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기획특집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작품을 접하게 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한국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소설 작품인데 한국에서 쓰여진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세하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하나의 작품이 작가의 책상에서 성공적 출판에 이르기까지, 책의 출판은 보통 잘 닦여 있는 길을 따라 이루어진다. 작가의 원고 초본은 (문예 저작권) 대리인에게 전달되고, 전달된 초본은 다시 편집자에게로, 그리고 그것이 편집자의 마음에 들었을 경우 비로소 출판팀에 소개된다. 뛰어난 영국 및 미국 소설들은 흔히 받은 편지함 속 소설을 보고 그 진면목을 알아본 대리인에 의해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년 그란타의 포르토벨로북스(Portobello Books)를 통해 영국에 소개된 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는 이 같은 통상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 (문예 저작권) 대리인이 벨을 동반한 금관악기를 총동원하여 편집자의 방문을 두드리는 전형적인 방법 대신,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 Smith)가 솔로로 등장하여 바로 그란타의 책임편집자 막스 포터(Max Porter)의 마음을 두드린 것이다.
데보라는 —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 SOAS(The School for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의 박사 과정 학생이다. 그리고 한국 문학과 아직 영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지 않은 뛰어난 한국 작가들에 대해 진정성 있는 열정을 갖고 있다. 좁은 우물 안에서만 주요 출판 과정이 이루어지고, 최신 트렌드를 따라 ‘상업적으로 유효한’ 아이디어만 좇아가다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훌륭한 작가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빗겨나갈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책 —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들 — 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국어 독자들, 특히나 번역가와의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그들은 실제로 무엇이 좋은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한국 문학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데보라의 보고서와 샘플 번역본을 통해 막연하게 어림잡은 개략적 형태와 그림자만으로도 이 텍스트가 위험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우리는 이것이 뼈까지 와 닿는, 어떠한 종류의 문학적 전기 충격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녀의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한강의 텍스트가 그녀의 모국어에서도 컬트적 대중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으며, 번역된 영어 텍스트가 가장 원초적 감정에서 솟아난 한강 작가의 내러티브와 언어학적 도전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음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다음 과제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 방법론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흔한 동양적인 클리셰들 — 아스라히 뜬 눈, 우유 빛깔 피부의 앳된 아시아 여인이 연꽃, 절, 크레인들로 가득 찬 석양의 풍경, 혹은 그녀의 가슴을 바라보는 장면 등이 등장하는 온건한 책 표지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 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동양적’인 것으로 팔리는 책은 서가에 오래 남아있지도 못할 뿐더러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설들은 서구의 독자들로 하여금 신비로운 동양에 대한 자신들의 신화적 이미지와 일본, 한국, 중국의 문화를 수프마냥 엉망으로 섞어놓을 것이다.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작품을 접하게 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한국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소설 작품인데 한국에서 쓰여진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세하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는 오리엔탈리스트의 관점에서 해석되는 애타게 하는/감질나게 하는 동양,이국적인 매력에 방점을 맞추어 마케팅 전략을 세울 것이다. 반면 우리가 선호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에 따르면 텍스트의 맥락이 한국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고 스토리텔링의 힘에 초점을 맞추어 마케팅 전략을 세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데보라와 막스, 막스와 그의 출판팀이 공유했던 바로 그 열정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영어권 국가에 한국 문학을 소개할 때,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에 대한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문학은 서구권에서 으레 상상하는 일본과 중국 문학의 개념과는 다르다. 실질적으로 일본과 중국 문학은 이미 서구권에서 번역 문학으로서 단단한 입지를 마련했다. 이 같은 단단한 입지를 바탕으로, 신진 중국, 일본 작가들은 정전 테두리 바깥에서 글쓰기 작업을 수행하고 있고 이를 통해 서구권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에 도전하는 구조적틀을 만들고 있다. 이는 개별적 특질을 가진 각각의 책들이 민간대사적 성격을 띠고 각 나라를 대표하게 될 정도의 큰 성공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구조이다. 