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글 이상우 ㅣ 연극평론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4년생
저서 『유치진 연구』 『우리연극100년』(공저) 『근대극의 풍경』 『식민지 극장의 연기된 모더니티』, 편저 『홍해성연극론전집』(공편) 『함세덕』 등
함세덕 ㅣ 극작가. 1915~1950년
희곡 「산허구리」 「동승」 「해연(海燕)」 「낙화암」 「서글픈 재능」 「무의도기행」 「심원의 삽화」 「기미년 3월 1일」 「감자와 쪽제비와 여교원」 「고목」 등
인천상업학교의 모험적 학생
...
이 상 우 당신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 알고 싶다.
|
함세덕 1915년 5월 23일 인천부 화평동 455번지에서 아버지 함근욱과 어머니 송근신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정삼품 벼슬을 지내고 인천으로 낙향했고, 아버지는 인천일본어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 공무원을 그만 둔 뒤에는 인천에서 객주(客主)노릇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당시로서는 넉넉한편에 속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목포부청에 발령이 나는 바람에 온가족이 함께 목포로 이주했다. 그러니까 유년기를 목포에서 보낸 셈이다. 너무 어렸을 때라 목포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 두고 인천으로 돌아와서 객주노릇을 했다. 나는 인천공립보통학교 2학년으로 전학했다.
이 상 우 보통학교 졸업 후에 인천상업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나?
함세덕 그렇다. 1929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상업학교(약칭 ‘仁商’)에 진학했다. 인상 시절에 나는 모범생이라기보다는 모험적인 학생이었다. 5학년 여름방학 때에는 관악산에 놀러간다고 거짓말하고 친구들과 금강산 여행을 떠났다. 이때금강산에서 캠핑을 하면서 마하연에서 어느 사미승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 그 사미승의 이미지가 「동승」의 창작 동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캠핑과 낚시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인천 주변의 바닷가와 섬을 자주 다녔는데, 그때 내가 놀러 다녔던 곳들이 훗날 내 희곡의 배경이 되었다. 「무의도기행」의 배경이 된 무의도, 「해연」에 나오는 등대가 있는 섬의 모델이 된 팔미도 등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상 우 인천상업학교 동기의 증언에 따르면, 당신은 인상 시절에 연극 공연에 참가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함세덕 맞다. 4학년 때 졸업생 환송회에서 연극 공연을 했는데, 그때 내가 대본을 각색하고 연출을 맡았다. 내용은 아마도 박승희의 「아리랑 고개」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나는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 당시 우리 집이 있던 용동 237번지 근처에 애관(愛館)이라는 인천의 유명한 극장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영화와 연극, 악극 등이 공연되었는데, 나는 새로운 연극이 들어오면 만사 제쳐두고 애관으로 달려갔다. 심지어 시험 전날에도……(웃음).
문 청기를 보낸 일한서방
…
|
이 상 우 당신은 1934년에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상업학교 졸업생들이 대개 보수가 좋은 은행에 취직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은행으로 가지 않고 서점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함세덕 나는 인상을 졸업하고 상경하여 본정통(本町通, 현 충무로)에 있는 일한서방(日韓書房)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은행으로 가지 않고 서점으로 간 것은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작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한서방은 주인이 일본인이었고, 주로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상대로 일본책을 파는 서점이었기 때문에 일본어로 된 세계문학전집과 일본근대문학전집 등이 많았다. 나는 점원으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문학전집에 실린 작품들을 탐독했다. 특히 해양문학과 아일랜드문학을 좋아했고, 서양 희곡들을 많이 읽었다. 그게 훗날 극작가가 되는 데 큰도움이 되었다.
이 상 우 입센, 싱과 같은 극작가들은 그때 접하게 된 것인가? 실례의 이야기지만 어떤 학자는 당신을 가리켜 ‘모방의 천재’ 라고 표현하였다. 당신 작품에 외국 작품의 모방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러한 지적을 한 것인데, 그것은 일한서방 시절의 독서 체험과 연관되는 것인가?
|
함세덕 당시 식민지 조선의 희곡문학이 놓인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솔직히 우리에게 희곡문학의 전통이 뭐가 있었나. 이 땅에서 극문학을 창작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령,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이 작품의 상황, 인물, 소재 면에서 내 작품 「산허구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나 「해연」이 입센의 ‘노라 3부작’ 「인형의 집」, 「유령」, 「바다에서 온 여인」의 모티브를 복합적으로 차용했다는 것 등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분명히 그 작품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 작품에서 상황, 제재, 인물 등을 참고하긴 했지만, 나는 그것을 완전히 조선적 현실에 맞는 희곡으로 새롭게 창조했다.
이 상 우 아무튼 당신은 일한서방 점원 시절에 문학전집들을 열심히 탐독함으로써 극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기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에 시도 썼다고 들었는데.
