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대작 에세이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워싱턴 포스트》에서 활동했던 안재훈(安在勳)은 올바른 언론의 기초적인 본질을 뒤늦게 외국 땅에서 깨우치고,그런 가르침을 한국의 다른 언론인들에게 전도하느라고 무던히 애를 썼던인물이다. 그는 라이따이한의 거짓된 진실을 취재하겠다고 지난여름에 필자를 찾아왔던 우익 일본인 ‘빠가야로’와는 전혀 다른 의식을 지닌 언론인이었다.
1987년에 『하얀 전쟁』이 미국에서 출판되었을 때 가장 먼저 신문 지상에소개해준 언론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나이까지 동갑이어서 필자와 개인적인 인연을 맺은 그는 1996년 중앙일보사에서 1년 동안 전문위원직을 위촉받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때 그는 필자와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워싱턴 포스트》 시절의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베트남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안재훈 기자가 비둘기 발(☮) 휘장을 당당하게 가슴팍에 달고 신문사로 출근했는데, 동료 기자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주의를 시켰다고 한다. 언론인은 개인적인 정치 성향따위를 남들 앞에서 밝히면 안 된다는 귀띔이었다. 반전운동에 동의한다고공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면 그것은, 개별적인 언론인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중립성 자체를 훼손하는 경솔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동료 기자들이 그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비둘기 발은 평화의 상징이다. 언론인은 전쟁이건 평화건 어느 한 편을 들면 안 된다. 그리고 반전운동을 지지한다는 소신을 신문에서 공식적으로 밝히면 더더구나 안 된다. 파괴와 살육을 수반하는 전쟁이 나쁜 짓이기는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필요악이거나 심지어는 정의를 구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어떤 다수의 개인들과 그들이 소속한 집단의 생존과 자유를 지키려는 행위다. 그래서 전쟁의 정의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고, 상황에 처한 개인의 시각에 따라 본질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세력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언론인에게 왜 비둘기 발이 용납되지 않는지를 각성하게 된 이런 우발적인 체험을 거친 다음 재미 언론인 안재훈은 2011년에 7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게 공정한 언론의 본분을 깨우쳐 주느라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현금 행태를 보면 그의 고군분투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혼자 힘으로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나 벅찬 관행과 전통, 그리고 대한민국이 처한 지정학적인 현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을 처음 학문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곳은 홍익대(1954년)였고, 중앙대(1958년), 이화여대(1960년), 그리고 한양대(1963년)가 뒤를 따랐다. 명칭은 다르지만 충남대,서강대, 경희대, 부산대, 경북대 등 여러 대학에서 유사한 전공 분야들이 자리를 잡아 수많은 언론인 지망생을 배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연예계나 방송 활동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여 진정한 언론인을 키워내기에는 미흡하지 않나 하는 짐작이 간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 활동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영화를 독립된 하나의 학문 분야로 인식하는 사람이 없었고, 연기를 전공하는 학과도 없었고, 언론 또한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대학이 거의 없었다. 한국일보사 주간국에는 그때 서강대를 졸업한 필자 이외에는 거의 모두가 서울 문리대 출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이른바 수습기자들은 3개월에서 6개월에 걸쳐 자동차 조수처럼 도제로써의 현장 학습을 거쳐야 했다.
요즈음에는 훈련 수준이 크게 개선되기는 했겠지만 언론인들의 기초 훈련은 나아진 바가 별로 없는 듯하다. 매우 부족해 보이는 평형 인식에 있어서 특히 그렇다. 한국식 언론 풍토가 몸에 뱄던 안재훈 기자가 자신도 모르게 노출시킨 편향된 자세가 그래서 미국 신문사 동료들로부터 지적을 받은 것이다. 학교와 언론사에서는 관념적인 이론을 주로 가르치는 까닭에 구체적인 정신자세에 관한 훈련이 모자란 탓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1964년에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던 《코리아헤럴드》는 영자 신문이었고, 수습 기간에는 AP 통신의 보도 편람(stylebook)을 지침서로 삼았다. 영자 신문은 독자층이주로 대학생들, 그리고 외교관이나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준을 맞춰야하는 언론 매체였다.
