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음악가가 누구냐고 묻는 것은 프랑스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프랑스에는 훌륭한 작가가 많다는 말일 것이다. 그 많은 작가들 중에서 우리나라의 일반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고 전공자들에게 가장 빈번하게 연구대상이 되는 이 중의 하나가 보들레르일 것이다. 그의 시세계가 고답파와 낭만주의, 상징주의의 특성들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임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더 큰 이유는 아마도 150여 년 전에 그가 드러내 보였던 그의 얼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세계에는 우리의 다양한 모습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상에 대한 갈증과 일상적인 고통 사이에서 우리의 존재는 참담하게 찢겨지는가 하면 추함이 환상적인 신기루와 짝을 이루는 북적거리는 도시 한 복판에 우리는 서 있기도 한다. 육체의 유혹에 저항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우리는 베아트리체를 그리워한다. 거짓말쟁이인 신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버림받은 사탄과 타협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시에 의해, 예술에 의해, 사랑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을 믿고 희망한다. 이렇게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영원한 모습을 보여주는 보들레르에게서 우리는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가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고 빈번히 연구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의 작품은 번역된 것이 의외로 많지 않다. 그 중 가장 많이 번역된 것이 『악의 꽃』인데 김붕구, 박은수, 정기수님 등이 그 역자이다. 이 번역 작품들이 일반 독자를 위한 것이라면 이번에 윤영애 교수에 의해 번역된 작품은 일반 독자 뿐만 아니라 전공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작품이다. 번역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구서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장점은 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풍부한 옮긴이의 주이다.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 설명이라든가 시에 나오는 신화적인 요소들에 대한 해설은 어쩌면 당연한 봉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풍요롭게 이미지를 분석한 것과, 어떤 이미지가 어디에서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는지를 밝힌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지 분석은 플레야드 판의 해설에서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작업이다. 역자에 의해 분석된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은 이미지 분석하는 방법도 배울 것이고 결국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반복적인 출현 분석은 시인의 고유한 상징체계나 상상력의 구조를 밝히는 데 꼭 필요한 주요작업이다.
전반적으로 시는 수월하게 읽힌다. 번역이 매끄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의역이 조금 지나치거나 단어 선택이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등대들」에서 ‘하늘에 바람처럼, 바다에 밀물처럼’보다는 ‘하늘의 바람처럼, 바다의 조수처럼’ 이 더 합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넘치고 용솟음치는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이 빠졌다 들어오고 다시 빠져 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등 움직임을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의 끝부분에서도 보초들이 되풀이하는 것은 ‘울부짖음’보다는 ‘외침’이 더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령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구절 ‘깊은 숲 속에서 방황하는 사냥꾼들이 부르는 소리’ 보다는 ‘깊은 숲 속에서 길 잃은 사냥꾼들이 부르는 소리’가 더 적합할 것이다. 방황은 길을 잃은 다음 후속되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앞에서 언급한 방대한 해설 작업에 비하면 그냥 가려질 수 있는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한 가지 필자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랄까 욕심을 이야기 하자면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하는 김에 아예 이 시집의 제목을 『악의 꽃』아닌 긍정적인 다른 제목으로 바꾸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아마 1930년대 이래로 불려와 굳을 대로 굳어져버린 제목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악의 꽃』이라는 말은 너무도 가당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대개의 사람들이 악의 꽃이라는 말을 악덕의 총체라던가 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도 ‘악의 꽃의 역사’라는 해설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원제 ‘Les Fleurs du Mal’은 ‘악(또는 고통)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지 않은가? 일제의 잔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