함세덕 맞다. 1935년에 「내 고향의 황혼」, 「저 남국의 이야기를」, 「저녁」 등 세 편의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했다. 수필가 김소운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일본어가 능숙한 김소운은 당시 일한서방의 단골손님이었는데, 그 인연으로 나는 서점을 그만두고 그가 주재한 아동문학잡지 《목마》에서 편집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희곡을 습작한다는 걸 알고 극작가 유치진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유치진과 나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서정적 리얼리즘의 길에 들어서다
…
이 상 우 당신은 1936년 《조선문학》에 「산허구리」를 발표하면서 극작가로 공식 데뷔하게 된다. 이후 1930년대 후반에 쓴 작품들은 대개 서정적 리얼리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함세턱 「산허구리」 이후 「동승」(1939), 「해연」(1940), 「무의도기행」(1941) 등을 가리켜 서정적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작품들이 서정적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첫째, 내 극작 인생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가장 평온한 시기의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이 시기에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고 극작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둘째,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었던 시인 기질과도 연관될 것이다. 내가 인상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고 극작가가 되기 전에 시를 몇 편 발표한 적이 있어서 언어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입센, 체호프, 싱,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과 같이 서양과 일본의 탁월한 작가들의 예술성높은 작품들을 즐겨 읽었던 독서 체험도 영향을 어느 정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 우 이 시기 당신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대개 소년들이다. 뿐만 아니라 소년들이 어른들의 폭력에 의해 수난을 겪는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소년의 비애를 즐겨 다루었다. 당신 작품들의 서정성은 그러한 소년의 비애를 통해 창출되는 것 아닌가.
함세덕 날카로운 지적이다. 「산허구리」의 복실, 석이, 「동승」의 도념, 「해연」의 진숙, 세진, 「무의도기행」의 천명과 같은 인물들은 모두 10대 소년, 소녀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들에 의해 핍박을 받거나 욕망이 좌절되고 있다. 소년들이 겪는 비애의 원인은 자신들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복실과 석이가 어린 나이에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조개를 줍는 노동에 종사하는 것, 더구나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 즉 어른들의 잘못에 의한 것이다. 「동승」의 도념이 세속의 어린이들처럼 학교에 가지 못하고 뛰놀지 못하는 것, 생모를 찾으러 가기 위해 계율을 어기고 몰래 절을 떠나 속세로 가는 것도 도념의 잘못이 아니고 그를 버린 그의 부모들, 어린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압적인 어른의 논리, 불도의 논리만을 고집하는 주지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무의도기행」의 천명이 섬의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수재였고 뭍으로 나가 트럭 운전사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에게 강압적으로 끌려가 고깃배를 타고 풍랑을 만나 죽게 되는 것도 순전히 어른들의 잘못인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들의 가난이 잘못인 것이다.
이 상 우 결국 당신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순결한 소년 주인공의 욕망이 어른들의 폭력, 강압, 고집에 의해 좌절되는 비애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심층적으로는 어른들, 부모들이 빚어낸 가난이 비애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을 통렬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식민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궁핍한 어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 작품을 리얼리즘이라고 규정하는 것 아닐까.
함세덕 나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기에 바다와 친숙하다. 내가 어촌이나 어민의 이야기를 즐겨 다룬 것은 그 때문이다. 어느 작가나 자기가 익숙한 환경을 즐겨 다루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즐겨 다룬 어촌 이야기도 그것을 리얼하게 그려내면 결국은 당대 식민지 조선 현실의 한 축도를 반영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싹 트자 서리를 맞다
…
이 상 우 애석하게도 1940년대에 당신은 친일극 작품들을 쓰게 된다.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는 것 아닌가.
함세덕 그렇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난 탓도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불행한시기였다. 막 극작가로서 꽃을 피려던 때였는데,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군국주의 체제가 강화되고, 이어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총동원체제가 가동되면서 연극도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을 위해 동원되는 혹독한 친일문학, 친일연극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나에게는 ‘싹트자 서리 맞은 격’이라고나 할까. 극작가로서 막 발돋움하려고 할 때 된서리를 맞은 격이다. 이러한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연극인들은 연극을 해야 했고, 극작가는 작품을 써야 했다. 일제 당국은 ‘시국’에 부합하는 연극을 요구했고, 연극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내가 쓴 작품들이 「낙화암」(1940), 「흑경정」(1941), 「추장 이사베라」(1942), 「에밀레종」(1943), 「황해」(1943), 「마을은 쾌청」(1944)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의 내용에는 부분적으로 친일적 요소, 일제의 국책 선전적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의 강요에 못 이겨 불가피하게 들어간 것들이다. 그러한 점들을 제외하면 극작술의 측면에서 발전한 점들이 있다.장막 역사극 「낙화암」은 백제멸망사라는 역사적 전환기의 대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역사적 실존 인물을 비롯해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백제 사비성의 궁궐 내부와 궁궐 밖, 그리고 낙화암 등이 극중 공간으로 나타나는 스펙터클한 연극이다.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투신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스케일의 대(大)역사극은 그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규모의 역사극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극작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상 우 현진건의 「무영탑」의 영향을 받은 「에밀레종」도 극작술의 유려함이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보인다. 비록 친일적 요소가 들어있는 점이 결함이지만.
