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내 글쓰기의 스승
작가가 되고 나면 나처럼 그다지 인기가 없는 작가도 인터뷰를 꽤 하게 된다. 21세기 들어 기존 매체에 온라인 매체까지 더해지면서 지면이 풍부해진 탓이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 없이 꿋꿋이 약속장소로 나간다. 이렇게라도 해야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리지, 하는 마음으로.
등단 20년째이니 인터뷰도 20년을 해온 셈이다. 중간에 좀 쉬긴 했지만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했다. 신문 방송 같은 큰 매체도 있고 별의별 종류의 잡지, 그리고 귀여운 대학생들이 인터뷰어로 나오는 교지나 학보 같은 매체들도 있다. 그런 인터뷰 중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뭐였을까. 아니,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인터뷰어가 가장 흔히 던지는 상투어구 같은 질문은 뭘까.
“작가님이 글을 쓰는 데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작가, 혹은 장르는 뭔가요?”
심지어는 인터뷰 자리가 아닌데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 언젠가 문인들과 술을 먹는데, 자리가 어색했는지 어떤 분이 “문학 말고 미술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 음악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하고 물어왔다.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한테 던질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질문이 누구한테, 혹은 무엇에 영향을 받았느냐, 인 것이다.
그때 나는 이삼 초 정도 제법 진지하게 따져본 다음에 미술이요, 하고 답했다. 미술? 미술이란 말은 사실 일본에서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조어로, 애초에 우리나라에는 없던 말이다. 미술이란 말은 현재 그냥 하나의 제도를 일컫는 통칭으로 쓰인다. 서로 비슷해보이지도 않는 장르들이 미술이라는 통칭 아래, 하나의 제도 아래 모인다. 회화에서부터 조각, 사진,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이름도 낯선 대지미술과 장소특정적 미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쌓아놓는 복합매체 설치 미술도 있다. 얼마 전에는 연극배우가 펼치는 일인극이 미술관에서 ‘전시’된 것을 본 적도 있다.
미술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으니 내 글쓰기가 ‘미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사실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난센스가 된다. 음악은 또 어떨까. 집에 엘피가 좀 있어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부담이 된다. 엘피는 크기도 크고 무겁기도 해서 책만큼이나 이삿짐센터 분들의 원성을 듣는 물건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엘피를 팔겠다고 글을 올렸더니 한 분이 찾아왔다.
그분이 내 엘피를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여러 집에 엘피를 사러 다녀봤는데 일반적으로 한두 장르의 엘피만 모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집처럼 온갖 장르의 엘피를 다 모아놓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재즈도 조금, 가요도 조금, 클래식과 블루스도 조금, 록도 조금 듣고, 아트록이라고 한때 우리나라에서 잠깐 인기를 끌었던 장르도 이따금 듣는다. 기분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이것저것 꺼내 듣는다. 나는 글을 쓸 때 늘 음악을 틀어놓으니,굳이 따지자면 그것들이 다 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상당히 잡다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음악의 분류에 엘피나 시디 같은 매체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 음악도 있고, 라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도 있다. 직접 연주할 수도 있는데, 악기의 지판을 누르거나 들숨과 날숨을 조절할 때의 그 감각적 즐거움은 다른 일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음악에 또 뭐가 더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당연히 아는 것보다 많을 테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 글쓰기가 그 광대한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난센스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술이나 음악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실제로 미술에세이를 매체에 연재하고 있고 내 외출 시간의 상당 부분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데 사용된다. 음악은 내 삶에서 가장 오래된 내 취미이다. 그럼 난센스가 되지 않고 어떻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하면 좋을까.
어찌 보면 간단히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질문을 바꿔서 “시각 매체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 청각 매체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 하면 된다. 이 질문은 질문을 받는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에 더 예민하냐, 귀로 듣는 것에 더 예민하냐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제 대답을 해보자. 나는 나를 자극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도마찬가지여서, 어제로 반 정도 읽은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게 벌써부터 느껴진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듣보잡인 소설가 주제에, 하면서 코웃음을 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맞다. 무언가 영향을 받았다면 그만한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뭐 별것도 아닌 작가면서, 영향은 개뿔.
