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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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명작순례
하이네의 『루테치아』와 19세기의 파리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독일의 대표적 서정 시인이자 또한 참여 문학 작가이기도 하다. 1831년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루테치아(Lutezia)』는 프랑스의 파리에 망명 중인 하이네가 1840년부터 1848년까지 독일 《아우그스부르크 알게마이네 차이퉁》 지(紙)와 계약을 맺고 파리에서의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사건이나 인물들, 문화적 행사나 주요 흐름, 학문 연구와 그 동향 그리고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기사화해서 보낸 글들의 모음이다. 이 책이 ‘파리’라는 도시와, 그 속에서 진행되어가는 다양한 삶의 행태를 조명하고 있기에, 하이네는 책의 제목을 『루테치아』로 정했다. 이 라틴어 명칭은 약 6세기까지 통용된 파리의 옛 이름이다.
『루테치아』는 그러나 단순한 사건 보도기사들의 종합은 아니다. “정치, 예술, 그리고 민중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파리’라는 하나의 거대한 종합적 현상을 다양한 측면과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시장 경제의 대두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시민 사회의 발전 그리고 이로 인한 삶의 양식의 변화,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의 사유방식이 인간존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모습이 때로는 신랄하게 풍자되고 때로는 음울하고 비관적인 탄식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당시의 불완전한 민주주의 제도의 실상과 모순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일정한 액수 이상의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불평등 선거의 결과로 정권을 잡은 산업 부르주아지, 이들이 지배하는 의회에서의 권력투쟁과 이로 인한 상시적 정치 불안,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행각, 눈앞의 이익 추구에 급급하여 프랑스 혁명의 이념과 정신을 내던진 부르주아지 지배층의 추악한 실상이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 『루테치아』는 당시 활짝 피어오른 시민문화의 정체성과 특성을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부르주아지의 시민문화는 연극 극장, 오페라 극장, 콘서트 공연을 위한 홀과 살롱, 그림들의 전시회가 열리는 화랑 등등을 중심으로 하여 꽃핀 ‘개방적’ 문화였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는 과거 귀족들의 화려한 삶을 모방하려 했고, 이과정에서 시민계급 특유의 합리성을 가미하여 19세기의 독특한 시민문화를 만들어냈다. 부르주아지는 과거의 귀족들을 대신하여 예술가들의 후원자 노릇을 했고, 이들의 부에 이끌려 유럽 각지에서 화가, 건축가, 작곡가, 성악가, 작가, 그리고 학자들까지 파리에서 그들의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으려고 했다. 로시니, 멘델스존, 리스트, 쇼팽,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레오폴드 로베르, 폴 들라로슈 등등이 파리의 매력에 끌려온 예술가 군상의 대표적인 이름들이다. 그러나 하이네는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예술의 순수성과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실도 직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도 상품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것이다.
하이네는 이러한 화려한 ‘고급’ 문화에 가린 민중들의 소박한 문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그는 민중들의 애환이 서린 소박하고 단순한 문화가 그 건강함과 자연스러움을 통해 도시 문화의 데카당스적 경향에 대한 치유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네는 민중들의 ‘소박함’이 ‘무지함’의 또 다른 표현이며, 이 무지로 해서 민중들이 쉽사리 이념적, 정치적,종교적 선동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로 무비판적 집단광기에 빠져들 수 있음도 인식했다. 배고프고 무지한 민중들이 광포하고 파괴적인 폭도들로 변화하는 것, 그것은 하이네에 있어서 모든 혁명과 결부되는 악몽이기도 하다.
19세기 파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등등의 모든 방면에서 유럽의 중심지이자,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19세기의 수도(首都)’였다. 이 ‘19세기의 수도’를, 그것이 가진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묘사한 『루테치아』는 따라서 19세기 유럽에 대한 하나의 총체적 보고서이기도 하다. 하이네의 표현에 따르면 ‘매우 중요하고 또 흥미로운 한 시대의 그림’인 것이다.
※『루테치아』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출판되었다.
