 그치고 있기도 하다. 그런 혼선의 형식 일체, 무잡한 서술 기조, 반소설적이라기보다도 만화적․영상적 기법의 무작위적 차용 따위를 이 시대의 새로운 소설 문법이라면 일단 유보 많은 동의를 내놓을 수밖에 없겠으나, 그것을 근거가 착실한 개성적 형식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물론 그런저런 형식들의 패러디화, 그것들의 의도적인 뒤섞음, 서술기조의 탈장르화 등의 선악을 논란거리로 삼을 자리는 아니지만, 그런 기획이 어떤 식으로든 안착되어 있어야 비로소 형식미라는 이름에 값한다는 지적일 뿐이다. ‘무질서보다는 불법이 낫다’는 어느 서구의 문호의 호소는 소설의 형식미 제고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수긍하고 있듯이 이야기거리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오늘날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교훈적․정보적 가치의 공급원으로서 소설의 위력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미미해져 있다. 세상과 삶이 그렇듯이 이야기는 어느 것이라도 어슷비슷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다만 어떤 이야기라도 해석하기 나름일 뿐이며, 이런 입지가 현대소설의 지적도를 등고선처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층층의 격조로 빚어낸다. 따라서 이 해석에 전거(典據)의 다른 말인 자료를, 간접경험 곧 독서체험을 활수하게 써먹는 점에서도 위의 세 작품은 한 줄에 앞을 다투며 서 있다. 『검은 꽃』은 수많은 자료와 생생한 현장 체험을 통한 희귀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그것들에 치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머지 두 작품도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이 자료의 활용과 그것의 소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앎의 총체가 작가의 세계관일텐데, 그것의 피상성의 정도에 따라 작품의 격조가 드러나고 만다(빈곤과 분배의 부당성을 상당히 유력한 자기언어로 실어나르는 『일요일……』과, 점증하는 여성성의 치부 까발리기에 주력한 『낭만적……』의 품격 점검은 우리 비평계의 우선적인 대상일 듯하다). 그런 피상성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로서는 여러 기술적인 관습을 한편으로는 존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뿌리쳐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여러 자료의 남다른 해석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화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모든 계층, 모든 신분, 모든 직업, 심지어는 모든 민족의 활약까지를 쓸어담고 있는 『검은 꽃』도 화자의 구실을 웬만큼 자리매기고 있긴 하지만, 최근작인 한 역사소설에서 성석제가 발휘한 화자의 역할보다 좀 더 비판적인 해설자의 소임을 유민사(流民史)의 발빠른 전개에 떠맡겼어야 옳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한민족의 유랑사라면 재일동포작가 이회성이 연전에 거둔 한 성과를 들 수 있을텐데, 『검은 꽃』은 그것보다 훨씬 정치적․역사적인 경지에 닿아 있으며, 그런 점에서도 김영하의 다큐멘터리적․영화적 서술기조는 부당하지 않지만 그만큼 탈역사적․탈소설문법적 정서를 빚어내고 있다). 말이 길어졌으나 육화되지 않은, 남다른 해석이 따르지 않은 날 것으로의 자료를 버리기가 아깝다고 마구 인용할 때, 더욱이나 그것이 소설 속에서 제멋대로 정좌하려 들면 작품의 어떤 정조 부각에는 무해무득할지도 모른다(『일요일……』과 『낭만적……』에도 그런 류의 천박하다기보다도 소피스티케이티드한 인용은 숱하다). 비근한 실례로 50년대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학평론에서 활용하는 서구의 최신 이론들이 과연 얼마나 적절한 이바지를 하고 있는지 숙고해봐도 좋을테고(대체로 그것들은 ‘작품 따로, 해설 따로’ 식의 거품식 평가이다), 그런 맥락에서도 『검은 꽃』의 후반에 얼비치는 ‘근대국가’의 창설 대목은 ‘이론적 짜깁기’라는 혐의가 짙을 수밖에 없다(다른 조건이야 어떻든 인구 수에서 벌써 함량미달인데도 ‘국가’ 창설 운운한다면 해학으로서는 나무랄 것도 없을지 모르나 어불성설이다).

