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에 ‘조선어 강좌’가 마련된 이후로 현재 독립된 학과로서 45명의 학생과 8명의 교수 및 강사가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바르샤바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강의실 창문 밖으로 바르샤바의 전설을 간직한 비스와 강물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흩뿌리며 흘러가는 풍경을 가슴에 안은 채, 오늘도 파란 눈의 폴란드 학생들과 문학과 인생, 그리고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 학생들과 작년 봄 학기엔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 고전문학 작품을 강의한 것이었다. 올해로 51년의 역사를 간직한 바르샤바대 한국어문학과에서 처음 열린 ‘고전문학 텍스트 강독’ 수업이라서 감격에 앞서 긴장과 부담감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강의 첫날부터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국어문학과 동료 교수들의 청강 응원에 힘입어 신나게 강의를 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이 마치 배우와 변사가 된 듯이 연기와 변성을 시도하면서 강의를 해 나갔다. “불휘 기픈 남”으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제 2장)를 열심히 따라 읽고, 각종 동작을 취하면서 설명하는 필자의 말을 이해라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전소설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한글본)과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許生傳』(한문본)을 강의 계획표에 집어넣었으면서 정작 그 시기가 다가오자 강의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학생들은 진지함과 열정으로 나에게 보답해 주었다. 장자백본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에서 춘향이와 이몽룡이 광한루에서 만나는 대목에서 걸쭉하고 속된 입담으로 여주인공 춘향이의 대사를 읽어 나갈 때, 춘향이가 이처럼 지독한 욕쟁이인 줄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면서 한편으로 키득키득 대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수줍은 듯 애써 참으려 하던 여학생들의 순수한 모습 또한 잊을 수 없다.
이번 학기부터는 3, 4학년이 함께 근현대 소설 작품을 읽어 나가고 있다.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감자」,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김유정의 「동백꽃」,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채만식의 「태평천하」, 이상의 「날개」, 그리고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김승옥의 「무진기행」,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비록 한 작품 전체를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한정된 강의에 이렇듯 여러 편의 작품을 읽어 나가면서 폴란드 학생들이 한국문학의 다양한 개성과 특질을 느끼고 찾아내기를 바라는 것은 순전히 강의자의 의욕이 너무 과한 탓일까.
이러한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한편으로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강의자의 불만족과 갈등 또한 커져간다. 그것은 강의자와 외국인 학생 쌍방 간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코드의 불일치에서 오는 딜레마와 대면할 때 증폭된다. 일반 외국인과 달리 한국어문학과에 적(籍)을 두고, 한국어를 수년간 공부하고 있다는 ‘우리편’ 의식을 가진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에게 한국문학 작품은 무수한 실타래로 얽혀 있어 풀기 어려운 정신 또는 감정 덩어리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은가 보다. 그것은 한국문학 연구라는 고상한 목적과 사명의식을 갖고 한국어문학과에 둥지를 튼 학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애당초 한국문학과 친하게 되기란 ‘산 너머 산’ 격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현실적, 실용적 목적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한국어문학과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 학생들에게 한국문학 수업이 학점을 따기 위한 ‘고난의 가시밭 길’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폴란드 학생들의 의식 속에는 세계문학 수준에서 다뤄지는 폴란드의 국민시인인 아담 미츠케비치(Adam Mickiewicz)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셴케비치(H. Sienkiewicz)의 『쿼바디스 Qui-Vadis?』(1905), 레이몬트(W. Reymont)의 『농민들 Chołpi』(1924), 그리고 시인으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미워슈(C. Miłosz, 1970년 수상)나 쉼보르스카(Szymborska, 1996년 수상), 그 외 저명한 다수의 폴란드 문학 작품과 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렇듯 자국문학에 대한 자긍심으로 가득 찬 폴란드 학생들에게 한국문학 작품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까. 대개의 경우, 이질적인 문화와 의식 차이에서 기인하는 ‘생소함’과 ‘호기심’의 측면에서 한국문학에 접근하려 하지, 애정을 갖고 감정으로 껴안을 만한 갈급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주입식 학교 국어교육을 성실히 받으며 성장한 한국인 강의자가 맞춤형 주제를 가지고 즉, 침을 튀기며 제 아무리 한국인의 ‘한(恨)’ 의식이나 ‘이별의 정한(情恨)’, 또는 ‘신명(神明)’, ‘7․5조의 운율’이니 ‘해학(諧謔)’, ‘유교적 사고방식’을 운운한다 할지라도 폴란드 학생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이자 느낌 없는 물음표로 다가오기 쉽다. 민요 ‘아리랑’을 부르며 그 가사의 의미를 힘주어 설명하여도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능숙한 한국어 사용자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종종 목도하기도 한다. 이것은 표현 및 언어 사용의 한계에 앞서 민족적 감정과 삶의 체계와 전통이 다른 데서 오는 ‘정신적 연결 접점의 불일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불일치의 근본에는 내용을 전달하는 교수 방법의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소설이나 희곡, 수필 등의 산문문학이 아니라 시나 시조와 같은 시가문학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한국문학 교육의 목적과 방법의 현실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예로, 1시간 짜리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된 TV 문학관 「봄 봄」(김유정)이나 「감자」(김동인)를 보여주었을 때, 학생들의 반응(작품에 대한 평가와 관심 정도)이 사뭇 달랐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필자는 강의가 끝나고 나면 내 자신이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연기를 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문학 교육은 이론 수업이 될 때 실패하기 쉽다고 본다. 외국인 학생들 앞에서 사명감 하나만으로 한국문학을 가르친다 해도 절반의 성공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오히려 외국에서의 한국문학 교육은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나 세계사적 문제에서 비롯된,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단순한 통과의례용 강좌의 성격에서 탈피, 한국의 전통적인 교육방법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국문학이 논리 이전에 한국인의 삶 자체였음을 이해시킬 수 있는 한국문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몸으로 부딪치며 만들어 가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릴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신명난 한국문학 한 판을 짤 수 있는 끼있는 교육 방법의 실제 하나가 한국문학의 특질을 설명하는 무수한 미사여구보다 더 강렬하고 한국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기제가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강의 시간에 어김없이 어설프나마 온 몸으로 연기하는 광대가 되어 폴란드 학생들과 한국문학 텍스트 속에 담긴 느낌을 전해 주는 ‘즐거운 노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