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문화”란 사회 저변에 깔린 유형 무형의 것들로 학문이나 예술, 종교, 도덕을 포함한 그 사회의 관습이나 생활 습관까지도 그 일부로 볼 수 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거나 혹은 쇠퇴해 사라지기도 한다. 한 나라의 문화는 일부 계층이나 특정한 사람들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스스로 형성해 나간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전통이라 불려지기도 하도 때로는 민족의 기질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문화는 화려함보다도 소박하고 자연적인 미를 강조한다거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에서 보이는 것처럼 유교적인 예의범절로 한국문화의 특징을 보이고자 하는 점 등에서 문화의 그런 특성들을 엿볼 수 있다. 서구인들에게 한국이 처음 소개될 때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 표현됐을 때도 그 속에는 한국문화의 한 특징이 보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압축된 표현만으로는 그 문화의 전체적인 면모가 다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일반적인 정의와 다르게 한국인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시각도 있다. 한국인들은 술을 좋아하고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며 쉽게 친해지지는 않지만 한 번 친해지면 진심으로 친구가 된다고 평가하거나, 반대로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이 강해서 외국인은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장벽 밖에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한국인들과 한국문화에 대한 평가는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데, 한 민족을 어떠한 일면만으로 정의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며 한 사회 내에는 어떤 독특한 문화적 동질성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표현으로 압축하여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문화의 한 측면을 어떤 하나의 관점을 통해 설명해 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상대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방식, 존경을 표하는 방식, 애정을 나타내는 방식 등 사람들이 서로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문화가 어떠한 형식으로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의 독특한 형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형식에는 내가 보기에 에티켓이나 예절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나타낼 수 없는 어떤 정서들이 있는데 그러한 미묘한 느낌이 한국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한국어는 경어체계가 복잡한 언어들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주체경어, 객체경어, 상대경어로 나뉠 뿐만 아니라 그 등급이 최상에서 최하까지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외국인들은 먼저 이 경어의 체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한국어를 제대로 배웠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경어법을 모르는 외국인의 말은 그가 아무리 어려운 어휘들을 사용해서 말한다고 해도 언제나 한국인들을 웃게 만든다.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경어체계가 복잡하고 세밀하면서도 그 체계 속에는 어떤 비어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2인칭 호칭의 미묘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는 상대방을 지시하는 호칭어들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호칭이 달라지기 때문에 2인칭을 대표하는 대명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2인칭 대명사인 ‘너’라 지칭될 수 있는 인물은 나이가 어리거나 같은 사람뿐이고 더구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상대가 비록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쉽게 ‘너’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너’가 존칭어가 아니기 때문인데 그와 대칭적인 자리에 있는 2인칭 존칭 대명사인 ‘그대’는 실제 회화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2인칭 대명사가 대단히 불충분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상대방을 가리키는 다양한 호칭들로 대신한다. ‘선생님’, ‘사장님’, ‘어르신’, ‘댁’, ‘사모님’, ‘언니’…… 등 무수한 호칭들과 ‘-씨’, ‘-님’ 등의 표현이 ‘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데, 그 사용이 매우 복잡해서 외국인들은 상대에게 적합한 호칭이 무엇인가를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것은 때로 한국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도 하여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논쟁들이 결국에는 싸움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중립적인 2인칭 지칭어가 없어서 “아니, 너라니?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하는 식으로 싸움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한국인들이 가지는 유대의 독특한 형식이라 생각해 본다.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어떤 하나의 객관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과의 관계나 사회적 관계 내에서 주관적인 대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 A는 B에게는 친구이지만 B의 친구 C에게는 후배일 수 있고 C의 친구 D에게는 직장의 상급자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이 함께 모였을 때 서로를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 하는 점이 매우 곤혹스러워지는 것이다.

사회 체계 내에서 어떤 한 사람의 위치가 언제나 그를 보는 시각들에 따라서 달라지고 그 관계가 아주 미묘하여 ‘나’와 ‘너’의 관계가 아주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그 인간관계에는 항상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개입하게 된다. 어쩌면 한국에서 다양한 술문화가 발전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이 복잡한 감정들이 어느 때에든 발산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서로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이 미묘한 관계를 달리 어떻게 단순화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조용하고 정중한 모습과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이처럼 하나의 위치로 고정되지 않는 사회적 관계 위에 한국사람들이 서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것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 속에서 서로를 항상 새롭게 정의해 나가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모시켜나가는 역동적인 한국의 사회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