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마시면 엉덩이가 먼저 취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시 쓰는 일이 자꾸 연관지어지는지 모르겠다. 딱히 시를 어떻게 써야겠다는 것도, 어떤 그럴싸한 소재가 떠오를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시 쓰기를 해오는 동안 죽 고민하고 있는 시란 무엇인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어떤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꽉 붙잡아 매달려 생각하고 있지도 않은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덩이가 취한다는 말 그 자체가 때론 꽤나 우습기도 하고, 때론 뭔가 진지하고 숙연한 면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운전을 하거나 화장실에 있을 때처럼 혼자 있는 경우가 생기면 ‘막걸리를 마시면 엉덩이가 먼저 취한다’ 라는 말을 입 밖으로 슬그머니 내어놓아 보기도 하곤 한다.
도대체 그 말속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걸까? 내가 다닌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문방구와 점방 사이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양조장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 때라 양조장 앞마당 멍석에 널어놓은 하얀 술밥이야말로 허기를 채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상이었다. 학교가 파할 무렵 나도 친구들과 어울려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그 술밥을 자주 훔쳐 먹었었다. 쌀을 꼬들꼬들하다 할 정도로 되게 쪄서 널어놓은 술밥,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 침이 돈다. 그것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꼭 쥐면 주먹밥처럼 뭉쳐졌는데 입으로 넣으면 고소하기도 하고 단맛도 났다.
그 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양조장집 주인 성씨 아저씨나 일하는 인부들이 아닌 마당 한쪽 돼지우리에 있는 커다란 돼지의 눈빛이었다. 술 찌꺼기를 먹여 중소만큼이나 자란 허연 돼지. 정신 없이 술밥을 손으로 뭉쳐서 입에 넣다가 뭔가 뒤에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라 돌아보면 술에 취한 돼지가 뻘건 눈을 하고는 우리를 노려다보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에게 들킨 것 보다 더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는 했다.
장난기가 동한 우리는 막대기를 들고 돼지를 때려보기도 하고 돌을 던져보기도 하지만 돼지는 소리만 지를 뿐 엉덩이를 들지 못해 그저 당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 중에 하나가 하는 얘기가 걸작이었다. 돼지가 막걸리 찌꺼기만 먹어서 엉덩이가 술에 취해 저런 것이라고.
어떤 말이나 현상을 접하고 나면 나는 그것을 곧바로 메모하거나 시를 쓰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엉덩이가 취한 돼지를 떠올리듯이 혼자 있을 때 그것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리고 우리를 노려다 보았던 돼지의 붉은 눈빛처럼 끈질기게 머리 속에 갖고 다니곤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어떤 실마리가 풀리기도 하고, 의미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뭔가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모든 경험이나 사유들이 그냥 순차적으로 시가 되지는 않는다. 뭔가 허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시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현상을 목격하고 어떤 일을 경험하고 또 어떤 상황이 발생하여 그것을 처리해야 할 때 마음 한편에는 꼭 허한 구석 하나가 만들어지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다. 그 공간에서 경험한 것과 사유한 것들이 스스로 여러 차례의 탈피를 거듭한 끝에 시가 되곤 한다.
또한 그 공간이라는 게 아주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이를테면 꽃이 만발한 공원을 거닐다가 같이 걷고 있는 사람에게 “상가 집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옆 사람이나 말한 당사자도 황당해 한 적이 있다. 꽃이 피어 좋은 곳을 걸으면서 무엇이 그렇게 당신을 허하게 만들기에 그런 소릴 해대느냐고 따져 물어 변명하느냐고 쩔쩔 맨 일이었지만 정말이지 당시 나의 신상이나 주변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의식이 아니라 그냥 내 속의 허한 공간이 그렇게 말한 것뿐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면 왜 엉덩이가 먼저 취할까? 시인이 술을 마시면 어디가 먼저 취할까? 나는 내 속의 어떤 허한 공간이 먼저 취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 공간은 어릴 적 학교 앞 골목의 술에 취해 있던 양조장집 돼지 엉덩이처럼 항상 술에 취해 있는지도 모른다. 급박한 현실을 살면서도 엉덩이를 들지 못해 붉게 상기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 공간, 그 공간에서 시가 나오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