“땡전 뉴스”보다 훨씬 전에, 언론 매체들이 중앙정보부로부터 극심한 통제를 받아가며 북한의《로동신문》처럼 국가 홍보에 열중하여 어용 언론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에, 한국일보사의영자 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는 이런 충돌사고가 발생했었다. 당시 국내 신문에서는 해마다 신년호 1면에 대통령 가족사진이 큼직하게 실렸고, 사주는 《코리아타임스》도 그 관행에 따르기를 요구했다. 편집국에서는 원시적인 독재국가의 행태가 외국 독자들에게 창피하다며 못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AP 편람에서는 언론의 중립성을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제1과에서 교육시켰다. 그래서 다행히 필자는 서양 언론의 화법을 처음부터 익혔고, 언론인으로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배웠다. 그것은 보도를 하는 기자(straight news reporter)라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논평자(commentator)와는 기능과 직책이 달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개인적인 견해를 곁들인 사설을 쓰는 행위(editorialize)를 삼가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의 견해가 만일 극소수의 목소리에 속하거나, 혹시 오직 한명의 소신일 뿐이라면, 언론은 소수의 대표성을 인용할 때 경계해야 옳다. 소수 집단의 견해를 무시해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확대하면 훨씬 큰 폐해가 발생한다. 소수를 대변하여 다수를 희생시키는 보도 행태는 공정한 언론이 아니라 편파적인 선동이나 마찬가지여서다.
최근의 어느 뉴스 전문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중학교 야구의 승부가 조작되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경찰 수사도 불가피해 보입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 수사가 불가피한지아니면 가피한지는 기자가 촉구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청자가 판단한다. 시청자의 판단을기자가 대신 촉구하는 것은 일종의 선동이라고 하겠다.
우리 언론에서는 마치 다수의 견해인 듯 호도하기 위해서 “여론의 질타”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하지만 그 ‘여론’이 전체 인구 가운데 몇 명, 몇 퍼센트의 견해인지는 밝히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여론’을 빙자한 특정 언론인 한 사람의 견해인 경우가 많다. “여론이 들끓는다”
는 식의 보도는 들끓는 ‘여론’이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인지 수치를 밝혀야 신빙성을 얻는다.
“여론이 이렇다”는 언론의 수사학은 종종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수렴’한다는 정치판의 수사학을 퍽 닮았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 경기장에서 몸을 날려 다른 선수에게 양발차기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해 한국의 언론은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박 선수의 편을 들었다. 마치 경기장 폭력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동족을 향한 애국심만 강조하는 듯 싶었다. 국회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었다.
우리나라만큼 심하지는 않아도 외국 언론의 일방적인 편파성 또한 때로는 원인은 무시하고 결과만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 1991년 3월 3일, 로스앤젤레스 길거리에서 두 명의 경찰관이 흑인 청년 로드니 킹(Rodney King)을 진압봉으로 마구 구타하는 장면을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가 구경하던 시민이 비디오로 촬영하여 방송국으로 보냈다. 경찰 폭력을 그대로 보여준이 장면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듬해 LA 흑인 폭동으로 이어져 5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우리 교민들에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로 인해서 킹은 흑인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집단의 영웅적 상징처럼 부각되었지만, 왜 백인 경찰관들이 그를 구타했는지 원인을 당시에 구체적으로 언급한 언론 보도는, 필자가 접한 바로는, 테드 카플(Ted Koppel)이 진행하던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Nightline)> 뿐이었다.
킹은 1989년에 강도질로 체포되어 2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당시에 가석방이 된 자로서,문제의 3월 3일에는 음주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시속 117마일(약 190킬로미터)로 과속 운전을 하며 경찰관들을 꼬리에 달고 다섯 시간이나 도망쳐 다니다 마침내 체포되었지만, 비디오에는 물론 그런 사실들이 하나도 찍히지 않았다.
