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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소설 사이
- 일역 현길언 소설 『전쟁놀이』
글 오미정 ㅣ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
저서 『일본 전후문학과 식민지 경험』, 역서 『일본 근대문학의 상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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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역 현길언 소설 『전쟁놀이』
현길언의 동화집이 2015년 3월에 일본의 저명한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번역되었다. ‘제주’라는 공간의 지역성, 역사성을 주요한 창작의 모티브로 삼는 작가이니 만큼, 일본어로 어떻게 번역되고 수용되는지 대단히 궁금한 점이다.
원작은 좋은 번역자를 만나 번역의 질이 대단히 높다. 재일한국인인 현선윤과 모리모토 유키코의 공동번역은 원작을 충실하게 전달하였다. 모리모토는 저자 현길언과 거의 동세대이고, 현선윤은 한 세대 아래이다. 두 번역자는 서로 번역한 내용을 상호 검토하여, 제주도의 풍경이나 식민지치하,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시기를 경험한 아동의 시선을 잘 번역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국적인 제주도의 풍토가 배경이니만큼, 원작에도 올레나 오름과 같은 토속 어휘에 주석이 달려있다. 번역자들은 한국과 제주도의 고유지명,고유명사에 부분적으로 주석을 달기도 했지만 가능한 주를 달지 않고 소설 속에서 의미가 전달되도록 노력하였다.
번역서의 구성은 원작과 조금 달라졌다. 독립된 3권이 합쳐지며 프롤로그, 1·2·3장,에필로그, 역자해설로 구성되었다. 각 권의 제목은 1장은 원제 「전쟁놀이」에서 「그때 나는 8살이었다」로, 2장은 「그 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에서 원작의 부제인 「뿔이 난 아이들」로 바뀌었다.
역자는 번역 당시 한 권으로 통합되어 출판된 독일어 판을 참조하여 번역하였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제3장의 표제인 「못자국」이 책 제목으로, 일본에서는 제1장의 표제인 「전쟁놀이」가 책 제목(『戦争ごっこ』)으로 선택된 것도 흥미롭다. 독일어 번역에서는 종교적참회와 반성, 주인공 세철이 성장하여 종교인의 길을 걸어 간 것에 중점을 두었고, 일본어 번역에서는 1930년대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식민지 전쟁과 냉전 상황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 원작을 수용하는 결의 차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점이다.
번역서에는 한국어 원작에 없는 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눈에 띈다. 이는 일본에서 텍스트를 ‘자전적 장편소설’로 소개한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번역서 속표지에도 그렇게 소개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연작 3권으로 된 동화였고, 이우범이 그린 삽화와 권말에 각 시대의 사진자료와 연표가 붙어 있다. 일본어판에서는 삽화와 연표가 생략되었는데, 동화에서 자전적 성장소설로 위상을 변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변화로 보인다.
그런데 이 위상 변화는 조금 혼란스럽다. 이와나미쇼텐의 누리집에는 이 소설을 해방 직전의 식민지 시대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소년의 투철한 시선으로 포착한 걸작이라 하면서도,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아동문학으로, 재일한국인 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현기영의 『순이삼촌』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번역서는 어디까지나 아동문학이 아닌 어른용 소설을 의도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번역서의 출판사가 일본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서적 출판사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책의 문체는 물론 두께, 장정과 표지, 역자해설도 묵직하다. 아동용 동화이기도 하고,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텍스트의 면모를 일본의 독자에 충분하게 전달하기에는 너무 무겁지 않은가?
번역서의 프롤로그와에필로그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는 너무도 예정조화적인 틀에 딱 들어맞아, 잘 만들어진 어른용 텍스트가 되어 버렸다.
원작의 가장 큰 미덕은 소년 세철이 8~13세 사이에 겪는 갈등과 혼란의 재현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일본 군인으로 나가 전사한 삼촌을 둔 소년으로서의 자긍심이 해방 후 친일파라 규정되고, 식민지 시대 면서기에서 해방 후 면장이 된 부친의 아들이라는 자긍심은 좌우 대립 속에서 반동으로 규정되는 역전을 겪는다. 또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육지에서 온 피난민과기독교라는 문화는 소년에게 뒤떨어진 시골뜨기라는 열등감을 남긴다.
주인공 소년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생생한 표현, 예를 들어 해방이 된 후에 어제까지 일본어로 수업을 하고 천황에게 절을 하던 습관 그대로 하려던 학급 반장을 조선인 선생이 하지
말라고 화내며 제지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선생님, 우리는 천황폐하 은혜로 살아왔으며, 일본과는 한 나라라고 했는데도 말입니까……?”
“그러면 거짓말을 했단 말입니까?
“그렇다.”
“어떻게……?”
…… (중략)
“선생님, 그러면 세철이 삼촌이 일본 군인으로 나가서 죽은 것은 개죽음 아닙니까?”
식민지와 해방의 의미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의 당황스러움이 잘 표현된 이 장면은 식민지 지배 운운의 어떤 설명보다도 명확하게 피식민자가 경험한 혼란과 모순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은성인에게도 필요하지만, 해방 70년에도 점점 더 전쟁의 기억을 망각하고 ‘우향우’하는 현대 일본에서 어린 세대들에게 식민지 지배의 상흔과 유산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일본의 독자에게 이 텍스트는 8·15 이전의 식민주의의 상흔을 ‘전쟁’의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침착하고 서늘하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도 일본어 번역에서 선택한 ‘동화’가 아닌 ‘소설’의 전략은 못내 아쉽다. 어른용 텍스트가 되어버려 애초부터 일본의 어린 독자들에게는 접근이 차단되어 버린 결과가 되었다. 일본에서의 텍스트에 대한 반향은 이제부터 시작일 듯하다.
※ 일역 『전쟁놀이』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현선윤 씨의 번역으로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