19세기 유럽의 자화상
- 하이네의 『루테치아』와 19세기의 파리
글 김수용 ㅣ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43년생
저서 『하이네』 『괴테-파우스트-휴머니즘』 『아름다움의 미학과 숭고함의 예술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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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독일의 대표적 서정 시인이자 또한 참여 문학 작가이기도 하다. 1831년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루테치아(Lutezia)』는 프랑스의 파리에 망명 중인 하이네가 1840년부터 1848년까지 독일 《아우그스부르크 알게마이네 차이퉁》 지(紙)와 계약을 맺고 파리에서의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사건이나 인물들, 문화적 행사나 주요 흐름, 학문 연구와 그 동향 그리고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기사화해서 보낸 글들의 모음이다. 이 책이 ‘파리’라는 도시와, 그 속에서 진행되어가는 다양한 삶의 행태를 조명하고 있기에, 하이네는 책의 제목을 『루테치아』로 정했다. 이 라틴어 명칭은 약 6세기까지 통용된 파리의 옛 이름이다.
『루테치아』는 그러나 단순한 사건 보도기사들의 종합은 아니다. “정치, 예술, 그리고 민중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파리’라는 하나의 거대한 종합적 현상을 다양한 측면과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시장 경제의 대두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시민 사회의 발전 그리고 이로 인한 삶의 양식의 변화,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의 사유방식이 인간존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모습이 때로는 신랄하게 풍자되고 때로는 음울하고 비관적인 탄식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당시의 불완전한 민주주의 제도의 실상과 모순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일정한 액수 이상의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불평등 선거의 결과로 정권을 잡은 산업 부르주아지, 이들이 지배하는 의회에서의 권력투쟁과 이로 인한 상시적 정치 불안,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행각, 눈앞의 이익 추구에 급급하여 프랑스 혁명의 이념과 정신을 내던진 부르주아지 지배층의 추악한 실상이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 『루테치아』는 당시 활짝 피어오른 시민문화의 정체성과 특성을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부르주아지의 시민문화는 연극 극장, 오페라 극장, 콘서트 공연을 위한 홀과 살롱, 그림들의 전시회가 열리는 화랑 등등을 중심으로 하여 꽃핀 ‘개방적’ 문화였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는 과거 귀족들의 화려한 삶을 모방하려 했고, 이과정에서 시민계급 특유의 합리성을 가미하여 19세기의 독특한 시민문화를 만들어냈다. 부르주아지는 과거의 귀족들을 대신하여 예술가들의 후원자 노릇을 했고, 이들의 부에 이끌려 유럽 각지에서 화가, 건축가, 작곡가, 성악가, 작가, 그리고 학자들까지 파리에서 그들의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으려고 했다. 로시니, 멘델스존, 리스트, 쇼팽,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레오폴드 로베르, 폴 들라로슈 등등이 파리의 매력에 끌려온 예술가 군상의 대표적인 이름들이다. 그러나 하이네는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예술의 순수성과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실도 직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도 상품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것이다.
하이네는 이러한 화려한 ‘고급’ 문화에 가린 민중들의 소박한 문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그는 민중들의 애환이 서린 소박하고 단순한 문화가 그 건강함과 자연스러움을 통해 도시 문화의 데카당스적 경향에 대한 치유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네는 민중들의 ‘소박함’이 ‘무지함’의 또 다른 표현이며, 이 무지로 해서 민중들이 쉽사리 이념적, 정치적,종교적 선동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로 무비판적 집단광기에 빠져들 수 있음도 인식했다. 배고프고 무지한 민중들이 광포하고 파괴적인 폭도들로 변화하는 것, 그것은 하이네에 있어서 모든 혁명과 결부되는 악몽이기도 하다.
19세기 파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등등의 모든 방면에서 유럽의 중심지이자,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19세기의 수도(首都)’였다. 이 ‘19세기의 수도’를, 그것이 가진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묘사한 『루테치아』는 따라서 19세기 유럽에 대한 하나의 총체적 보고서이기도 하다. 하이네의 표현에 따르면 ‘매우 중요하고 또 흥미로운 한 시대의 그림’인 것이다.
※『루테치아』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