공사장 막일꾼이었던 킹은 법에 호소하여 이 사건으로 5백만 달러의 배상을 받고 유명인사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다가 1993년에 음주운전 사고로 다시 체포되었고, 1995년에는 아내를 일부러 차로 치어 또 체포되었고, 2003년에도 음주운전 과속 신호위반으로 다시 체포되었다. 킹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맞을만한 짓을 한 범죄자”였다.
로드니 킹을 때린 공권력에 관한 여론의 질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갖가지 여론의 질타 또한 과연 얼마나 옳았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로드니 킹을 ‘의사’나 ‘열사’로 상징화하던 현상 못지않게 심각한 정치적 편향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워낙 심하게 한국 언론을 훼손해왔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언론의 다양한 사상적 횡포에 거의 무감각해질 정도로 면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현실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별로 바람직하지 못했던 언론의 질타 가운데 몇 가지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전형적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웬만큼 젊은 세대라면 기억하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삼각지의 원형 공중 교차로는 “불도저” 김현옥 시장의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시설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는 사이에 서울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사방에서 동시에 진입하는 차량들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화된다면서, 교차로는 “김현옥의 졸작”이라고 언론의 극심한 질타를 받고 자취를 감추었다. 공중교차로는 변함없이 그대로였지만, 언론의 시각이 변덕을 부린 결과였다.
물론 삼각지 풍차 교차로에 대한 언론의 지적은 정확했지만, 질타의 화법은 별로 바람직한 논조가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면 시각과 기준이 달라지고 그러니까 과거의 결정은 과거의 시점을 존중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하느님이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고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성경의 표현이 “비유였다”고 아무리 지금의 학자들이 주장하더라도, 2천 년 전에 그것을 진실이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었다면, 그런 개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진술자가 “생각하고 표현한 바”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듣고 믿는 바”에 입각해야 한다.
온갖 비유를 진실이라며 여론을 유도하는 언론의 보도는 그렇게 유도함으로써 발생한 여론에 영향을 미친 만큼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정직한 언론은 여론을 이끄는 주동자가 아니라, 여론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경찰청에서 삼색 화살표 신호등 체제를 실시하려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취소한 사례도 있다. 버스 환승제와 마찬가지로, “혼란을 부추긴다는 시민들의 여론”을 언론은 사유로 내걸었다.
“붉은 화살표 때문에 몇 차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는 언론의 보도는 “졸속 행정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까지 맹렬하게 곁들였다. 하지만 다른 보고서에 의하면, 새로 시행하려던 체제에 시민들이 아직 익숙해지지를 않아서 혼란을 일으켜 몇 번의 사고가 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건널목 교통사고의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버스 환승제가 처음 실시되었을 때, 언론은 “정류장 안내판의 글씨가 작다”면서, “갈아타야 하는 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요란하게 고발했고, 환승제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환승제를 철회하자고 국민투표를 벌인다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비를 깎아주는 제도를 아예 없애자고 견해를 밝힐 ‘시민’이 몇 명이나 될까?
시내버스의 도색을 바꾼다고 했을 때, 언론은 어느 미술대학 교수의 견해를 인용하여 서울시가 선택한 색깔들이 “정서 불안”이라며 ‘흉물’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미술대학의 교수들가운데 같은 견해를 피력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었던가? 그리고 1천만 서울 시민들 가운데 버스색 때문에 정서 불안에 시달린 사람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푸른빛과 연두빛이 참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이나 쟁점이 발생할 때는 언론 매체에서 누군가를 불러다 앞세워 증언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취재진에서는 그들이 듣고 싶은 어떤 내용의 얘기를 할 만한 인물을 의도적으로 미리 선정한다. 그리고 증인에게 무슨 말을 시켜야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진실은 왜곡되고 언론은 편향한다. “나는 진실을 말했지만 독자나 시청자가 잘못 이해했다”고 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의 핑계는 정직한 진술이 아니다.
