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파르테논 신전을 짓고, 디오니소스 축제 때 비극을 공연해서 인간의 운명을 관조하고, 희극을 써서 정치와 문화 모든 분야를 마음껏 조롱하고, 철학을 해서 지혜를 사랑했던 희랍 사람들과 에게 바다의 자원을 착취하고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학살을 자행한 제국주의와 확장주의의 희랍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이었다. 차르나 차리나의 궁전에 모여서 무도회를 열고 잔치를 벌였던 우아한 러시아 귀족들의 핏줄 속에는 잔혹한 코사크 기병의 피가 흘렀다. 완벽한 사회 복지 제도를 구가하는 북구 사람들의 핏줄 속에 바이킹의 피가 같이 섞여 있다. 문명과 야만은 같이 있고, 원시는 문화만큼이나 편재한다, 마치 선이 있는 곳에 악이 있고, 악마가 천사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괴이한 사건들이 많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많았다. 해괴한 일들은 언제나 있었다. 글을 정직하게 쓰면, 그런 것들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부부가 서로 죽이고, 정부가 정부를 죽이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죽이는 일은 거의 매일 일어난다. 근친상간도 많다. 조선 때도 그랬다. 자식이 어머니를 죽이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였다. 어떤 사람은 남의 집 의붓아들로 들어가서 그 집 수양딸을 핍박 간음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내가 동네 사람과 사통하는 것을 동네가 다 아는데 혼자 모르고 있다가, 뒷문으로 나가는 간부를 쫓아 가 상투를 잡고 사타구니를 발로 차서 죽이고, 집으로 돌아와 아직 옷도 채 다 못 입은 아내를 쳐죽였다.

  원래 비극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알고 죽이고, 알고 죽이려다 안 죽이고, 모르고 죽이고, 모르고 죽이려다 알고 안 죽인다.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고전적 비극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웅이 없는 세상에서 산다. 그들의 작품들에는 소시민의 죽음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다만 죽음의 냄새가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병든 냄새, 썩는 냄새, 죽어 가는 냄새다. 차라리 죽음은 산뜻하다. 인륜지대사들인 관혼상제 중에서 둘이 죽음과 관련돼 있다. 그 둘은 괴이하지도 해괴하지도 않다.

  엽기는 기괴한 것을 즐겨 찾는 것을 말할 것이다. 모든 죽음은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종교에서는 그것을 선종이라고도 하고, 시작이라고도 한다.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이다. 이승과 저승은 오늘과 내일, 또는 어제와 오늘과 같고, 생로병사는 사계절의 바뀜과 같은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죽음 자체는 사고사건 병사건, 객사건 안방사건, 독살이건 자살이건, 아무 차이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처참한 죽음이나 온전한 죽음이나 불과 몇 초, 몇 분 차이로 똑같이 재가 되거나 흙 속으로 돌아간다. 그것에 이르는 과정은 괴상망측하다. 우화등선하지 않는 한, 와석종신을 해도, 죽어 가는 모습은 음울하다. 통곡과 오열은 필수적이고, 유산싸움이나 유족들 사이의 불화와 분쟁은 선택적이다.

  「명랑」이라는 단편에서는 첫 문장들부터 죽어 가는 냄새가 진동한다. ‘할머니’는 마지막에 가서 폭우로 계곡 물이 넘칠 때, 집이 무너져 토사에 깔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간단히 죽는다. 작가의 관심은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그녀의 삶에 있었다. 같은 작가의 「등뼈」라는 단편에는 뼈라는 말이 닭 뼈, 골반, 골수, 척추, 생선뼈를 포함해서 나의 계산으로 아흔아홉 번 나온다. 제목까지 합치면 백 번이다. 건설현장 노동자인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단편 「멍게 뒷맛」에서 못생긴 여자가 잘생긴 옆집 여자를 그녀의 모든 아름다움과 미덕 때문에 미워한다. 잘난 여자는 부부싸움 끝에 고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못난 여자는 ‘벼렸던 살인을 마친 사람처럼 아주 길고 긴 단잠에 빠져’든다. 음침한 것은 한 여자의 죽음이 아니라 그것을 기다리는 딴 여자의 바라봄이다.

