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영한_소설가, 동의대 문예창작과 교수. 1947년생. 소설 『머나먼 쏭바강』 『지상의 방 한칸』 『왕룽일가』 『사마리아 여인』 등
10년도 더 지난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자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작 소설이 발표된 게 아마 1990년쯤이었을 테고 그 작품이 영화화된 것이 바로 그 직후라 세월이 흘러도 많이도 흘렀다.
영화와 원작 소설이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란 흔치 않은 일이다. 그건 비단 영화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나 연극도 마찬가지 경우에 속할 터인데, 10여년 전 만들어졌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만은 예외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건 원작자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기운을 다 불어넣었던 감독 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아직까지도 궁금하기만 하다.
이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나서 시사회엘 간 적이 있다. 스태프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의외의 인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백기완 선생이었다. 선생의 독특한 복장이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나는 그저 대만족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장면과 장면, 대사, 그리고 메시지까지 원작을 너무도 잘 소화해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작자인 나의 느낌일 테고 막상 그 영화를 총 지휘한 감독은 어떤 느낌을 혼자 몰래 감추고 있었던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가 세상으로 나간 직후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후회하고 있다는 어느 일간지 기사를 보기까지는 감독 역시나 만족하고 있으리라 추측하고 있었을 뿐. 아마 감독으로서는 원작 소설을 따르기만 했을 뿐으로서 영상 예술가로서의 창조적 변형을 감행하지 못했다는 데 따른 자기 반성이 뒤따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하느냐, 원작을 충실히 따르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영화감독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일 터이다. 원작 소설을 가져가서 그것을 자신의 개성에 맞는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란 그 감독의 온전한 자유이자 고유한 영역일 것이다.
한편 나로선 뜻밖의 손님으로 초대되어 온 백기완 선생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그도 나와 비슷한 소감이었고, 그는 사뭇 기분이 좋아 감독한테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아니 그보다 더한 아마도 최상의 상찬을 감독한테 선사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아마도 그 비슷한 찬사였지 않았나 싶다.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