언론에서 무엇인지를 비판할 때는 반드시 쌍방의 견해를 함께 밝혀서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배려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원칙에 신경을 쓰는 일선 기자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한강의 올림픽대교에 세운 탑을 놓고도 언론은 어느 교수 한 사람의 견해를 인용하여 “촌스럽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하지만 필자는 강변도로를 오가며 그 탑을 볼 때마다 “참 멋지다”고 감탄한다.
청계천 수로 공사가 광화문 광장과 더불어 “가장 나쁜 공사”라고 다분히 비방하는 방송도 나왔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서는, 그곳에 산적했던 썩은 오물을 복개한 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시민들이 물가를 산책하도록 만들어놓은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으로 놀러 나오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듯하다.
그보다 앞서서 한때는 청계천 고가도로가 교통 정체를 유발하는 흉물이라고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처음 고가도로를 만들었을 무렵에는 지상 도로에 교통량이 별로 많지 않았고, 삼일로에서 광화문으로 내려가는 지점의 병목 현상 또한 심하지 않았다.
새로운 주소 체제가 시행되던 첫 날 텔레비전에서는 “시민들이 불편해한다”고 떠들썩했다.
시행 첫 날인데 일시적으로는 불편한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것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이나 행정 당국을 정치적 또는 이념적으로 적대시하는 집단의 화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에는 우주 탐험과 개발을 위한 정부 시책이 1회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그것뿐인데, 그렇다면 만사를 젖혀두고 국가 예산을 계속 쏟아 부어 미국의 NASA수준으로 우주 개발에 정진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아예 1회성 실험 따위는 시도조차 하지말라는 뜻인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탐험과 개척은 모두가 1회성 첫 걸음으로시작한다. 그리고 첫 걸음의 결과가 만족해야 전진을 계속한다. 실패는 시도하는 자의 권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했을 때는 “구출 작전이 신속하지 않다”고 남한 언론이 맹공을 펼쳤다.
그래서 밤낮으로 과도하게 열심히 구조 작업을 하다가 어느 대원이 숨지는 사건이 터지자 남한의언론은 “준비가 부족했다”고 이번에는 안전 불감증이라며 식상한 맹공을 가했다. 그리고는 민간어선이 백령도 근처에서 함미를 먼저 발견하자 남한의 언론은 마치 해경과 해군은 놀고 앉아 있기만 했다는 듯 고기잡이배를 칭찬하는 쪽으로 쏠리며 군경의 노력에는 핀잔을 주었다. 그런가하면 일부 정치인들과 여론은 북한의 공격을 두둔하고 변호했다. 확률과 통계를 무시하는 그릇된 민주적인 언론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였다.
무엇인가 빨리 하면 빨리빨리 조급증에, 졸속에, 안전 불감증이라고 질타하던 언론이, 꼼꼼히 하려면 “우왕좌왕 늑장 대응”이라고 거꾸로 비판하는 바람에, 관리들은 무슨 일을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어야 할 바에야 차라리 복지부동을 선택하게 되고, 그러면 언론은 “쉽게 고칠일도 고치지 않는다”고 또다시 질타한다. 규제 철폐를 부르짖다가 온갖 규제를 풀어 무질서가 만 연하면 이제는 “통관 절차가 엉망”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비판이 뒤따른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트집의 수준이겠다.
