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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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텍스트의 위기와 이유 없는 침묵
글 김성곤 ㅣ 이데일리 문화부 기자. 1973년생
텍스트(text)의 위기시대다. 사실 텍스트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늘 위기담론이 횡행했다.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종이에 아로새겨진 활자화된 글을 읽는 사람은 점점 찾기 어렵다.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풍경만 봐도 그렇다. 당연히 책은 팔리지 않는다. 텍스트는 ‘위기’와 이음동어의(異音同義語)가 돼버렸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텍스트는 위기를 넘어 사망 직전의 단계다.
고사 위기에 놓여있던 텍스트의 지위는 지난 여름 결정타를 만났다. 한순간에 와르르 허물어졌다. 누구나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을 탓할 필요조차 없다. 텍스트 생산의 핵심 주체들의 도덕성 문제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논란과 김영사의 경영권 분쟁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도 유사한 문제가 없지 않았으나 이번 사태는 국내 문단과 출판계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그만큼 파장이 컸다. 특히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됐다. 문학관련 사건사고가 TV 9시 뉴스에 나오거나 신문 1면의 톱기사로 오르면서 모든 국민의 이슈가 돼버렸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언론과 국민, 네티즌들은 백화제방(百花齊放)으로 의견을 쏟아냈지만 이해 당사자들은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한마디로 ‘이유 없는 침묵’ 이었다. 물론 문학권력과 출판상업주의 문제가 일부 제기됐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이지만 독자들의 상처가 워낙 컸다는 점에서 파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경숙’이라는 이름 석 자는 단순한 ‘소설가’ 그 이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대중적 작가다. 『깊은 슬픔』, 『외딴 방』,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엄마를 부탁해』 등등. 그녀가 쓰면 곧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렇다고 명예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1985년 등단 이후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휩쓴 것은 물론 프랑스의 ‘리나페르쉬 상’(2009)과 ‘맨아시아문학상’(2012)을 수상하며 해외
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머지않아 곧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겠느냐는 장밋빛 청사진까지 나올 정도였다.
우상은 한순간에 악몽의 날을 맞이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 작가가 지난 6월 16일 인터넷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이후 상황은 잘 알려진 대로다. “한글만 읽을 줄 알면 누가 봐도 명백한 표절”이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작가와 해당 출판사인 창비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분명한 사과와 해명이 아닌 어설픈 변명이었다. 독자들은 작가를 향해 ‘신도리코’, 창비를 향해서는 창작과비평이 아닌 ‘표절과두둔’ 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거세지는 비난 여론에 작가와 해당 출판사가 어정쩡하게 표절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김영사 경영권 분쟁도 국내 출판계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여름철 불쾌지수를 급상승시켰던 롯데그룹 형제의 난과 다를 바 없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출판시스템을 운영해왔다고 자타가 공인해왔던 김영사의 경영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지나지 않았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결합이 이상적인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본질은 ‘돈싸움’이었다. 더구나 오너의 한마디에 스타 경영인이 파리 목숨이 돼버리는 후진적인 출판시장의 구조는 비정한 재벌가와 다를 바 없었다.
신경숙 표절파문과 김영사 경영권 분쟁은 올해 문학출판계 최대 악재다. 고질적인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학·출판계를 꽁꽁 얼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2015년이 서정주·박목월·황순원 등 거장들의 탄생 100주년이었다는 점과 크고 작은 논란 끝에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가 상대적으로 안착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독자들을 텍스트 주변으로 견인할 최적의 환경에도 문학출판계 스스로가 이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독자들의 신뢰는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신경숙 표절파문과 김영사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은 거장들의 침묵이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논란이 지속되는 동안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내 내로라하는 시인과 소설가 등 유명 작가들이 말을 아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용서가 안 되는 짓”이라며 절필을 요구한 조정래 선생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이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침묵을 선택했다. 어떤 변명을 한다한들 결국 ‘제 식구 감싸기’와 다를 바 없다. 동네북과 다를 바 없는 국회의원들도 이 정도는 아니다. 여야 동료 의원의 성추문, 막말, 뇌물수수 의혹이 터지면서 침묵보다는 오히려 비판을 선택했다. 참 비교되는 대목이다.
문학·출판 영역의 종사자들은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치·경제적 부조리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침묵이 과연 금(金)일까?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우리의 후진적 출판시스템을 선진화 할 수 있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목소리는 미미하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침묵의 위험성은 마틴 니뮐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때」에서 잘 나타난다. 침묵은 결국 공범이다. 텍스트의 위기 시대는 내재적 폐쇄성을 기반으로 한 침묵의 연결고리를 깰 때 그나마 회생의 단초라도 열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