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의 문화적 전이- 獨譯 Euer Paradies 당신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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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후기
소록도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의 문화적 전이
- 獨譯 ������Euer Paradies 당신들의 천국������
김 형 식
번역은 단순히 “옮겨 쓰기”의 작업이 아닌 “재창조”의 예술이며, 나아가서 번역은 하나의 “문화적 전이”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텍스트는 언어화된 사회문화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고, 텍스트의 새로운 형태로서의 번역은 그 번역이 속하는 사회 문화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번역가는 단순한 기호 풀이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문화의 새로운 구성자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게 된다.
번역가에게 주어진 과제, 텍스트를 작가 자신처럼 이해해야 하고 이렇게 이해한 바를 번역어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유사하게 표현 전달해야 한다는 - 원전 그대로의 전달은 애당초 불가능하므로 - 과제는 시종일관 어려웠다. 저 많은 애환과 사연들이 얽히고 설킨 실제의 섬 소록도의 이야기들, 섬의 나환자들이 겪었던 실제의 사건들, 이러한 소재에 대한 수없는 취재 활동과 자료 수집을 거친 후 작가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로 구현해 놓은,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장편 ������당신들의 천국������의 번역은 그리하여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많은 시간의 소요는 번역어의 올바른 선택을 위한 역자의 고민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작품 원전의 의미를 살리면서 독일의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독일어의 적확한 표현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하나의 정신적 번민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 단어를 놓고 국어사전, 백과사전, 그림사전, 한독사전, 독한사전, 독독사전, 영독사전, 국영사전, 영영사전, 독영사전등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찾아야만 했고 이런 사전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며칠을 저울질하며 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작품 ������당신들의 천국������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두 단어 “명분”과 “배반”에 대한 독일어 표현을 찾는 데에서도 그러하였다. 정치권력의 정당성 문제를 두고 이것의 도덕성을 명백히 따지고자 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말, 말하자면 이곳의 윤리 당위적인 정치관이 배어 있는 “명분”이라는 단어와 등가성을 갖는 독일어를 한 단어로 일관되게 표현할 수 없어 이 말이 사용된 문장의 전후 맥락에 따라 “Moralischer Anspruch”, “Rechtfertigung”, “Gründe”, “Vorwand”, “Verpflichtung”, “Gebot”, “Grundsätze”, “Ziel”, “Ideal”, “Moralische Pflicht” 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곳의 유교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하여 주로 인간관계에서 지켜야할 신의를 어기고 등을 돌리는 행위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배반”이란 단어도 일견 독일어의 “Verrat”가 등가성을 갖는 것으로 보이나 이 단어 속에는 인간관계에 등을 돌리는 행위의 의미보다는 숨겨진 비밀을 탄로시키는 뜻이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어 이러한 미묘한 차이가 독자들이 그냥 소화하기에 부담감을 줄 것 같아 많은 고심을 해야만 한 것이다. 결국 이 단어를 사용하되 이탤릭체(Verrat)로 표현하기로 했다.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하여, 말하자면 이 작품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사회 정치적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소록도의 실제적 사실과 어떠한 관련을 맺는지를 알아야 했었고 그러기 위하여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아야 했고 아울러 이러한 소재에 담겨진 철학적 담론의 실마리들도 추적해가야 했다. 작품의 탄생을 위해 행해진 수많은 취재와 자료수집, 소록도의 역사 및 문헌들에 대한 지식 또한 번역자가 갖추어야할 준비 작업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필요할 때마다 관계 분의 도움에 의지해야 했다. 부족한 번역자에게 언제나 고무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신 작가 선생님과 소록도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제공해 주신 소록도 국립병원 서무과와 고흥군청의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본 작품의 경우 특히 분량이 방대하여 번역만을 직업으로 하지 못하는 본인에게 작업의 휴지기는 그대로 또 다른 부담을 요구했다. 이를테면 한 방학기간의 작업은 휴지기를 거친 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의레히 이미 행해진 번역을 모두 뜯어 고치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앞부분은 셀 수 없이 많은 새로운 번역이 시도되기도 했다. 주요핵심어와 관련된 표현들, 그리고 작품 주제와 밀착되어 나타나는 언어들에 주의를 기울여 작품 전반에 걸쳐 통일을 기울이는 일도 상당히 중요했는데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작품의 양이 방대할 경우 이러한 실마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서의 독일어를 그것도 성인이 다 되어 익힌 역자의 부족한 언어감각의 한계점을 지양하기 위하여 문학번역에 조예가 깊으며 이 방면의 전문가인 피터 프리드리히(Peter Friedrich) 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을 밝힌다. 본 역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한계점을 인정하고 원전의 뜻을 그대로 살리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였고 프리드리히 씨는 독일어권 독자에게 초점을 맞추는데 작업의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 분과의 협력관계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며 또한 작가의 수준에서 그 분이 본 번역서를 수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역자가 해 내어야 하는 부수적 과제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와 나누어야 했던 서신만 해도 얼마나 많은 페이지들로 기록되어야 했던가!
끝으로 부기할 점은 작품의 독역 출판을 위해 출판사를 선정해야 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저명한 출판사를 섭외하기 위해 작품 소개서를 작성해야 하고 출판사 쪽의 독서의 분량을 덜어주기 위해 작품의 주요 대목을 발췌하는 작업 등 아직도 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 역자는 우리나라의 암담했던 최근 사회적 정치적 토양을 배경으로 하여 생성되었으며 한국문학의 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당신들의 천국������을 독일어권에 처음으로 소개하는데 대한 긍지와 그에 상응하는 막중한 임무의 무게를 시종일관 느끼며 출판 후 과연 독일의 독자로부터 어떠한 반응을 얻게 될 것인지 참으로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문학을 세계무대에 올리는 사업들은 바로 이처럼 많은 인내와 사명감을 요청하는, 길고 긴 여정이어서 짧은 시간 내에 그 성과가 가시화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게 이 분야에 많은 진척이 이루어져 더욱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기를 고대하며 아울러 첫 번역을 토대로 하여 보다 개선된 제 2, 제 3의 번역들이 계속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한다. 본 번역을 가능하게 해준 대산문화재단에 충심으로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