아무리 자세히 보려고 해도 세상만사는 모든 부분을 한꺼번에 유기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진리와 진실은 입체여서 단면으로 보면, 아무리 여러 단면을 포괄하더라도, 전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찰할 대상을 주관적으로 선택하여 부분만 확대해서 자세히 봤다가는 당연히 편견이 생긴다. 이런 편견을 때로는 주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지나친 주관을 내세우는 언론의 비판적 질타 역시 졸속이다. 참을성이 부족한 비판 또한 빨리빨리 서두르는 조급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국어대사전』은 ‘매체(媒體)’를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론 매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어느 집단의 견해를 다른 집단에게 전달 하는 투명한 그릇이다. 전도체(vehicle)의 사명은 자신의 특성이 아니라 남들의 뜻을 담아서 전달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보도에서는 하다못해 막연히 “그렇다고 하더라(it is said)”나, “제보자가 말하기를(sources said)”이라는 식으로 남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하며, “나의 소신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기자가 절대로 단정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와 비둘기 발
글 안정효 ㅣ 소설가. 1941년생
소설 『가을바다 사람들』 『학포장터의 두 거지』 『동생의 연구』 『은마는 오지 않는다』 『미늘』『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나비 소리를 내는 여자』 『낭만파 남편의 편지』 『태풍의 소리』 『착각』 『실종』『미늘의 끝』 『지압 장군을 찾아서』 『솔섬』 『미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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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하얀 전쟁』이 미국에서 출판되었을 때 가장 먼저 신문 지상에소개해준 언론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나이까지 동갑이어서 필자와 개인적인 인연을 맺은 그는 1996년 중앙일보사에서 1년 동안 전문위원직을 위촉받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때 그는 필자와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워싱턴 포스트》 시절의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베트남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안재훈 기자가 비둘기 발(☮) 휘장을 당당하게 가슴팍에 달고 신문사로 출근했는데, 동료 기자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주의를 시켰다고 한다. 언론인은 개인적인 정치 성향따위를 남들 앞에서 밝히면 안 된다는 귀띔이었다. 반전운동에 동의한다고공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면 그것은, 개별적인 언론인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중립성 자체를 훼손하는 경솔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동료 기자들이 그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비둘기 발은 평화의 상징이다. 언론인은 전쟁이건 평화건 어느 한 편을 들면 안 된다. 그리고 반전운동을 지지한다는 소신을 신문에서 공식적으로 밝히면 더더구나 안 된다. 파괴와 살육을 수반하는 전쟁이 나쁜 짓이기는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필요악이거나 심지어는 정의를 구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어떤 다수의 개인들과 그들이 소속한 집단의 생존과 자유를 지키려는 행위다. 그래서 전쟁의 정의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고, 상황에 처한 개인의 시각에 따라 본질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세력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언론인에게 왜 비둘기 발이 용납되지 않는지를 각성하게 된 이런 우발적인 체험을 거친 다음 재미 언론인 안재훈은 2011년에 7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게 공정한 언론의 본분을 깨우쳐 주느라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현금 행태를 보면 그의 고군분투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혼자 힘으로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나 벅찬 관행과 전통, 그리고 대한민국이 처한 지정학적인 현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을 처음 학문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곳은 홍익대(1954년)였고, 중앙대(1958년), 이화여대(1960년), 그리고 한양대(1963년)가 뒤를 따랐다. 명칭은 다르지만 충남대,서강대, 경희대, 부산대, 경북대 등 여러 대학에서 유사한 전공 분야들이 자리를 잡아 수많은 언론인 지망생을 배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연예계나 방송 활동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여 진정한 언론인을 키워내기에는 미흡하지 않나 하는 짐작이 간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 활동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영화를 독립된 하나의 학문 분야로 인식하는 사람이 없었고, 연기를 전공하는 학과도 없었고, 언론 또한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대학이 거의 없었다. 한국일보사 주간국에는 그때 서강대를 졸업한 필자 이외에는 거의 모두가 서울 문리대 출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이른바 수습기자들은 3개월에서 6개월에 걸쳐 자동차 조수처럼 도제로써의 현장 학습을 거쳐야 했다.
요즈음에는 훈련 수준이 크게 개선되기는 했겠지만 언론인들의 기초 훈련은 나아진 바가 별로 없는 듯하다. 매우 부족해 보이는 평형 인식에 있어서 특히 그렇다. 한국식 언론 풍토가 몸에 뱄던 안재훈 기자가 자신도 모르게 노출시킨 편향된 자세가 그래서 미국 신문사 동료들로부터 지적을 받은 것이다. 학교와 언론사에서는 관념적인 이론을 주로 가르치는 까닭에 구체적인 정신자세에 관한 훈련이 모자란 탓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1964년에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던 《코리아헤럴드》는 영자 신문이었고, 수습 기간에는 AP 통신의 보도 편람(stylebook)을 지침서로 삼았다. 영자 신문은 독자층이주로 대학생들, 그리고 외교관이나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준을 맞춰야하는 언론 매체였다.
