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나의 삶, 나의 문학
문단에 나온 뒤, 어느 잡지사 청탁으로 저명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을 별세하시기 2년 전에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계절을 좋아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91세의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젊었을 때는 가을이 좋기도 하고 여름이 좋은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는 봄이 좋아요. 정말 봄이 좋아요. 나무마다 연둣빛 새잎이 나올 때 그 아름다움은 정말 눈부셔요.진정한 생명의 아름다움이지요!”
선생께서 노년의 지혜와 안목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아주 새롭게 또 매우 깊게 알아보시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비상한 감동과 감명을 느꼈다. 인터뷰 당시의 선생 연세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나도 이제는 나이를 꽤 먹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노년의 지혜와 안목’과 비슷한 것이 새롭게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나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듣고 싶다는 요청을 듣고 돌아보니, 이제 새롭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그렇다! 나의 삶과 나의 문학 모두를 하나로 관통하는 화두(話頭) 하나가 강렬하게 치솟아 오른다. ‘남자’다! 그것도 지난 일이 아니라, 이희승 선생의 ‘봄’에 필적할 만한 비중과 강도를 지니고 아직도 나를휘젓고 있는 현재진행형 현안이라는 것, 그걸 금세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은 그 토양과 환경과 여건 등등 모든 것이 ‘남자’가 나한테 극력 개입하고 관여하도록 조성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10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종류와 두께를 가리지 않고 무척 많이 읽었다. 게다가 기억력이매우 좋아서 한 번 읽은 것은 모두 잊지 않고 머릿속에 첩첩 쌓아 두었기에, ‘잡학(雜學)의 대가(大家)’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또한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다. 교회에서 경영하는 주일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목사님이 성서에 나오는 ‘꿈 잘 꾸는 요셉’의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을 때,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들은 학생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아무튼 그 과도한 잡학적 지식과 넘치는 감수성은 내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세상만사를 널리 두루 아는 자’로서의 탈속(脫俗) 비슷한 성향의 정서가 나의 행동과 가치판단을 좌우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 ‘가출’을 가장 합법적이고 건설적인형태로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기숙사가 있는 서울대 간호학과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그런 명분이 왜 중요했던가. 목사님 가정에서 가출한 자녀가 나오면 불가피하게 목사님의 입장과 처신이 매우 곤란해지는데, 바로 나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다(!).
그러나 ‘서울대 간호학과의 존재 이유’에 대한 대학 측의 견해와 나의 견해 사이의 간격 때문에나는 결국 중퇴했다. 중퇴하면서도 별 유감이 없었다. 다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라더니, 서울대 간호학과 중퇴 이후 아버지와 나의 관계도 변했다. 그래서 ‘가출’ 실천이 별로 절실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통 크게 아버지의 출신교인 한신대 신학과에 편입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실천해온 그런 식의 ‘세상 바라보기’와 ‘세상 살아가기’의 압권은 역시‘남자’ 문제였다. 나는 사춘기 이후의 삶을 살아가며, ‘나는 어딘가 특별한 요소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은 딱 두 부류였기 때문이다. 한 부류는 ‘지적장애인’들이었고, 다른 부류는 여자라면 아주 이골이 난 명실상부한 ‘선수’들이었다. 그 중간에 속하는 남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다. 지적장애인은 내가 편안하게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선수들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환하게 들여다보여서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문제는 자신이 처한 그런 상황이 별로 안타깝거나 아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흡사 세상 밖에나가 있는 자가 거기서 ‘세상’을, 또한 ‘남자’를 바라보듯 살았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역시 내가 천형(天刑)처럼 지니고 있던 ‘과도한 잡학적 지식과 넘치는 감수성’ 탓일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세상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 처지가 일방적으로 부정적이고 우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히려 보다 객관적이 되고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 파악하는 힘을 갖게 되는 이점도 있었다.
내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소설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는 이른바 ‘군사 독재시대’였다. 자고 일어나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일들이 현실로 일어났던 비상시기여서, 나는 별로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칼럼과 기사를 많이 썼다. 그때 내가 쓴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이 매우 특별하고 정확하다고 하여 성가가 높았다. 후일 그런 평가의 연장선상에서 초빙 받아 동아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소설 쓰기’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을 따라 여러 일거리들이 내게 강요되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내가 처음으로 ‘역사’를 다룬 글을 쓴 것은 나의 할아버지 송창빈 독립운동가 때문이었다. 그분은 홍범도 장군 휘하 독립군으로 일제와 싸우시다가 1920년에 있었던 일본군의 소위 ‘만주 대토벌’ 때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신 뒤 전사하셨다. 그러나 그간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사실조차 정확하게 조명되고 평가되지 못한 터라, 그 부하인 나의 할아버지 경우는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바로 그 점이 고아로 자란 나의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한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한과 할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서, 나는 가장 대표적인 무력항일투쟁전투인 ‘청산리전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너무도 놀랍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찾아내었다. 기존의 학설이나 평가와 전혀 달리 청산리전투의 실제 주역은 홍범도장군과 그의 부대였음을 밝혀낸 것이다.