일본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 바나나 요시모토, 요코 오가와, 무라카미 류이고, 중국의 경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과모옌을 들 수 있겠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민간대사’적 성격의 책이 탄생하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나 번역된 한국 문학은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책들의 출판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작가 발굴의 토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가들은 창조적이고 호소력 있는 ‘수입된’ 목소리로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우리에게 산문으로 쏟아냄으로써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인간 조건에 대한 시야를 넓혀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소가 출판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종종 예측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위대한 책의 성공을 만들기도 한다. 번역서의 출판에 있어서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는 김영하와 황석영은 그 좋은 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서들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체와 그에 담긴 절묘한 뉘앙스, 글을 쓰는 양식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황석영의 뛰어난 작품들은종종 도발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들은 영국이 중국의 공산 정권, 공산 후의 동유럽 혹은 짐 크로(Jim Crow) 이후의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대중적 식견에 비하여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상상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포획하거나 자극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KCC(Korean Cultural Center UK: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한국 문학의 밤’은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한국 문학의 밤은 영국 독자들에게 한국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넓은 플랫폼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활동은 2014 런던북페어 당시 큰 공헌을 했다.
이는 우리가 이제껏 해왔듯이 야심차게 한강의 작품을 그녀의 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로서 출판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주로 백인 작가들, 특히 미국, 영국, 서유럽권 작
가들에 의하여 독식되는 영어권 국가에서 여성, 특히나 비영어권 작가들에게 들이대는 섣부른 잣대를 보류하고자 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 번역출판 프로젝트는 비영어권 여성의 소설이라기보다 한강 작가 자체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국 내 한국문학 출판의 지형을 고려했을 때, 『채식주의자』를 단순 한국 문학으로 분류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일반화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한국 소설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ther)』와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이다. 이 두작품과 『채식주의자』는 뛰어나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매우 다른 성격의 독자들을 매혹하고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책들은 그 책에 맞는 편집자와 적합한 카테고리가 필요하고 이것은 각각의 소설이 성공적으로 소개되는 과정에서 그 필요를 입증한다.
황선미와 신경숙 소설 각각의 성공 신화는 번역된 소설이 갖는 비극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영역서는 출판 즉시 고전으로 선정되었고 영국대표 언론인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지와 영국의 가장 큰 서적유통체인인 워터스톤즈(Waterstones)에 의하여 2014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렸으며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명성을 갖는— 심지어 대다수 아동문학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와 비견될 만한 —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즉각적으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2011년 맨 아시아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 수상 이후에 훨씬 큰 유명세를 타게 됐다. 맨 아시아문학상의 수상은 신경숙의 소설을 번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게 하였고 신경숙의 이름 또한 번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로 널리 인식되게 하였다.
한국 문학은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영미 문화권에서의 영향력 확장에 탄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한국의 원작자뿐만 아니라 번역 문학이 마주하게 된 과제이기도 하다.영미권 편집자들은 작가들의 발전 과정과 그에 따른 장인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개별적 출판보다 작가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책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책장과 북새통 속으로 사라져버릴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출판 과정에 있어서 번역자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번역자가 어떤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번역자는 그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번역자의 관심은 편집자들을 이해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작품 번역을 지원하는 기관들은 번역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긴밀한 네크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문학 작품이 최종적으로 번역 출판되었을 때,번역자들은 종종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언론에서는 번역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문학 번역상의 경우에도, 원작자를 칭송하느라 번역자의 필수적 공헌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가 무라카미의 문학적 기량과는 연관이 없다 부정하는것과 다름없으며, 텍스트에 있어서 이와 같은 평가는 매우 치명적이다. 이것은 책 출판에 있어서 생략 불가능한 요소들을 생략하고 텍스트를 텍스트 자체로부터 분리해내는 행보이다.