“땡전 뉴스”보다 훨씬 전에, 언론 매체들이 중앙정보부로부터 극심한 통제를 받아가며 북한의《로동신문》처럼 국가 홍보에 열중하여 어용 언론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에, 한국일보사의영자 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는 이런 충돌사고가 발생했었다. 당시 국내 신문에서는 해마다 신년호 1면에 대통령 가족사진이 큼직하게 실렸고, 사주는 《코리아타임스》도 그 관행에 따르기를 요구했다. 편집국에서는 원시적인 독재국가의 행태가 외국 독자들에게 창피하다며 못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AP 편람에서는 언론의 중립성을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제1과에서 교육시켰다. 그래서 다행히 필자는 서양 언론의 화법을 처음부터 익혔고, 언론인으로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배웠다. 그것은 보도를 하는 기자(straight news reporter)라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논평자(commentator)와는 기능과 직책이 달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개인적인 견해를 곁들인 사설을 쓰는 행위(editorialize)를 삼가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의 견해가 만일 극소수의 목소리에 속하거나, 혹시 오직 한명의 소신일 뿐이라면, 언론은 소수의 대표성을 인용할 때 경계해야 옳다. 소수 집단의 견해를 무시해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확대하면 훨씬 큰 폐해가 발생한다. 소수를 대변하여 다수를 희생시키는 보도 행태는 공정한 언론이 아니라 편파적인 선동이나 마찬가지여서다.
최근의 어느 뉴스 전문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중학교 야구의 승부가 조작되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경찰 수사도 불가피해 보입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 수사가 불가피한지아니면 가피한지는 기자가 촉구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청자가 판단한다. 시청자의 판단을기자가 대신 촉구하는 것은 일종의 선동이라고 하겠다.
우리 언론에서는 마치 다수의 견해인 듯 호도하기 위해서 “여론의 질타”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하지만 그 ‘여론’이 전체 인구 가운데 몇 명, 몇 퍼센트의 견해인지는 밝히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여론’을 빙자한 특정 언론인 한 사람의 견해인 경우가 많다. “여론이 들끓는다”
는 식의 보도는 들끓는 ‘여론’이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인지 수치를 밝혀야 신빙성을 얻는다.
“여론이 이렇다”는 언론의 수사학은 종종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수렴’한다는 정치판의 수사학을 퍽 닮았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 경기장에서 몸을 날려 다른 선수에게 양발차기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해 한국의 언론은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박 선수의 편을 들었다. 마치 경기장 폭력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동족을 향한 애국심만 강조하는 듯 싶었다. 국회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었다.
우리나라만큼 심하지는 않아도 외국 언론의 일방적인 편파성 또한 때로는 원인은 무시하고 결과만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 1991년 3월 3일, 로스앤젤레스 길거리에서 두 명의 경찰관이 흑인 청년 로드니 킹(Rodney King)을 진압봉으로 마구 구타하는 장면을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가 구경하던 시민이 비디오로 촬영하여 방송국으로 보냈다. 경찰 폭력을 그대로 보여준이 장면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듬해 LA 흑인 폭동으로 이어져 5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우리 교민들에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로 인해서 킹은 흑인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집단의 영웅적 상징처럼 부각되었지만, 왜 백인 경찰관들이 그를 구타했는지 원인을 당시에 구체적으로 언급한 언론 보도는, 필자가 접한 바로는, 테드 카플(Ted Koppel)이 진행하던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Nightline)> 뿐이었다.
킹은 1989년에 강도질로 체포되어 2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당시에 가석방이 된 자로서,문제의 3월 3일에는 음주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시속 117마일(약 190킬로미터)로 과속 운전을 하며 경찰관들을 꼬리에 달고 다섯 시간이나 도망쳐 다니다 마침내 체포되었지만, 비디오에는 물론 그런 사실들이 하나도 찍히지 않았다.