  영화적인(또는 영상적인) 기법 일체의 패러디화 내지는 패스티시화는 이제 우리의 ‘젊은’ 소설의 서술 기조에 유전인자처럼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독후감도 지배적이다(남녀간의 성적 교환에 대한 분석에서도 정확히 그렇다). 유전인자가 그렇듯이 그런 기법의 소설적 정착이 과연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를 따질 여지도 없을 만큼 여실한데, 그것은 장면의 스냅식 전환에 (‘자연시간’으로서의 현재와 ‘인위시간’으로서의 과거의 뒤섞음), 미흡한 채로나마 아이러니와 풍자와 해학의 직조에, 너무 다사다난해서 새로운 신파극 같기도 한 뭇 주요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세파 부대낌 따위에서 훤히 비치고 있다. 영화나 만화에서 익히 봐오듯이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걱정이 군걱정을 낳고, 과장이 색다른 과장을 조장하듯이 그것은 그렇다. 말을 줄이면 사건의 연쇄는 관념의 개진을 약화시킨다. 고만고만한 사건의 지칠 줄 모르는 조작 행위는 인간의 위상을 몰라볼 지경으로 떨어뜨려 종내에는 가혹한 현실에의 노예화에 이르고 만다. 물론 세상은 언제라도 인간에게 비우호적이라 더러는 어떤 환경의, 어떤 제도의, 어떤 권력의 노예일 수는 있지만, 항구적으로 그렇지는 않다(문명이나 문화는 세상과 인간의 이런 갈등이 낳은 승리의 전리품이다). 이 대목에서 반(反)영화적인 발상만이 또다른 현대소설의 늠름한 위의를 부각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단언은 물론 시대착오적인 생각일지도 모르나, 그런 아집도 장르 감각의 독보성 유지에는 고려해볼 만한 사안이 아닐까 싶다.

  세 작품에 공히 공통함수로 얼비치는 몇몇 징후가 한국소설의 풍요성을 어느 정도까지는 담보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 개간지들이 아직은 너무 거칠어서 사람다운 사람의 운신을 제한하고 있음도 사실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음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의 역사적․사회적 문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과언일지 모르나 ‘개인적 재능’이란 것도 역사적․환경적 문맥의 하위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기껏해야 제한적인 돌연변이일 뿐인데 그것이 넓게는 우리의 ‘언어관습’ 일반과 좁게는 ‘문체감각’ 전반에 드러나 있음은 보는 바와 같다). 게다가 전 지구적으로도 어떤 사행심리의 대상이 되고만 문학행위 자체가 그런 황무지 개간벽 및 확장벽을 부채질하고 있는 듯하다(문학의 이벤트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것에 반드시 곁들여지는 헤픈 박수치레, 옥석가리기에 무분별한 우리의 ‘풍토성’도 한번쯤 되씹어봐야 할 문제이다). 그런저런 현황을 따져보더라도 우리의 ‘젊은’ 소설이 감당해야 할 수고로움은 너무 벅차다. 따라서 땅뙈기를 무작정 넓혀가기보다는 작지만 조촐한 채전밭을 일궈가는데 전심전력해야 오히려 개개인의 ‘뜨고 싶은 문명(文名)’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소설의 바람직한 부상에도 적절한 차선책이 아닐까 한다. 어떤 탁발한 이론으로 걸고 넘어진다 하더라도 예술은, 문학은, 나아가서 소설의 궁극적 목적은 속 보이지 않는 어떤 세련미의 고양일테고, 그것을 검증하는 안목이야 어느 눈이라도 다를 리가 만무할 터이다. 그러므로 어른스러운 시각의 찬찬한 조명이야말로 유치한 현실에의 표피적 접근․해석을 밀막는 유일한 도구일 것이다. 요컨대 우리 사회가 아무리 유치하다 할지라도 소설만은 진지한 모색에의 경주를 펼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리타분한 상념을 지울 수 없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