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우리시대의 화제작
2004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 손님이 파주의 창비 사무실로 찾아와서 외국에 번역할 만한 창비의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너무 막연한 주문인데다가 외국에 있다 온 분이라 국내 출판계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나는 대표적인 작가의 소설작품과 화제가 됐던 책 중심으로 열심히 소개해드렸다.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에는 이런 요청에 대응할 자료들이 잘 준비돼 있지 않던 터라,창비 근무 경력이 오랜 내가 응대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 손님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대해서 물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밀리언셀러라는 걸 알고 묻기에 나는 몇 년 전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설명해드렸다. 그렇지만 그분은 책이 방송을 타서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어떤 작품인지 이야기하면서 외국에서 대중적으로 읽힐 작품은 아니라고 알려드렸지만 그분은 내가 소개한 다른 책들에는 별 관심이 없고 『괭이부리말 아이들』에만 계속 미련을 두는 것 같았다. 아마 그분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뭔가 다른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2001년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이른바 ‘자기계발서’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2002년에는 종합 10위까지에 소설이 8종이나 오르는 등 소설 강세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 중에서 1위인 『아홉살 인생』(위기철)을 비롯해 『봉순이 언니』(공지영),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모랫말 아이들』(황석영) 5종이 MBC 텔레비전 프로그램 <!느낌표> 권장도서다.8위를 차지한 유용주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도 <!느낌표> 권장도서이고 『백범일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22위까지에 더 포진하고 있으니, 2002년에는 <!느낌표> 권장도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사실 독서 프로그램이나 책 관련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미미하다. 가장 시청률이 안나오는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에 배치되고, 출판 편집일을 하는 내가 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오락프로그램이다. 토요일 황금시간대에 방영되었다. 뒤에 <나는 가수다>로 더 유명해진 ‘쌀집 아저씨’ 김영희PD가 연출한 ‘작품’이다. 2001년 11월 시작한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는 국민필독서를 한 권씩 선정해 약 한 달 동안 그 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느낌표>도 인기가 있었고, 당시에 꽤 인기가 높던 김용만과 유재석이 진행하는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도 시청자의 관심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때 필독서 첫 책으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선정되었는데, 사실 작가나 제목이 상당히 낯설었고 책의 내용을 찬찬히 소개하는 프로도 아니었기 때문에 방영 초반에는 시청자-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창비에서 주관하는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4회 당선작으로 뽑혀 2000년 ‘창비아동문고’로 출간된 신인작가 김중미의 소년소설이다. 이원수, 현덕, 권정생의 소년소설의 전통을 잇는 리얼리즘 계열 작품으로 사회소설이자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다. 어린이문학 쪽에서는 이 작품이 주목을 받았고 권장도서로도 선정되었지만 일반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권정생의 『몽실 언니』처럼 어른들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인 동구 만석동 일대의 별명으로 이 작품은 거기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숙자와 숙희자매, 동준이, 명환이와 동수, ‘유도 아저씨’ 영호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괭이부리말 출신으로 교사가 되어 다시 괭이부리말의 초등학교로 돌아온 김명희 선생이 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하지만, 한두주인공만을 초점으로 하지 않고 있어서 ‘집단 주인공’ 혹은 ‘괭이부리말’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괭이부리말에서 오랫동안 ‘기차길옆공부방’을 운영하며 그곳의 삶과 문제를 공유해온 김중미 작가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닮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서로서로 동무가 되고,아픔과 슬픔, 기쁨까지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괭이부리말 아이들』 ‘머리말’) 쓴 감동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통적인 사실주의 방법으로 삶과 인간을 묘사하면서, 어느 시대든 기발한 상상이나고도의 기법보다 ‘삶의 진실’이 독자에게 육박하는 문학의 최상책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작품이 밀리언셀러가 되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만석동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골목을기웃거리고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의 시선이 만석동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만 하다. 이후 인천시에서 만석동 일대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얼마나 주민의 삶의형편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7월에는 인천시 동구에서 괭이부리말에 쪽방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생활체험관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쪽방촌을 관광지로 만들어 상품화하려 한다”며 반발한다는 기사가 났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과 관심을 확장했지만, 우리 사회가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변화하기까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느낌표> 선정도서가 대거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 잡으면서 책 선정의 공정성 문제, 출판시장의 왜곡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나는 작가로서, 출판인으로서 <!느낌표> 시절이 그립다. ‘전국민이 책을 읽는 그날까지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고 외치는 방송을 다시 보고 싶다. 당시 출판사에서 제작을 맡아 어느 날부터 매일 1만부, 2만부씩 폭주하는 주문에 맞추느라 인쇄소, 제본소를 늘려가며 제착처를 채근했던 경험은 아득한 전설일까. 이후 <!느낌표>는 기증되는 선정도서 판매수익금을 바탕으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로 인해 정말 아름다운, 기적 같은 어린이도서관이 올해 ‘도봉기적의도서관’까지 열두 채가 지어졌다. ‘쌀집 아저씨’가 꿈꾸었던 평양에 ‘기적의 도서관’을 세우는 일도 허황한 공상은 아닐 것이다.