공사장 막일꾼이었던 킹은 법에 호소하여 이 사건으로 5백만 달러의 배상을 받고 유명인사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다가 1993년에 음주운전 사고로 다시 체포되었고, 1995년에는 아내를 일부러 차로 치어 또 체포되었고, 2003년에도 음주운전 과속 신호위반으로 다시 체포되었다. 킹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맞을만한 짓을 한 범죄자”였다.
로드니 킹을 때린 공권력에 관한 여론의 질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갖가지 여론의 질타 또한 과연 얼마나 옳았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로드니 킹을 ‘의사’나 ‘열사’로 상징화하던 현상 못지않게 심각한 정치적 편향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워낙 심하게 한국 언론을 훼손해왔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언론의 다양한 사상적 횡포에 거의 무감각해질 정도로 면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현실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별로 바람직하지 못했던 언론의 질타 가운데 몇 가지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전형적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웬만큼 젊은 세대라면 기억하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삼각지의 원형 공중 교차로는 “불도저” 김현옥 시장의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시설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는 사이에 서울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사방에서 동시에 진입하는 차량들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화된다면서, 교차로는 “김현옥의 졸작”이라고 언론의 극심한 질타를 받고 자취를 감추었다. 공중교차로는 변함없이 그대로였지만, 언론의 시각이 변덕을 부린 결과였다.
물론 삼각지 풍차 교차로에 대한 언론의 지적은 정확했지만, 질타의 화법은 별로 바람직한 논조가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면 시각과 기준이 달라지고 그러니까 과거의 결정은 과거의 시점을 존중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하느님이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고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성경의 표현이 “비유였다”고 아무리 지금의 학자들이 주장하더라도, 2천 년 전에 그것을 진실이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었다면, 그런 개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진술자가 “생각하고 표현한 바”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듣고 믿는 바”에 입각해야 한다.
온갖 비유를 진실이라며 여론을 유도하는 언론의 보도는 그렇게 유도함으로써 발생한 여론에 영향을 미친 만큼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정직한 언론은 여론을 이끄는 주동자가 아니라, 여론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경찰청에서 삼색 화살표 신호등 체제를 실시하려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취소한 사례도 있다. 버스 환승제와 마찬가지로, “혼란을 부추긴다는 시민들의 여론”을 언론은 사유로 내걸었다.
“붉은 화살표 때문에 몇 차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는 언론의 보도는 “졸속 행정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까지 맹렬하게 곁들였다. 하지만 다른 보고서에 의하면, 새로 시행하려던 체제에 시민들이 아직 익숙해지지를 않아서 혼란을 일으켜 몇 번의 사고가 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건널목 교통사고의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버스 환승제가 처음 실시되었을 때, 언론은 “정류장 안내판의 글씨가 작다”면서, “갈아타야 하는 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요란하게 고발했고, 환승제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환승제를 철회하자고 국민투표를 벌인다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비를 깎아주는 제도를 아예 없애자고 견해를 밝힐 ‘시민’이 몇 명이나 될까?
시내버스의 도색을 바꾼다고 했을 때, 언론은 어느 미술대학 교수의 견해를 인용하여 서울시가 선택한 색깔들이 “정서 불안”이라며 ‘흉물’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미술대학의 교수들가운데 같은 견해를 피력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었던가? 그리고 1천만 서울 시민들 가운데 버스색 때문에 정서 불안에 시달린 사람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푸른빛과 연두빛이 참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이나 쟁점이 발생할 때는 언론 매체에서 누군가를 불러다 앞세워 증언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취재진에서는 그들이 듣고 싶은 어떤 내용의 얘기를 할 만한 인물을 의도적으로 미리 선정한다. 그리고 증인에게 무슨 말을 시켜야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진실은 왜곡되고 언론은 편향한다. “나는 진실을 말했지만 독자나 시청자가 잘못 이해했다”고 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의 핑계는 정직한 진술이 아니다.
언론에서 무엇인지를 비판할 때는 반드시 쌍방의 견해를 함께 밝혀서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배려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원칙에 신경을 쓰는 일선 기자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한강의 올림픽대교에 세운 탑을 놓고도 언론은 어느 교수 한 사람의 견해를 인용하여 “촌스럽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하지만 필자는 강변도로를 오가며 그 탑을 볼 때마다 “참 멋지다”고 감탄한다.