별것도 아니면서 영향은 개뿔
글 백민석 ㅣ 소설가. 1971년생
소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헤이, 우리 소풍 간다』『내가 사랑한 캔디』 『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러셔』 『죽은 올빼미 농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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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0년째이니 인터뷰도 20년을 해온 셈이다. 중간에 좀 쉬긴 했지만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했다. 신문 방송 같은 큰 매체도 있고 별의별 종류의 잡지, 그리고 귀여운 대학생들이 인터뷰어로 나오는 교지나 학보 같은 매체들도 있다. 그런 인터뷰 중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뭐였을까. 아니,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인터뷰어가 가장 흔히 던지는 상투어구 같은 질문은 뭘까.
“작가님이 글을 쓰는 데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작가, 혹은 장르는 뭔가요?”
심지어는 인터뷰 자리가 아닌데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 언젠가 문인들과 술을 먹는데, 자리가 어색했는지 어떤 분이 “문학 말고 미술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 음악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하고 물어왔다.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한테 던질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질문이 누구한테, 혹은 무엇에 영향을 받았느냐, 인 것이다.
그때 나는 이삼 초 정도 제법 진지하게 따져본 다음에 미술이요, 하고 답했다. 미술? 미술이란 말은 사실 일본에서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조어로, 애초에 우리나라에는 없던 말이다. 미술이란 말은 현재 그냥 하나의 제도를 일컫는 통칭으로 쓰인다. 서로 비슷해보이지도 않는 장르들이 미술이라는 통칭 아래, 하나의 제도 아래 모인다. 회화에서부터 조각, 사진,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이름도 낯선 대지미술과 장소특정적 미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쌓아놓는 복합매체 설치 미술도 있다. 얼마 전에는 연극배우가 펼치는 일인극이 미술관에서 ‘전시’된 것을 본 적도 있다.
미술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으니 내 글쓰기가 ‘미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사실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난센스가 된다. 음악은 또 어떨까. 집에 엘피가 좀 있어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부담이 된다. 엘피는 크기도 크고 무겁기도 해서 책만큼이나 이삿짐센터 분들의 원성을 듣는 물건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엘피를 팔겠다고 글을 올렸더니 한 분이 찾아왔다.
그분이 내 엘피를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여러 집에 엘피를 사러 다녀봤는데 일반적으로 한두 장르의 엘피만 모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집처럼 온갖 장르의 엘피를 다 모아놓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재즈도 조금, 가요도 조금, 클래식과 블루스도 조금, 록도 조금 듣고, 아트록이라고 한때 우리나라에서 잠깐 인기를 끌었던 장르도 이따금 듣는다. 기분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이것저것 꺼내 듣는다. 나는 글을 쓸 때 늘 음악을 틀어놓으니,굳이 따지자면 그것들이 다 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상당히 잡다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음악의 분류에 엘피나 시디 같은 매체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 음악도 있고, 라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도 있다. 직접 연주할 수도 있는데, 악기의 지판을 누르거나 들숨과 날숨을 조절할 때의 그 감각적 즐거움은 다른 일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음악에 또 뭐가 더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당연히 아는 것보다 많을 테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 글쓰기가 그 광대한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난센스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술이나 음악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실제로 미술에세이를 매체에 연재하고 있고 내 외출 시간의 상당 부분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데 사용된다. 음악은 내 삶에서 가장 오래된 내 취미이다. 그럼 난센스가 되지 않고 어떻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하면 좋을까.
어찌 보면 간단히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질문을 바꿔서 “시각 매체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 청각 매체에서 더 영향을 받았어요?” 하면 된다. 이 질문은 질문을 받는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에 더 예민하냐, 귀로 듣는 것에 더 예민하냐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제 대답을 해보자. 나는 나를 자극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도마찬가지여서, 어제로 반 정도 읽은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게 벌써부터 느껴진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듣보잡인 소설가 주제에, 하면서 코웃음을 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맞다. 무언가 영향을 받았다면 그만한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뭐 별것도 아닌 작가면서, 영향은 개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