<느낌표> 권장도서 바람을 탄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
글 김이구 ㅣ 소설가, 평론가. 1958년생
소설 『사랑으로 만든 집』 『첫날밤의 고백』, 평론집 『우리 소설의 세상 읽기』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 『어린이문학을 보는 시각』 등
2002년의 화제작 『괭이부리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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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이른바 ‘자기계발서’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2002년에는 종합 10위까지에 소설이 8종이나 오르는 등 소설 강세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 중에서 1위인 『아홉살 인생』(위기철)을 비롯해 『봉순이 언니』(공지영),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모랫말 아이들』(황석영) 5종이 MBC 텔레비전 프로그램 <!느낌표> 권장도서다.8위를 차지한 유용주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도 <!느낌표> 권장도서이고 『백범일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22위까지에 더 포진하고 있으니, 2002년에는 <!느낌표> 권장도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사실 독서 프로그램이나 책 관련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미미하다. 가장 시청률이 안나오는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에 배치되고, 출판 편집일을 하는 내가 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오락프로그램이다. 토요일 황금시간대에 방영되었다. 뒤에 <나는 가수다>로 더 유명해진 ‘쌀집 아저씨’ 김영희PD가 연출한 ‘작품’이다. 2001년 11월 시작한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는 국민필독서를 한 권씩 선정해 약 한 달 동안 그 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느낌표>도 인기가 있었고, 당시에 꽤 인기가 높던 김용만과 유재석이 진행하는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도 시청자의 관심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때 필독서 첫 책으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선정되었는데, 사실 작가나 제목이 상당히 낯설었고 책의 내용을 찬찬히 소개하는 프로도 아니었기 때문에 방영 초반에는 시청자-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창비에서 주관하는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4회 당선작으로 뽑혀 2000년 ‘창비아동문고’로 출간된 신인작가 김중미의 소년소설이다. 이원수, 현덕, 권정생의 소년소설의 전통을 잇는 리얼리즘 계열 작품으로 사회소설이자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다. 어린이문학 쪽에서는 이 작품이 주목을 받았고 권장도서로도 선정되었지만 일반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권정생의 『몽실 언니』처럼 어른들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인 동구 만석동 일대의 별명으로 이 작품은 거기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숙자와 숙희자매, 동준이, 명환이와 동수, ‘유도 아저씨’ 영호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괭이부리말 출신으로 교사가 되어 다시 괭이부리말의 초등학교로 돌아온 김명희 선생이 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하지만, 한두주인공만을 초점으로 하지 않고 있어서 ‘집단 주인공’ 혹은 ‘괭이부리말’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괭이부리말에서 오랫동안 ‘기차길옆공부방’을 운영하며 그곳의 삶과 문제를 공유해온 김중미 작가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닮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서로서로 동무가 되고,아픔과 슬픔, 기쁨까지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괭이부리말 아이들』 ‘머리말’) 쓴 감동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통적인 사실주의 방법으로 삶과 인간을 묘사하면서, 어느 시대든 기발한 상상이나고도의 기법보다 ‘삶의 진실’이 독자에게 육박하는 문학의 최상책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작품이 밀리언셀러가 되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만석동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골목을기웃거리고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의 시선이 만석동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만 하다. 이후 인천시에서 만석동 일대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얼마나 주민의 삶의형편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7월에는 인천시 동구에서 괭이부리말에 쪽방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생활체험관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쪽방촌을 관광지로 만들어 상품화하려 한다”며 반발한다는 기사가 났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과 관심을 확장했지만, 우리 사회가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변화하기까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느낌표> 선정도서가 대거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 잡으면서 책 선정의 공정성 문제, 출판시장의 왜곡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나는 작가로서, 출판인으로서 <!느낌표> 시절이 그립다. ‘전국민이 책을 읽는 그날까지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고 외치는 방송을 다시 보고 싶다. 당시 출판사에서 제작을 맡아 어느 날부터 매일 1만부, 2만부씩 폭주하는 주문에 맞추느라 인쇄소, 제본소를 늘려가며 제착처를 채근했던 경험은 아득한 전설일까. 이후 <!느낌표>는 기증되는 선정도서 판매수익금을 바탕으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로 인해 정말 아름다운, 기적 같은 어린이도서관이 올해 ‘도봉기적의도서관’까지 열두 채가 지어졌다. ‘쌀집 아저씨’가 꿈꾸었던 평양에 ‘기적의 도서관’을 세우는 일도 허황한 공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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