나의 글은 《신동아》 1984년 9월호에 「청산리전투와 홍범도장군」이라는 제목으로 실렸고,이후 학계의 통설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사학계 인사들이 ‘홍범도 장군이 부하 잘 둬서 복권했다’는 말로 내 연구 작업을 칭송하는 것을 듣고 정말 감동하고 감격했다.
그 뒤 우리 집안 어른인 송몽규 선생(윤동주 시인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으로 같은 감옥에서 옥사함)과의 인연에 따른 강요에 밀려서 여러 해에 걸친 연구를 거쳐서 『윤동주평전』을 출간했다.
나는 현재 이순신, 홍범도, 전봉준, 율곡 이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일부는 집필에 들어 갔다. 이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실로 장한데다가 참된 멋까지 갖추었다. 이 분들의 존재로 인하여 나는 지적장애인과 바람둥이 선수만 보아야 했던 쓰라린 지난 세월을 충분히 보상 받았다. 또는 적어도 보상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질 땐 그 남자들의 삶과 장점과 업적과 멋에 대해서 자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절친한 언론계 인사가 내게 말했다.
“이건 선생님을 오랜 세월 매우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본 결과, 겨우 알아차리게 된 사실인데 말예요. 선생님은 인격적으로 완벽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선생님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하나 있습디다. 그게 뭔고 하면요. 선생님은 남자를 좋아했다 하면, 꼭 죽은 남자만좋아하시더라고요!”
아아! 그의 말로 나는 나의 대남관계(對男關係)의 핵심과 본질을 알아차렸다. 나에게 접근하는살아 있는 남자는 지적장애인이나 바람둥이 선수이고, 진짜로 내가 좋아하여 그들에 관한 책까지 쓰려고 혼신의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남자들은 모두 ‘죽은 남자’라는 것! 그래서 나의 삶과나의 문학,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남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큰 탄식을 금치 못한다.
“아! 참으로 불우하기 그지없도다!”
나의 매우 불우한 남자 편력기
글 송우혜 ㅣ 소설가. 1947년생
소설 『눈이 큰 씨름꾼 이야기』 『스페인춤을 추는 남자』 『저울과 칼』『투명한 숲』 『하얀 새』 『마지막 황태자』, 저서 『윤동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 — 만우 송창근 평전』 『서투른 자가 쏘는 활이 무섭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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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가을이 좋기도 하고 여름이 좋은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는 봄이 좋아요. 정말 봄이 좋아요. 나무마다 연둣빛 새잎이 나올 때 그 아름다움은 정말 눈부셔요.진정한 생명의 아름다움이지요!”
선생께서 노년의 지혜와 안목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아주 새롭게 또 매우 깊게 알아보시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비상한 감동과 감명을 느꼈다. 인터뷰 당시의 선생 연세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나도 이제는 나이를 꽤 먹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노년의 지혜와 안목’과 비슷한 것이 새롭게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나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듣고 싶다는 요청을 듣고 돌아보니, 이제 새롭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그렇다! 나의 삶과 나의 문학 모두를 하나로 관통하는 화두(話頭) 하나가 강렬하게 치솟아 오른다. ‘남자’다! 그것도 지난 일이 아니라, 이희승 선생의 ‘봄’에 필적할 만한 비중과 강도를 지니고 아직도 나를휘젓고 있는 현재진행형 현안이라는 것, 그걸 금세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은 그 토양과 환경과 여건 등등 모든 것이 ‘남자’가 나한테 극력 개입하고 관여하도록 조성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10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종류와 두께를 가리지 않고 무척 많이 읽었다. 게다가 기억력이매우 좋아서 한 번 읽은 것은 모두 잊지 않고 머릿속에 첩첩 쌓아 두었기에, ‘잡학(雜學)의 대가(大家)’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또한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다. 교회에서 경영하는 주일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목사님이 성서에 나오는 ‘꿈 잘 꾸는 요셉’의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을 때,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들은 학생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아무튼 그 과도한 잡학적 지식과 넘치는 감수성은 내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세상만사를 널리 두루 아는 자’로서의 탈속(脫俗) 비슷한 성향의 정서가 나의 행동과 가치판단을 좌우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 ‘가출’을 가장 합법적이고 건설적인형태로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기숙사가 있는 서울대 간호학과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그런 명분이 왜 중요했던가. 목사님 가정에서 가출한 자녀가 나오면 불가피하게 목사님의 입장과 처신이 매우 곤란해지는데, 바로 나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다(!).