따라서 번역상은 번역자들의 기량을 평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출판상은 출판가들에게 요긴한 장려책인 반면에 번역상은 때때로 성이 지어지는 데 필수적인 주
춧돌로 작용한다. 번역상은 출판사들로 하여금 번역 및 번역자의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련이름 및 작품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번역자들에게는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맨 부커 국제문학상(Man Booker International P r i z e ) 과 인디펜던트 외 국 소 설 문 학 상(Independent Foreign Fiction Prize)의 합병이 방증하듯이 최근에는 출판 및 인식에 있어서 번역서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합병으로 인해 새로이 탄생한 상들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텍스트를가져다주는 번역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작가와 번역가에게 각각 상금을 수여
할 예정이다. 새로이 탄생하는 상들에 대해 제1심사위원인 보이드 톤킨(Boyd Tonkin)은 번역서에 대한 관심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이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는 대산문화재단의 번역 출판 지원을 받았다. 흔하지 않은 이런 비상업적 소설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출판사와 편집자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종종 재정적 위험을 상기시킨다는 사실을 굳이 돌려서 이야기하진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출판을 기획하는 출판사는 종종 소규모 독립 출판사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들이 편집자의 책상 위에 올라왔을 때 이 상황은 편집자에게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대산문화재단과 같은 기관의 지원은 이 같은 요인들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채식주의자』의 성공과 열광적 반응에 힘입어 다시 한 번 포르토벨로의 소설 전집 리스트에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고자 한다. 우리는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Human Acts)』를 2016년 1월에 출판할 예정이다. 데보라는 현재 출판사 액시스프레스(Axis Press)를 세웠고 이를 통해 번역서 분야에 집중하여 다양한 범주의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목소리를 가진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 문학의 지형을 바꿔 놓을 예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데보라가 정교히 기획한 번역서 리스트에도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형의 변화는 번역서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서가에서 더 많은 한국 문학을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번역 : 이지현(대산문화재단 인턴)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글 카 브래들리(Ka Bradley) ㅣ 영국 그란타북스(Granta Books) 및 포르토벨로북스(Portobello Books) 부편집자. 1988년생
‘한국의 소설’이 아닌 ‘한국에서 쓰여진 소설’
- 영국에서의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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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작품을 접하게 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한국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소설 작품인데 한국에서 쓰여진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세하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하나의 작품이 작가의 책상에서 성공적 출판에 이르기까지, 책의 출판은 보통 잘 닦여 있는 길을 따라 이루어진다. 작가의 원고 초본은 (문예 저작권) 대리인에게 전달되고, 전달된 초본은 다시 편집자에게로, 그리고 그것이 편집자의 마음에 들었을 경우 비로소 출판팀에 소개된다. 뛰어난 영국 및 미국 소설들은 흔히 받은 편지함 속 소설을 보고 그 진면목을 알아본 대리인에 의해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년 그란타의 포르토벨로북스(Portobello Books)를 통해 영국에 소개된 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는 이 같은 통상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 (문예 저작권) 대리인이 벨을 동반한 금관악기를 총동원하여 편집자의 방문을 두드리는 전형적인 방법 대신,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 Smith)가 솔로로 등장하여 바로 그란타의 책임편집자 막스 포터(Max Porter)의 마음을 두드린 것이다.
