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시론
일찍이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우리 한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白頭山)을 “이 나라 산줄기의 아비”라 불렀고 일제 강점기 때 최남선은 “우리 문화의 연원이고, 역사의 포태(胞胎)”로 보았다. 백두산은 우리 모두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나는 운좋게도 두 번이나 백두산에 올라 천지(天池)를 볼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 등정은 1999년7월 14일이었다. 동북아시아 대륙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의 최고봉 장군봉은 2744m이고,천지 둘레는 13.1km, 동서로는 3.35km, 남북으로 4.85km이며,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312.7m이고 12개의 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백두산의 이런 외형상의 웅대함뿐 아니라 조용히 맑은 거울처럼 빛나는 짙은 쪽빛 색깔의 천지, 하늘과 구름과 주위의 봉우리들이 모두 한 폭의 그림처럼 황홀한 신비함을 더해 주었다. 신비롭게도 천지는 고지대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용천수(湧泉水)로 물이 화산 분화구에서 솟아오른다. 아마도 백두산과 천지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창조의 절정이 아닐까. 천지는 과연 하늘의 연못이었다. 무릎 꿇고 천지 속을 한참 들여다보노라니 남한과 북한, 우리 민족의 족적이 서려있는 북간도, 연해주에 이르는 동북아 지역을 아우르고 한반도를 관통하여 1810km 거리에 있는 한라산 백록담까지를 잇는 중심점으로서의 신화와 역사와 문명의 시원(始原)임을 강렬히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의 첫 번째 경험은 쓸데없는 분주함으로 노심초사하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별유천지(別有天地)에 온 느낌이었고 찬사 받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훨씬 넘어 무뎌지고 메마른 영혼을 크게 울리는 ‘황홀감’(ecstasy)마저 느끼게 했다. 이때의 백두산 등정은 나에게 하나의 여행경험이었다기보다 ‘시적순례’의 특별한 ‘사건’이었다.
1999년 백두산을 다녀온 후 내 일생 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주의의 피로사회에서 쉬지도 않고 맹렬히 달리다가 가끔 휴식이나 명상을 위해 눈을 감으면 그때마다 갑자기 그리고 자주 백두산과 천지의 유장(悠長)한 풍광이 꿈처럼 엄습하곤 했다. 백두의 12개 큰 봉우리들과 천지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져 장대하고 심연 하던 숲의 모습이 심안(心眼)까지 각인되어 있어서 나를 짓누르던 모든 심리적 억압이나 작은 영적인 고통들이 새의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신령한 백두산 정상의 천지 바람이 나의 몸과 마음을 정화(淨化)시켜 주는 것 같았다. 이것은 백두산과 천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임이 분명했다. 고단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간혹 백두산과 천지를 떠올리며 그 치유와 위로의 힘으로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마음의 눈이 백두산 천지의 신비로운 영광을 담을 수 있는 한 나는 언제나 싱싱할 것 같다. 나는 벌써부터 서재에다 백두산 천지 사진을 걸어 놓고 가끔 주문을 외우듯 그곳을 소환해낸다. 그때마다 그곳의 경이의 정기(精氣)가 나를 상큼하게 휘감으며 내 영혼을 어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백두산 천지가 내 삶에 미적 거리를 만들어주어 탈영토화 시키는 것일까?
내가 두 번째로 백두산을 등정한 날은 올해 7월 8일이었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천지를 볼 기회가 일 년에 90일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운 좋게 백두산 봉우리들과 천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장백산(長白山, 중국인들이 부르는 이름) 일대를 제10대 국가관광지역으로 선포한 이래 편의시설이 많이 들어섰고, 천지 바로 아래까지 독일 지프차를 타고 3, 4명씩 올라갔던 지난 번 등정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독일제 봉고차로 8, 9명씩 올라갔다. 여러 방향에서 봉우리로 올라가는 계단도 새로 만들어놓았다. 당시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는데 지금은 등산객 수를 통제할 정도로 중국 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북한쪽에서 백두산으로 직접 올라가지 못하고 중국을 통해 올라가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전이라도 우리 땅 북한쪽으로 백두산 등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선족 자치구인 중국의 길림성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북파, 남파, 서파의 3갈래가 있는데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북파(북쪽 산등성이) 길을 선택하여 중국 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천문봉(天文峰)에 올랐다. 주봉인 북한쪽의 장군봉이 저 건너 보였고 백두산 천지가 주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모습은 변함이 없었지만 첫 번째 등정 때 극심한 감격으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문이 막히면서 오던 인식장애, 언어장애는 없었다. 사실 나는 첫 번째 등정 이후로 백두산 등정기를 아직도 쓰지 못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사유로,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그 장엄하고 거룩하고 신비로운 초월적 힘이 어디서 오는지 계속 사유하고 있었다. 그 거대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마력적 경외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숭고(미)’(Sublime)의 영역이었다.
