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발적으로 반성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밤이 충분히 깊어지면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곤 했다. ‘나’라는 일인칭과 더불어 달콤하고 가혹한 밤이 시작되었다. 이 밤에 대해 문학적으로 말하면 매우 ‘근대적’이다.
근대문학사 기원의 현장에선 이런 논쟁이 가능했다. 김동인 왈, “일기도 완전한 예술품이 될 수 있다.”(｢제월씨의 평자적 가치｣, 『창조』 6호) 이 발언에 대한 염상섭의 반응, “역사의 연대표도 우월한 예술품이라는 무식자의 궤변과 다름없다”(｢여의 평자적 가치를 논함에 답함｣, 『동아일보』 1920. 5.31～6.2). 김동인이 일기를 ‘역사의 연대표’로 생각했다면, 물론 그도 예술품 운운하진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연대표와는 다른 층위에서, 일기는 새로운 문학적 욕망을 대변하며 떠올랐다. 이제 일기는 ‘내면의 드라마’가 된 것이다. 문학적으로, 특히 시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내면적인 것이 되었을 때, “가슴 속에 감추어둔 일기장”과 같은 수사와 더불어 일기를 쓰는 자는 지극히 문학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사춘기의 아이들은 문학적이다?
이 말엔 또 한번 물음표를 붙여두자. 1920년대의 문학청년들과 2000년대의 아이들은 별로 닮아 보이지 않는다. 내게 주는 인상으로, 1920년대 문학청년들의 감정이 그 자신을 데이게 할 지경으로 뜨거웠다면, 2000년대 아이들의 감정은 놀랍도록 쿨하다. 나는 그 경계를 느낀다. 마치 한쪽 발은 1920년대 문학 청년들의 구두를 신고, 또 다른 발은 2000년대 아이들의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은 듯이 말이다. 이 경계를 전통의 권위와 균형감각으로 봉합해 둘 순 없을 것이다. 경계는 진동하며 균열을 일으킨다. 이 지진으로 나는 들썩거린다. 나는 아이들을 부른다. 이 아이들과 함께 나는 새로운 사춘기를 받아들였다. 어떤 어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 어른은 ‘주어지지 않은 역사’이므로.
1920년대 초 문학청년들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현재적이었다. 이들은 문학 자체를 만들고자 했다. 1920년대 초기의 문학적 열정과 노력의 많은 부분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너무나 자명하게 여겨지는 문학적 감수성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에 바쳐졌다. 그런데, 정말 자명한 것일까? 문학 내부로부터 이 자명성은 흔들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위기와 죽음을 느끼고 있다. 문학은 ‘이동’하고 있다. ‘주어지지 않은 역사’ 속으로. 그렇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다시,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문학 자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이었다.
나의 사춘기는 일인칭의 성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자발적으로 부끄러워하고 사랑하고 절망한다고 믿었다. 그때 나는 시적인 주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시를 쓰지 않았다. 이제 나는 시를 쓰는데, 다른 사춘기를 느낀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문학적이다? 그런데 문학적인 건 또 시적인 건 뭐지? 다만, 어떤 어른이 될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년 소녀들에게 말을 걸어볼 뿐. “얘들아, 뭐 하니? 나는 두 눈을 바깥에 줘버렸단다. 얘들아, 얘들아, 어딨니? 같이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