데보라는 —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 SOAS(The School for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의 박사 과정 학생이다. 그리고 한국 문학과 아직 영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지 않은 뛰어난 한국 작가들에 대해 진정성 있는 열정을 갖고 있다. 좁은 우물 안에서만 주요 출판 과정이 이루어지고, 최신 트렌드를 따라 ‘상업적으로 유효한’ 아이디어만 좇아가다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훌륭한 작가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빗겨나갈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책 —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들 — 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국어 독자들, 특히나 번역가와의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그들은 실제로 무엇이 좋은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한국 문학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데보라의 보고서와 샘플 번역본을 통해 막연하게 어림잡은 개략적 형태와 그림자만으로도 이 텍스트가 위험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우리는 이것이 뼈까지 와 닿는, 어떠한 종류의 문학적 전기 충격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녀의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한강의 텍스트가 그녀의 모국어에서도 컬트적 대중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으며, 번역된 영어 텍스트가 가장 원초적 감정에서 솟아난 한강 작가의 내러티브와 언어학적 도전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음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다음 과제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 방법론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흔한 동양적인 클리셰들 — 아스라히 뜬 눈, 우유 빛깔 피부의 앳된 아시아 여인이 연꽃, 절, 크레인들로 가득 찬 석양의 풍경, 혹은 그녀의 가슴을 바라보는 장면 등이 등장하는 온건한 책 표지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 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동양적’인 것으로 팔리는 책은 서가에 오래 남아있지도 못할 뿐더러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설들은 서구의 독자들로 하여금 신비로운 동양에 대한 자신들의 신화적 이미지와 일본, 한국, 중국의 문화를 수프마냥 엉망으로 섞어놓을 것이다.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작품을 접하게 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한국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소설 작품인데 한국에서 쓰여진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세하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는 오리엔탈리스트의 관점에서 해석되는 애타게 하는/감질나게 하는 동양,이국적인 매력에 방점을 맞추어 마케팅 전략을 세울 것이다. 반면 우리가 선호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에 따르면 텍스트의 맥락이 한국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고 스토리텔링의 힘에 초점을 맞추어 마케팅 전략을 세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데보라와 막스, 막스와 그의 출판팀이 공유했던 바로 그 열정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영어권 국가에 한국 문학을 소개할 때,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에 대한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문학은 서구권에서 으레 상상하는 일본과 중국 문학의 개념과는 다르다. 실질적으로 일본과 중국 문학은 이미 서구권에서 번역 문학으로서 단단한 입지를 마련했다. 이 같은 단단한 입지를 바탕으로, 신진 중국, 일본 작가들은 정전 테두리 바깥에서 글쓰기 작업을 수행하고 있고 이를 통해 서구권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에 도전하는 구조적틀을 만들고 있다. 이는 개별적 특질을 가진 각각의 책들이 민간대사적 성격을 띠고 각 나라를 대표하게 될 정도의 큰 성공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구조이다. 일본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 바나나 요시모토, 요코 오가와, 무라카미 류이고, 중국의 경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과모옌을 들 수 있겠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민간대사’적 성격의 책이 탄생하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나 번역된 한국 문학은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책들의 출판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작가 발굴의 토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가들은 창조적이고 호소력 있는 ‘수입된’ 목소리로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우리에게 산문으로 쏟아냄으로써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인간 조건에 대한 시야를 넓혀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소가 출판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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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예측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위대한 책의 성공을 만들기도 한다. 번역서의 출판에 있어서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는 김영하와 황석영은 그 좋은 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서들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체와 그에 담긴 절묘한 뉘앙스, 글을 쓰는 양식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황석영의 뛰어난 작품들은종종 도발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들은 영국이 중국의 공산 정권, 공산 후의 동유럽 혹은 짐 크로(Jim Crow) 이후의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대중적 식견에 비하여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상상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포획하거나 자극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KCC(Korean Cultural Center UK: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한국 문학의 밤’은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한국 문학의 밤은 영국 독자들에게 한국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넓은 플랫폼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활동은 2014 런던북페어 당시 큰 공헌을 했다.
이는 우리가 이제껏 해왔듯이 야심차게 한강의 작품을 그녀의 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로서 출판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주로 백인 작가들, 특히 미국, 영국, 서유럽권 작
가들에 의하여 독식되는 영어권 국가에서 여성, 특히나 비영어권 작가들에게 들이대는 섣부른 잣대를 보류하고자 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 번역출판 프로젝트는 비영어권 여성의 소설이라기보다 한강 작가 자체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국 내 한국문학 출판의 지형을 고려했을 때, 『채식주의자』를 단순 한국 문학으로 분류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일반화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한국 소설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ther)』와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이다. 이 두작품과 『채식주의자』는 뛰어나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매우 다른 성격의 독자들을 매혹하고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책들은 그 책에 맞는 편집자와 적합한 카테고리가 필요하고 이것은 각각의 소설이 성공적으로 소개되는 과정에서 그 필요를 입증한다.