그러나 ‘서울대 간호학과의 존재 이유’에 대한 대학 측의 견해와 나의 견해 사이의 간격 때문에나는 결국 중퇴했다. 중퇴하면서도 별 유감이 없었다. 다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라더니, 서울대 간호학과 중퇴 이후 아버지와 나의 관계도 변했다. 그래서 ‘가출’ 실천이 별로 절실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통 크게 아버지의 출신교인 한신대 신학과에 편입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실천해온 그런 식의 ‘세상 바라보기’와 ‘세상 살아가기’의 압권은 역시‘남자’ 문제였다. 나는 사춘기 이후의 삶을 살아가며, ‘나는 어딘가 특별한 요소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은 딱 두 부류였기 때문이다. 한 부류는 ‘지적장애인’들이었고, 다른 부류는 여자라면 아주 이골이 난 명실상부한 ‘선수’들이었다. 그 중간에 속하는 남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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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들과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다. 지적장애인은 내가 편안하게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선수들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환하게 들여다보여서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문제는 자신이 처한 그런 상황이 별로 안타깝거나 아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흡사 세상 밖에나가 있는 자가 거기서 ‘세상’을, 또한 ‘남자’를 바라보듯 살았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역시 내가 천형(天刑)처럼 지니고 있던 ‘과도한 잡학적 지식과 넘치는 감수성’ 탓일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세상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 처지가 일방적으로 부정적이고 우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히려 보다 객관적이 되고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 파악하는 힘을 갖게 되는 이점도 있었다.
내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소설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는 이른바 ‘군사 독재시대’였다. 자고 일어나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일들이 현실로 일어났던 비상시기여서, 나는 별로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칼럼과 기사를 많이 썼다. 그때 내가 쓴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이 매우 특별하고 정확하다고 하여 성가가 높았다. 후일 그런 평가의 연장선상에서 초빙 받아 동아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소설 쓰기’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을 따라 여러 일거리들이 내게 강요되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내가 처음으로 ‘역사’를 다룬 글을 쓴 것은 나의 할아버지 송창빈 독립운동가 때문이었다. 그분은 홍범도 장군 휘하 독립군으로 일제와 싸우시다가 1920년에 있었던 일본군의 소위 ‘만주 대토벌’ 때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신 뒤 전사하셨다. 그러나 그간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사실조차 정확하게 조명되고 평가되지 못한 터라, 그 부하인 나의 할아버지 경우는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바로 그 점이 고아로 자란 나의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한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한과 할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서, 나는 가장 대표적인 무력항일투쟁전투인 ‘청산리전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너무도 놀랍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찾아내었다. 기존의 학설이나 평가와 전혀 달리 청산리전투의 실제 주역은 홍범도장군과 그의 부대였음을 밝혀낸 것이다.
나의 글은 《신동아》 1984년 9월호에 「청산리전투와 홍범도장군」이라는 제목으로 실렸고,이후 학계의 통설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사학계 인사들이 ‘홍범도 장군이 부하 잘 둬서 복권했다’는 말로 내 연구 작업을 칭송하는 것을 듣고 정말 감동하고 감격했다.
그 뒤 우리 집안 어른인 송몽규 선생(윤동주 시인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으로 같은 감옥에서 옥사함)과의 인연에 따른 강요에 밀려서 여러 해에 걸친 연구를 거쳐서 『윤동주평전』을 출간했다.
나는 현재 이순신, 홍범도, 전봉준, 율곡 이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일부는 집필에 들어 갔다. 이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실로 장한데다가 참된 멋까지 갖추었다. 이 분들의 존재로 인하여 나는 지적장애인과 바람둥이 선수만 보아야 했던 쓰라린 지난 세월을 충분히 보상 받았다. 또는 적어도 보상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질 땐 그 남자들의 삶과 장점과 업적과 멋에 대해서 자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절친한 언론계 인사가 내게 말했다.
“이건 선생님을 오랜 세월 매우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본 결과, 겨우 알아차리게 된 사실인데 말예요. 선생님은 인격적으로 완벽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선생님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하나 있습디다. 그게 뭔고 하면요. 선생님은 남자를 좋아했다 하면, 꼭 죽은 남자만좋아하시더라고요!”
아아! 그의 말로 나는 나의 대남관계(對男關係)의 핵심과 본질을 알아차렸다. 나에게 접근하는살아 있는 남자는 지적장애인이나 바람둥이 선수이고, 진짜로 내가 좋아하여 그들에 관한 책까지 쓰려고 혼신의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남자들은 모두 ‘죽은 남자’라는 것! 그래서 나의 삶과나의 문학,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남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큰 탄식을 금치 못한다.
“아! 참으로 불우하기 그지없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