청계천 수로 공사가 광화문 광장과 더불어 “가장 나쁜 공사”라고 다분히 비방하는 방송도 나왔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서는, 그곳에 산적했던 썩은 오물을 복개한 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시민들이 물가를 산책하도록 만들어놓은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으로 놀러 나오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듯하다.
그보다 앞서서 한때는 청계천 고가도로가 교통 정체를 유발하는 흉물이라고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처음 고가도로를 만들었을 무렵에는 지상 도로에 교통량이 별로 많지 않았고, 삼일로에서 광화문으로 내려가는 지점의 병목 현상 또한 심하지 않았다.
새로운 주소 체제가 시행되던 첫 날 텔레비전에서는 “시민들이 불편해한다”고 떠들썩했다.
시행 첫 날인데 일시적으로는 불편한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것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이나 행정 당국을 정치적 또는 이념적으로 적대시하는 집단의 화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에는 우주 탐험과 개발을 위한 정부 시책이 1회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그것뿐인데, 그렇다면 만사를 젖혀두고 국가 예산을 계속 쏟아 부어 미국의 NASA수준으로 우주 개발에 정진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아예 1회성 실험 따위는 시도조차 하지말라는 뜻인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탐험과 개척은 모두가 1회성 첫 걸음으로시작한다. 그리고 첫 걸음의 결과가 만족해야 전진을 계속한다. 실패는 시도하는 자의 권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했을 때는 “구출 작전이 신속하지 않다”고 남한 언론이 맹공을 펼쳤다.
그래서 밤낮으로 과도하게 열심히 구조 작업을 하다가 어느 대원이 숨지는 사건이 터지자 남한의언론은 “준비가 부족했다”고 이번에는 안전 불감증이라며 식상한 맹공을 가했다. 그리고는 민간어선이 백령도 근처에서 함미를 먼저 발견하자 남한의 언론은 마치 해경과 해군은 놀고 앉아 있기만 했다는 듯 고기잡이배를 칭찬하는 쪽으로 쏠리며 군경의 노력에는 핀잔을 주었다. 그런가하면 일부 정치인들과 여론은 북한의 공격을 두둔하고 변호했다. 확률과 통계를 무시하는 그릇된 민주적인 언론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였다.
무엇인가 빨리 하면 빨리빨리 조급증에, 졸속에, 안전 불감증이라고 질타하던 언론이, 꼼꼼히 하려면 “우왕좌왕 늑장 대응”이라고 거꾸로 비판하는 바람에, 관리들은 무슨 일을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어야 할 바에야 차라리 복지부동을 선택하게 되고, 그러면 언론은 “쉽게 고칠일도 고치지 않는다”고 또다시 질타한다. 규제 철폐를 부르짖다가 온갖 규제를 풀어 무질서가 만 연하면 이제는 “통관 절차가 엉망”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비판이 뒤따른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트집의 수준이겠다.
아무리 자세히 보려고 해도 세상만사는 모든 부분을 한꺼번에 유기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진리와 진실은 입체여서 단면으로 보면, 아무리 여러 단면을 포괄하더라도, 전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찰할 대상을 주관적으로 선택하여 부분만 확대해서 자세히 봤다가는 당연히 편견이 생긴다. 이런 편견을 때로는 주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지나친 주관을 내세우는 언론의 비판적 질타 역시 졸속이다. 참을성이 부족한 비판 또한 빨리빨리 서두르는 조급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국어대사전』은 ‘매체(媒體)’를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론 매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어느 집단의 견해를 다른 집단에게 전달 하는 투명한 그릇이다. 전도체(vehicle)의 사명은 자신의 특성이 아니라 남들의 뜻을 담아서 전달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보도에서는 하다못해 막연히 “그렇다고 하더라(it is said)”나, “제보자가 말하기를(sources said)”이라는 식으로 남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하며, “나의 소신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기자가 절대로 단정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