문학에서 ‘숭고’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1세기 또는 3세기 그리스의 문인 롱기누스(Longinus)였다. 그는 일부가 분실된 『숭고론』에서 당시 처음으로 이 새로운 개념에 대해 설명하였다. 롱기누스는 탁월한 문학이란 단순한 설득이나 아름다움 이상의 숭고미를 촉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진정한 숭고미’란 ‘내적인 힘이 작용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들어 올려져, 우리는 의기양양한 고양과 자랑스러운 기쁨의 의미로 충만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숭고미란 일상적 존재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켜 거룩한 환희의 경지로 몰입시키는 상상력에 다름 아니다. 어떤 문학도 우리에게 ‘고상한 정서’인 숭고미를 작동시켜주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위대한 문학이 아니다. 롱기누스는 ‘고상한 정서는 광증의 폭풍으로 표면으로 상승하여, 연사의 말 속에 일종의 신의 영감이 살아 숨 쉬게 한다’(김명복 역)고 언명한다. 신의 영감을 작동시킬수 있는 문학만이 진정한 문학이라는 말이다. (수사학자 롱기누스는 숭고미가 상실된 시대는 자유의 억압, 돈에 대한 사랑, 용서할 줄 모르는 오만, 쾌락이나 칭송받는 일 이외의 일에 대한 무관심,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랑의 부재 등이 인간의 영혼을 지치게 하고 영혼의 장엄함을 몰락시킨다고 보았다.) 롱기누스의 숭고미 사상은 18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미와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논구』(1757)로 이어지고 독일의 칸트 미학의 결정판인 『판단력 비판』(1790)에서 화려하게 부활되어 재론된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장-프랑소와 료타르에 의해 ‘탈근대 숭고미’로 다시 한 번 부활되었다.
오늘 숭고미론을 다시 꺼내드는 것은 롱기누스가 숭고미를 단순히 수사적, 문학적 가치로만 보지 않고 윤리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학의 윤리화인가? 숭고미의 윤리학은 수사적 방법이나 문학적 법칙이나 도덕적 규례를 넘어서서 궁핍한 시대와 현실을 단순히 초월하지 않고 타고 넘어가는 포월(葡越)의 경지로 우리를 이끈다. 범위를 좁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보더라도 과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켜 우주의 신비로움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가? 순수와 참여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온갖 진영논리를 벗어나는, 다양한 파당들을 품고 넘어갈 수 있는 사유의 시공간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을 떠나 공중에 떠있는 고양된 상태로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질척한 시장바닥에서 뒹굴 수만도 없다. 이것이 내가 이번 여름 백두산 천지에 다시 올라 꼼꼼히 생각했던 질문들이었다. 백두산 천지의 숭고미는 내가 연전에 보았던 남미의 이과수폭포나 중국의 장가계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백두산 천지의 ‘사건’에서 경험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우며, 표현할 수도 없고, 재현할 수도 없는 어떤 거룩한 경외감은 우주의 장대함과 심오함을 일부나마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경교융’(情景交融)의 시적 체험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예술과 문학이 이러한 숭고미의 경지를 계속 추구한다면 무겁고 답답한 일상사를 어느 정도 기쁘고 의미있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백두산, 천지 그리고 숭고미
글 정정호 ㅣ 평론가,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1949년생
저서 『문학과 환경』 『이론의 문화정치학과 비판적 페다고지』 『영미문학비평론』 『비교세계문학론』『재난의 시대를 위한 희망의 인문학』 등
그때 이후로 보는 힘은 언어구사력을 능가했다.
나는 보는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없었다.
- 단테 『신곡』 「천국편」 23편. 55~56행
|
1999년 백두산을 다녀온 후 내 일생 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주의의 피로사회에서 쉬지도 않고 맹렬히 달리다가 가끔 휴식이나 명상을 위해 눈을 감으면 그때마다 갑자기 그리고 자주 백두산과 천지의 유장(悠長)한 풍광이 꿈처럼 엄습하곤 했다. 백두의 12개 큰 봉우리들과 천지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져 장대하고 심연 하던 숲의 모습이 심안(心眼)까지 각인되어 있어서 나를 짓누르던 모든 심리적 억압이나 작은 영적인 고통들이 새의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신령한 백두산 정상의 천지 바람이 나의 몸과 마음을 정화(淨化)시켜 주는 것 같았다. 이것은 백두산과 천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임이 분명했다. 고단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간혹 백두산과 천지를 떠올리며 그 치유와 위로의 힘으로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마음의 눈이 백두산 천지의 신비로운 영광을 담을 수 있는 한 나는 언제나 싱싱할 것 같다. 나는 벌써부터 서재에다 백두산 천지 사진을 걸어 놓고 가끔 주문을 외우듯 그곳을 소환해낸다. 그때마다 그곳의 경이의 정기(精氣)가 나를 상큼하게 휘감으며 내 영혼을 어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백두산 천지가 내 삶에 미적 거리를 만들어주어 탈영토화 시키는 것일까?
