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제목에서 말씀 드렸지만 이 콩트는 우리 이모가 보면 안 됩니다. 제가 아주 곤란해집니다. 그러니 고자질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제 이모에 관해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랐고 결혼하여 부산으로 이주, 현재까지 살고 계신 제 이모는 한마디로 슈퍼우먼 소리를 듣는 아줌마입니다. 이모부는 가난 때문에 좋은 머리를 가지고도 공부를 그만 두고 일찍 무역선을 타게 되었는데 독학과 고학으로 82년도에 당시 국내에 몇 명 없다는 갑 일종 선장까지 지내다가 은퇴했습니다. 몇 만 톤급 배를 몰고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하셨지요.

  그런 남편의 행보에 한 치도 모자람 없을 정도로 이모도 강했습니다. 섬 출신 여자들은 야무진 생활력이 기본 사양이지만 또래에서도 돋보인 바가 충분했습니다. 우선 잠녀(潛女, 일명 해녀) 출신입니다. 두름박 밀고 거친 바다 속을 드나들며 돈을 벌었죠, 그리고 일찍이 미용 기술을 배워 지금도 웬만한 머리는 직접 자릅니다. 예전에 저도 머리를 여러 번 맡겼으니까요.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어 식당으로 재미를 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일이 눈앞에 있으면 팔 걷어 부치고 달려들어 후다닥 재빨리, 그리고 완벽하게 처리를 해내는 스타일입니다.

  완력도 만만찮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에 놀러갔을 때입니다. 어느 날 계모임 하러 간 이모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귀가를 했었죠. 술을 한 잔 하셔서 그러나 싶었는데 오자마자 화장대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슬쩍 보니 오른손 주먹에 머큐로크롬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을 수 없지요.

  계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어떤 술 취한 사내가 자꾸 치근대더랍니다. 시끄러울까봐 못 본 척 내렸는데 사내가, 말 그대로 저도 사내랍시고, 쫓아내려 계속 귀찮게 했답니다. 피할 수도 없어 이러지 말라고 눈에 힘주어 나무라자 취한 사람 근성으로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아, 씨팔, 같이 한 잔 하자는 게 뭐 어땠다고 이래, 이렇게 시비조로 변하더랍니다.

  “도망가자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것두 우습고, 그냥 있자니 화는 치밀고 해서 이 자식아, 맛 좀 봐라 하고서는 주먹으로 아구지를 한방 쎄렸다. 얼마나 야무지게 때렸는지 그 남자가 뒤로 쿵 하고 넘어지더라. 그때 좀 까진 모양이다.”

  반창고 잘라 붙이면서 씨익 웃으셨지요.

  이모는 그런 근성과 생활력으로 남편이 태평양, 대서양에서 부쳐온 월급을 착실히 모았고 아이들 셋을 번듯이 길러냈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부업을 해서 중년에는 자리를 잡았습니다(성실한 사람이 부자로 살기가 참 어려운 곳이 우리나라인데 저는 이모를 보면서 희망을 갖습니다).

  한 삼년 전 저는 거문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모께서 종종 오셨지요. 고향에 친정 어머니(그러니까 제 외할머니입니다)가 계셨거든요. 저는 고개 너머에서 홀로 끓여먹고 살았는데 이모가 오면 마음 푸근해져서 마을로 자주 내려갔습니다. 같이 밭도 메고 갯것도 하고 같이 낚시도 하고 그랬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부지런한 체질이 뒷산에는 무슨 나물이 피어 있고, 지금 물때라면 어디 바닷가에 뭐가 잡힐 게 뻔히 눈에 보이는데 방 안에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때가 맞아 떨어져 점심 먹고 같이 물질 가자고 저하고 약속을 한 날이었습니다. 오전 동안 제 할 일 해놓고 내려가니 한바탕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를 기다리고 계셨죠.

  그 때가 초여름이었습니다. 포근한 날이 계속 되다가 그게 지나쳐 슬슬 더운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시기였죠. 일 하고 나거나 소설이 안 풀리거나 하면 덥고 답답하기 일쑨데 그럴 때면 만사 제쳐두고 물 속에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죠.

  바다 속 풍경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수면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첨벙 뛰어들면 사이다처럼 물방울이 생겨나다가 잦아지죠. 그러면 물살에 흔들리는 해초의 세상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크고 작은 바위와 해초 무더기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적막의 세상. 무호흡의 공간. 슬렁슬렁 왔다가 휙 돌아서 멀어지는 물고기. 떼를 지어 어딘가로 가는 줄무늬 치어들. 더듬이를 내놓고 이쪽 눈치를 살피는 돌게. 그곳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온 몸이 서늘하고 가슴이 탁 트이죠. 그 맛에 혼자라도 종종 물 속으로 들어가곤 했죠.

  둘은 목너메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본섬과 등대섬을 이어주는 모가지 같은 곳으로 걸어가자면 한 사십분은 족히 잡아먹는 거리인데 이럴 때는 외삼촌이 쓰시던 고물 오토바이가 역할을 훌륭히 해냅니다. 해안 도로와 해수욕장과 겹겹이 나타나는 언덕을 한 순간에 지나치죠. 우리는 동백나무 사이에 오토바이 세워두고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모는 오른쪽 바닷가를 빙 둘러 가리키며 저곳으로 해서 저리 갔다 올 테이니 나중에 보자며 먼저 들어갔습니다. 저는 왼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모는 전문 잠녀 출신이라 아이들 물놀이 수준인 제 잠수 실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그날은 목적이 달라 그나마 수확물에 층이 더 졌습니다.

