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벨르이가 『페테르부르크』를 창작함에 있어 과제로 설정한 것은 격동기 러시아 역사에 대한 독창적이고 유동적인 묘사이다. 1905년 가을 제국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묘사하면서 작가 벨르이는 러시아 사회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난 내용은 고정적, 규정적 성격을 띠지 않으며, 소설에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분명히 주장되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단지 혼란한 시대의 불안한 공기만이 묘사될 뿐이며, 이로써 작가는 자신의 비극적 예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페테르부르크』(1916)는 러시아의 상징주의 시인이자 철학자, 문학이론가였던 안드레이 벨르이(1880∼1934, 본명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부가예프)의 장편소설로서, 러시아 제 1차 혁명 직후인 1905년 10월을 배경으로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황을 기록한다.

벨르이가 『페테르부르크』를 창작함에 있어 과제로 설정한 것은 격동기 러시아 역사에 대한 독창적이고 유동적인 묘사이다. 1905년 가을 제국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묘사하면서 작가 벨르이는 러시아 사회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난 내용은 고정적, 규정적 성격을 띠지 않으며, 소설에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분명히 주장되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단지 혼란한 시대의 불안한 공기만이 묘사될 뿐이며, 이로써 작가는 자신의 비극적 예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페테르부르크』의 중심에 자리잡은 것은 러시아인이 세대를 달리하며 고민했던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존재하는 광대한 영토의 러시아는 동양과 서양의 혼합이 아닌, 고유의 민족적 성격을 추구해왔다. 이는 푸슈킨,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등 많은 러시아 작가로 하여금 러시아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자신의 작품 속에 표명하게 하였으며,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는 그러한 전통의 정수이다. 당시 러시아 사회와 개인의 의식 속에는 이성, 질서, 대칭으로 특징지어진 서양적 사고와 불합리와 직관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고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원칙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내부와 외부에서 충돌하게 되었고, 그것은 러시아 국가와 민족의 불안, 소외, 고립 등으로 나타난다.

소설 『페테르부르크』는 동양/서양, 개혁/보수, 과거/현재, 그리스도/사탄의 대립적인 세계로 구성되어 있고, 이때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양극의 투쟁의 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벨르이는 이들이 실제로는 대립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개혁과 보수 모두 현실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그것은 모두 허상으로서, 결국은 통제되지 않는 마음의 횡포로 끝날 것이다. 동양과 서양 역시 러시아인들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것으로서, 둘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혹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적 구분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와 권력(아폴론 아폴로노비치), 빈곤과 결핍(두드킨과 스툐프카)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 주인공들의 대립도 그 의미를 상실한 채, 모두 넵스키 대로를 지나가는 얼굴 없는 회색대중 속에 통합된다. 작가 고골에게 있어 개인성을 말살당한 주인공이 ‘코’나 ‘외투’가 되어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나듯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영혼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은 넵스키를 활보하는 ‘중절모’, ‘지팡이’, ‘우산’으로 대치되고,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행인은 ‘그림자’로 변화하는 것이다.

‘유럽을 향한 창’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역사를 보유한 ‘러시아를 향한 창’이 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고유의 경험과 의미를 보유한 살아있는 형상으로 묘사되는데, 벨르이의 독특한 언어실험은 이러한 도시의 형상을 가능케 했다. 『페테르부르크』는 세계 문학사에 있어 가장 독창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서, 나보코프는 조이스의 『율리시즈』, 카프카의 『변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벨르이의 소설을 위대한 20세기 산문의 걸작으로 손꼽았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적 토양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채, 전 세계를 향해 독특하고 힘찬 목소리로 생생하게 러시아를 전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