황선미와 신경숙 소설 각각의 성공 신화는 번역된 소설이 갖는 비극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영역서는 출판 즉시 고전으로 선정되었고 영국대표 언론인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지와 영국의 가장 큰 서적유통체인인 워터스톤즈(Waterstones)에 의하여 2014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렸으며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명성을 갖는— 심지어 대다수 아동문학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와 비견될 만한 —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즉각적으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2011년 맨 아시아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 수상 이후에 훨씬 큰 유명세를 타게 됐다. 맨 아시아문학상의 수상은 신경숙의 소설을 번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게 하였고 신경숙의 이름 또한 번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로 널리 인식되게 하였다.
한국 문학은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영미 문화권에서의 영향력 확장에 탄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한국의 원작자뿐만 아니라 번역 문학이 마주하게 된 과제이기도 하다.영미권 편집자들은 작가들의 발전 과정과 그에 따른 장인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개별적 출판보다 작가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책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책장과 북새통 속으로 사라져버릴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출판 과정에 있어서 번역자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번역자가 어떤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번역자는 그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번역자의 관심은 편집자들을 이해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작품 번역을 지원하는 기관들은 번역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긴밀한 네크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문학 작품이 최종적으로 번역 출판되었을 때,번역자들은 종종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언론에서는 번역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문학 번역상의 경우에도, 원작자를 칭송하느라 번역자의 필수적 공헌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가 무라카미의 문학적 기량과는 연관이 없다 부정하는것과 다름없으며, 텍스트에 있어서 이와 같은 평가는 매우 치명적이다. 이것은 책 출판에 있어서 생략 불가능한 요소들을 생략하고 텍스트를 텍스트 자체로부터 분리해내는 행보이다.
따라서 번역상은 번역자들의 기량을 평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출판상은 출판가들에게 요긴한 장려책인 반면에 번역상은 때때로 성이 지어지는 데 필수적인 주
춧돌로 작용한다. 번역상은 출판사들로 하여금 번역 및 번역자의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련이름 및 작품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번역자들에게는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맨 부커 국제문학상(Man Booker International P r i z e ) 과 인디펜던트 외 국 소 설 문 학 상(Independent Foreign Fiction Prize)의 합병이 방증하듯이 최근에는 출판 및 인식에 있어서 번역서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합병으로 인해 새로이 탄생한 상들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텍스트를가져다주는 번역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작가와 번역가에게 각각 상금을 수여
할 예정이다. 새로이 탄생하는 상들에 대해 제1심사위원인 보이드 톤킨(Boyd Tonkin)은 번역서에 대한 관심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이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는 대산문화재단의 번역 출판 지원을 받았다. 흔하지 않은 이런 비상업적 소설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출판사와 편집자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종종 재정적 위험을 상기시킨다는 사실을 굳이 돌려서 이야기하진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출판을 기획하는 출판사는 종종 소규모 독립 출판사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들이 편집자의 책상 위에 올라왔을 때 이 상황은 편집자에게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대산문화재단과 같은 기관의 지원은 이 같은 요인들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채식주의자』의 성공과 열광적 반응에 힘입어 다시 한 번 포르토벨로의 소설 전집 리스트에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고자 한다. 우리는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Human Acts)』를 2016년 1월에 출판할 예정이다. 데보라는 현재 출판사 액시스프레스(Axis Press)를 세웠고 이를 통해 번역서 분야에 집중하여 다양한 범주의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목소리를 가진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 문학의 지형을 바꿔 놓을 예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데보라가 정교히 기획한 번역서 리스트에도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형의 변화는 번역서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서가에서 더 많은 한국 문학을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번역 : 이지현(대산문화재단 인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