  죽음 이야기가 이미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인물들의, 그러니까 작가의, 해석들 때문에 괴기해졌다면, 엽기적 이야기에 그것이 더 이상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것 없이도 이야기는 그것의 공포를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 죽음은 없는데, 전편에 죽음의 음산함이 짙게 깔려 있다. 인물들의 이름들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전직 국립대학 교수 마는 이혼하고 돈경숙이와 같이 산다. 그가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했잖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용서해줘, 엄마’ 하고 말하자, 마침 집에 와 있던 돈의 전 남편의 아들인 세원이 ‘새끼가, 왜 우리 엄마가 니네 엄마야 임마. 한 번만 더 그따위 소리 지껄여봐라. 어떻게 된다고 했지?’ 한다. 그는 그 청년에게 담배를 한 개비 얻어 피우고, ‘하나 더 줘’ 한다. 세원의 애인 부혜린과 그녀의 어머니 표현정의 관계는 삵쾡이와 생쥐와 같다. 음명애과 우균의 연인 관계, 노용과 준희의 남매 관계도 병적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아홉 편의 단편들 중에서 죽음이 나오는 것은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한 편뿐인 것 같다. 「똥개는……」에서 똥개가 아버지의 뒤통수를 각목으로 치고, 밖에서 나아 가지고 데리고 온 딸의 목을 조르고, 말리는 동네 어른을 칼로 찌르고, 자해를 하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아버지는 몇 년 뒤에 병사했다(초상 마당에서 칼부림이 났다). 이 작품의 사건들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라면, 그것은 그것이 죽음을 취급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특히 서술자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의 똥개의 포학을 보는 겁먹은 시점들 때문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는 할아버지가 있는 천애의 고아 게이꼬, 또는 경자, 또는 서유진의 도망과 그녀의 고용주인 다과점 주인의 그녀 추적 이야기다. 그녀는 훔친 돈으로 탄광 사택에 사는 할아버지한테 천연색 전시를 사주고 서울로 가고, 빵 가게 주인은 그 뒤를 따라가서 전시를 환수하고 같이 간 남자 점원한테 그것을 짊어지게 하고 눈길을 돌아온다.

  단순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낯설고 새로워 보이는 것은, 짙은 그 지방 사투리의 정확해 보이는 구사와, 눈보라와 추위와 먼 길 속에 들어있는 자연의 횡포와 위력과 위협, 그리고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단절들이 주는 음산함들 때문이다. 단절은 젊은 태식이와 경자 사이에, 한 솥의 밥을 먹는 주인과 종업원들 사이에, 손녀와 할아버지 사이에, 우체부와 편지 받는 집 사람들 사이에, 모든 사람들 사이에, 또는 사람과 자연 사이에, 사람과 시간 사이에, 즉 사람과 과거 (게이꼬의 어린 시절) 사이에 (경자를 굳이 게이꼬라고 부르는 것은 사라져버린 시대의 암시다), 사람과 현재 (성탄절) 사이에 (영어에 무지한 인물들한테 영문자로 된 영어가 수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밖에 수많은 것들 사이에, 들어있다.

  천운영 (「등뼈」, 「명랑」, 「멍게 뒷맛」)과 배수아 (『스키야키……』)와 김연수 (『내가 아직……』)는 왜 그렇게 글을 썼을까? 나는 그들이 엽기적이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직……』은 그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사춘기나 ‘오춘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들이다. 「똥개는……」 말고도 특히 젊고 어려 보이는 시선들이 두엇 더 있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은 ‘상도’로 이민간 ‘라도’의 한 신문사의 전 문화부장의 두 딸들, 특히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된 둘째 딸의 이야기다. 학생이 우연히 엿듣게 되는 국민윤리 교사가 음악 교사에게 하는 이야기가 이 편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들은 얘기치고는 너무 정확하고, 너무 고도로 어른스럽고, 너무 노회하고, 너무 닳아져서, 어리고 여린 시점으로부터 순진함을 뺏어버리는 것이 흠이다.

  「첫사랑」도 비슷하다. 한 남자 고등학생의 여학생에 대한 철없는 순정이 공순이를 거쳐서 작부가 된 연상의 여인의 너무나 피곤한 인생 경험에 의해서 갑자기 어른스러워져 버린다. 순진한 시점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편법이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는 중학생들의 폭력 이야기다. 서술 원재, 고아 태식, 반장 경호, 깡패 병호는 어른의 폭력을 고발한다. 중3 짜리들의 이야기에서 미숙한 시점을 퇴색케 하는 것은 담임인 폭력 교사 조씨의 경험만이 아니다. 그들이 벌써 어른스럽다. 선생들보다 그들의 의견들이 더 원숙하다.

  시점을 바꾸는 것은 진부한 관점에서 놓친 것들을 붙잡기 위해서이다. 개의 눈으로 사람의 세상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보았을 때 못 보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말의 눈을 빌릴 수도 있다. 순진한 시점의 마력을 살리자면, 어린 사람이 그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될 것이다. 개나 말이 사람의 식견을 갖게 되면, 사람의 눈이 아닌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중학생들이 중학생들의 마당에서 어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마당에서 그들과 싸운다. 힘겨울 것은 당연하다. 놓친 참신함과 순진함을 지식과 경험이 보상한다. 원래 그들의 의도는 진기한 시점을 얻어서 우리의 인식을 관성의 타성에서 조금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괴이한 일들이 많다. 시점을 바꿀 필요도 없이 정직하게 바라보면, 아무리 진부한 눈이라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눈을 조금 달리 한 것은 철저하게 정직하게 보기 위한 기량이다. 그들의 관찰과 세부들과 말재주와 구어체의 숙달은 우리 삶에 편재하고 인접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형상화한다. 사람 사는 곳에 괴기는 항상 있었다. 사람 사는 꼬락서니를 보여주자면, 거기에 있는 어떤 것도 감춰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못 보았다면, 그것은 그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볼 수 없어서였고, 그것을 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이라고 더 심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느껴질 수는 있다. 사람은 어느 때나 그의 세대가 말세라고 믿는 버릇이 있다. 군화 발 독재가 사라지고, 노동 문제도 시들해진 지금, 그것은 표적을 잃은 문학적 기운의 새로운 희생 염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