내가 두 번째로 백두산을 등정한 날은 올해 7월 8일이었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천지를 볼 기회가 일 년에 90일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운 좋게 백두산 봉우리들과 천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장백산(長白山, 중국인들이 부르는 이름) 일대를 제10대 국가관광지역으로 선포한 이래 편의시설이 많이 들어섰고, 천지 바로 아래까지 독일 지프차를 타고 3, 4명씩 올라갔던 지난 번 등정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독일제 봉고차로 8, 9명씩 올라갔다. 여러 방향에서 봉우리로 올라가는 계단도 새로 만들어놓았다. 당시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는데 지금은 등산객 수를 통제할 정도로 중국 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북한쪽에서 백두산으로 직접 올라가지 못하고 중국을 통해 올라가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전이라도 우리 땅 북한쪽으로 백두산 등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선족 자치구인 중국의 길림성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북파, 남파, 서파의 3갈래가 있는데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북파(북쪽 산등성이) 길을 선택하여 중국 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천문봉(天文峰)에 올랐다. 주봉인 북한쪽의 장군봉이 저 건너 보였고 백두산 천지가 주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모습은 변함이 없었지만 첫 번째 등정 때 극심한 감격으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문이 막히면서 오던 인식장애, 언어장애는 없었다. 사실 나는 첫 번째 등정 이후로 백두산 등정기를 아직도 쓰지 못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사유로,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그 장엄하고 거룩하고 신비로운 초월적 힘이 어디서 오는지 계속 사유하고 있었다. 그 거대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마력적 경외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숭고(미)’(Sublime)의 영역이었다.
문학에서 ‘숭고’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1세기 또는 3세기 그리스의 문인 롱기누스(Longinus)였다. 그는 일부가 분실된 『숭고론』에서 당시 처음으로 이 새로운 개념에 대해 설명하였다. 롱기누스는 탁월한 문학이란 단순한 설득이나 아름다움 이상의 숭고미를 촉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진정한 숭고미’란 ‘내적인 힘이 작용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들어 올려져, 우리는 의기양양한 고양과 자랑스러운 기쁨의 의미로 충만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숭고미란 일상적 존재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켜 거룩한 환희의 경지로 몰입시키는 상상력에 다름 아니다. 어떤 문학도 우리에게 ‘고상한 정서’인 숭고미를 작동시켜주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위대한 문학이 아니다. 롱기누스는 ‘고상한 정서는 광증의 폭풍으로 표면으로 상승하여, 연사의 말 속에 일종의 신의 영감이 살아 숨 쉬게 한다’(김명복 역)고 언명한다. 신의 영감을 작동시킬수 있는 문학만이 진정한 문학이라는 말이다. (수사학자 롱기누스는 숭고미가 상실된 시대는 자유의 억압, 돈에 대한 사랑, 용서할 줄 모르는 오만, 쾌락이나 칭송받는 일 이외의 일에 대한 무관심,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랑의 부재 등이 인간의 영혼을 지치게 하고 영혼의 장엄함을 몰락시킨다고 보았다.) 롱기누스의 숭고미 사상은 18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미와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논구』(1757)로 이어지고 독일의 칸트 미학의 결정판인 『판단력 비판』(1790)에서 화려하게 부활되어 재론된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장-프랑소와 료타르에 의해 ‘탈근대 숭고미’로 다시 한 번 부활되었다.
오늘 숭고미론을 다시 꺼내드는 것은 롱기누스가 숭고미를 단순히 수사적, 문학적 가치로만 보지 않고 윤리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학의 윤리화인가? 숭고미의 윤리학은 수사적 방법이나 문학적 법칙이나 도덕적 규례를 넘어서서 궁핍한 시대와 현실을 단순히 초월하지 않고 타고 넘어가는 포월(葡越)의 경지로 우리를 이끈다. 범위를 좁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보더라도 과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켜 우주의 신비로움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가? 순수와 참여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온갖 진영논리를 벗어나는, 다양한 파당들을 품고 넘어갈 수 있는 사유의 시공간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을 떠나 공중에 떠있는 고양된 상태로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질척한 시장바닥에서 뒹굴 수만도 없다. 이것이 내가 이번 여름 백두산 천지에 다시 올라 꼼꼼히 생각했던 질문들이었다. 백두산 천지의 숭고미는 내가 연전에 보았던 남미의 이과수폭포나 중국의 장가계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백두산 천지의 ‘사건’에서 경험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우며, 표현할 수도 없고, 재현할 수도 없는 어떤 거룩한 경외감은 우주의 장대함과 심오함을 일부나마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경교융’(情景交融)의 시적 체험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예술과 문학이 이러한 숭고미의 경지를 계속 추구한다면 무겁고 답답한 일상사를 어느 정도 기쁘고 의미있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