함세덕 그렇다. 봉덕사 신종을 주조한 주종사 미추홀의 불굴의 예술적 의지와 정열, 그리고 공주시무나와의 신분의 장애를 초월한 이 작품의 사랑 이야기는 매우 짜임새 있고 감동이 있는 극적 구성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당신이 보기에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친일적 요소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이러한 친일 요소는 총독부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알리바이와 같은 것이었다.
이 상 우 그러한 점이 있다. 작품의 본체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작품의 본체가 낭만적 역사 서사라고 한다면 친일 요소는 부수적 요소로서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떠다니고 있다. 안타깝고 아쉬운 점이다. 이러한 결함만 없다면 이 작품은 후세에 여러 차례 재공연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함세덕 「무의도기행」을 개작한 「황해」는 우리 연극사상 최초의 본격 해양극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어촌극, 어민극은 대개 작품 배경이 어촌 마을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거대한 어선 세트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풍랑을 만나 어선이 흔들리고 침수되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직접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무대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 친일극 시대에는 작품의 순결한 영혼을 잃었지만 무대기술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좌익작가의 길 그리고 월북
…
이 상 우 해방 이후에 당신이 갑작스럽게 좌익으로 변신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럴만한 동인이 있었는가.
함세덕 많은 사람들은 해방 후 나의 좌익 참여를 갑작스런 변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연극사를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흔히 나와 극연좌, 현대극장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식민지시대의 나를 유치진 계열이라고 분류한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 내가 좌익 진영을 선택한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와 극연좌와의 관계는 그렇게 긴밀하지 않다. 1939년 극연좌를 통해 「동승」이 공연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일 뿐이다.극연좌가 1939년경에 소멸되고 1941년에 유치진이 만든 현대극장에 내가 입단할 때까지 나는 주로 극단 고협에서 활동했는데, 그때 고협에는 프로연극운동 출신의 심영, 박영호, 나웅 등이 주요 멤버였다. 여기서 이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은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상 우 가령, 이해랑 같은 이는 당신이 월북하기 직전에 “유치진이가 미워서 월북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북으로 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얘기는 사실인가.
함세덕 현대극장 시절에 대표였던 유치진과 극단 실무자였던 나의 관계가 나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와 나 사이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내가 1942년부터 1943년까지 1년 동안 일본으로 연극 유학을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부터 그와 나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맞지만 유치진 때문에 내가 월북했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정치적, 예술적 신념 때문에 북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나는 해방 직후에 조선연극건설본부에 가담하고 황철, 서일성, 박민천 등과 함께 극단 낙랑극회를 창단하였다. 낙랑극회는 당시 좌익연극계를 대표하는 주요 극단 중의 하나였다. 1946년 4월에는당시 좌익연극의 총본산인 조선연극동맹이 주최한 제1회 3·1기념연극제에서 「기미년 3월 1일」을 공연했다. 이 시기의 문화예술계는 좌익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3·1기념연극제는 당시 좌익예술운동의 역량이 집결되어 분출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1947년 2월 제2회 3·1기념연극제에서는 나의 「태백산맥」이 공연되었는데, 당시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이 상 우 그 얼마 후에 월북하게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함세덕 그렇다. 1947년 제2차 전국문학자대회가 성사되지 못하자 상황의 불리함을 인식하고 좌익문인들이 대거 월북을 택하게 된다. 나도 그 무렵 월북했다. 북으로 간 뒤에 지리산 빨치산의 혁명투쟁을 그린 「산사람들」, 이승만과 남한의 친미정권을 풍자한 「대통령」 등을 썼다.
이 상 우 그러나 당신은 이후 북한연극사에서도 남한연극사에서도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가 되었다.
함세덕 정치적이지 못했던, 순진무구한 극작가의 비애가 아닐까(쓴웃음). 남에서도 북에서도 배제된 걸 보면.
이 상 우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차마 당신에게 물을 수 없으니 내가 정리해 말하겠다. 1950년 6월29일, 당신의 동생 함성덕이 연락을 받고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당신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고한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에 집으로 오던 중 신촌 부근에서 폭탄 파편을 맞고 과다출혈로 수술 도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3년 만에 남으로 돌아온 당신은 북으로 떠날 때 그대로의 양복 차림이었다고한다. 몇 개월 뒤에 아이를 임신한 당신 아내가 북에서 내려왔고, 당신은 망우리 가족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만삭의 당신 아내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만삭의 몸으로 가족도 연고도 없는 북으로 돌아간 것은 뱃속에 있는 당신 아이가 남한에서는 평탄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신 아이가 만일 북에서 아직도 살아있다면 지금 65세쯤 되었을 것이다. 월북을 선택한 당신은 정작 서울 망우리 묘지에 묻혀있는데 말이다. 당신의 가족사가 바로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축도가 아니겠는가.
함세덕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목이 메어) 이제 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