  이런 말하기 뭐합니다만, 저는 뭘 잡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물 속에서 놀고 구경하기를 더 즐겨하는 까닭에 별로 욕심을 내지 못하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소라를 잡으러 가도 저녁 한 끼 반찬거리면 손을 털고 나오기 일쑤라 할머니께서 “너는 욕심이 읎어 잘 살기는 글렀다” 이렇게 끌끌 혀를 차곤 하셨죠.

  그런데 그 날은 좀 달랐습니다. 욕심을 내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전복이었죠. 그게 귀물 중에서도 귀물로 대접 받는 만큼 귀한 것이라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그날은 꼭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며칠 뒤에 딸애가 방학을 맞아 저에게 오기로 했던 거죠. 딸애는 초등학교 일학년이었는데 그 나이 아이라면 해수욕장에서 같이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지만 그래도 애비 마음이라는 게 좋은 것 한 점이라도 먹이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좋아하든 싫어하든 말입니다. 이왕 물 속에 들어간 거, 전복 하나 잡아 놨다가 아이가 오면 죽 끓여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물질을 하려면 부지런히 이 바위 저 바위 사이를 살피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죠. 전복이라는 놈은 바위 아래쪽에 붙어있는 것이라 좀 있겠다 싶은 돌을 뒤집느라 속도가 붙지 못했거든요. 이모는 잽싸게 옮겨 다니며 소라를 잡는데 저는 바위를 뒤집느라 물방울 뿜어내며 낑낑대는 형국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났죠. 저는 적잖은 넓이의 바다 속을 그야말로 토목공사 하듯이 뒤집어엎느라 힘을 다 썼습니다. 정말 없더군요. 지쳐 슬슬 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 먹이겠다는 데 하나 잡혀줄만 하잖아, 드럽게도 안 보이네, 이렇게 궁시렁거리며 다시 물 속으로 머리를 처박았습니다. 저 밑에 소라 하나가 보이더군요. 자맥질 해 들어갔다가 혹시나 해서 만만해 보이는 돌 하나를 뒤집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죠?) 전복 하나가 딱 붙어있는 것 아닙니까. 좀 깊은 곳이라 숨이 금방 차오르는데 이놈은 생긴 것은 둔해 보이지만 여차하면 사라지는 탓에(물 속에서 날아다닌다는 말까지 듣는 녀석이죠) 꾹 참고 서둘러 낫으로 떼어내고는, 병에 누운 어미 약에 쓴다고 산신령께 빌어 한 겨울 어름 깨고 잡은 잉어처럼 붙들고 나왔지요.

  손바닥 반 정도 되는 놈이었습니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겠냐 싶을 정도이지만 자연산으로 그 정도는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이라 그것 하나로도 그날의 수렵은 사실 성공적이었습니다.

  한동안 더 뒤집기 공사를 하다가 언뜻 보니 이모는 이미 물에서 나와 판자 쪼가리 모아다가 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이모 옆에는 제법 부푼 헝설이(해물 담는 망)가 보이더군요. 저는 잠시 궁리를 하다가 전복을 바지주머니(물질은 해수욕과 달리 위아래 옷을 다 입어야 합니다)에 넣고 지퍼로 잠갔습니다. 딸애 먹일 거라고 말 한들 이모는 웃고 말겠지만 그 말 하기도 뭐하고 해서 아예 입을 꾹 다물기로 한 것이죠.

  “얼른 와라. 여름 되었어도 아직 물이 영 차다.”

  저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화톳불 가에 앉았습니다.

  “니가 한 곳은 어째, 소라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제 헝설이를 보면서 위로조로 말할 때에도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표시내지 않으려고 주머니 속의 전복에만 신경 썼죠. 그런데 이모는 가방에서 소주를 꺼내며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처럼 이게 보이더라.”

  그러면서 자신의 헝설이에서 전복을 하나 꺼내더군요. 희한하게도 제가 잡은 거 하고 꼭 같은 크기였습니다.

  “이거 썰어서 소주 한 잔 해라.”

  전 속이 뜨끔 했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찔렸겠습니까. 나도 비슷한 걸 하나 잡았다고 말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는데? 사실 나도 하나 잡았는데 딸애 주려고 안 내놨다고 지금이라도 말을 할까? 그렇다면 이것도 가지고 가서 함께 끓여주라고 할 게 뻔한데, 그러자니 억지로 얻는 것 같아 미안하고, 모르는 척 하자니 선뜻 먹으라고 내미는 이모 마음이 너무 걸리고……

  뭐 그런 궁리 하느라 누가 봤다면 제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을 겁니다.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말입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저는 시킨 대로 이모 전복을 손질해서 네 토막 냈습니다. 이모는 결국 저 먹이려고 그러신 거라 작은 쪽 하나만 받고 손을 내저었습니다. 음식보다는 약에 가깝다는 자연산 전복을 저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씹어먹었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몰려면 뒤에 앉은 이모가 저를 잡아야 합니다. 가까운 생질이지만 가슴이나 배를 끌어안을 수 없기에 이모는 제 바지 허리띠 양쪽을 움켜 잡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숨겨둔 전복이 이모 오른손에서 십 센티미터 밑에 있었던 겁니다. 하여 돌아오는 내내 이모 손이 조금만 가까이 내려오면 허리를 비트느라 아주 죽을 맛이었습니다.

  들으신다 하더라도 호호, 웃으시겠지만 이것은 아직도 이모에게 비밀입니다. 물론 그 전복은 냉동실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제 딸애 죽으로 쓰였는데, 그런 고난 끝에 끓여놓은 것이라 약발을 받았는지, 그런 소심한 심정으로 끓인 것이라 약발은 고사하고 그냥 똥 되고 말았는지 그것은 알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