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시론
한국문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요즘 이런 생각에 잠길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식탁에 부모와 마주 앉아서도, 친구나 애인과 카페에 앉아서도, 학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스마트폰을 만진다.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고, 문자를 보내고, 게임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보낸다. 출근을 할 때도,거리를 걸을 때도, 업무를 볼 때도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밀착성이 가장 강한 것은 책이나 애인이 아니라 스마
트폰이다.
21세기의 우리 생활에서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는 혁명적이다. 손 안의 컴퓨터라 부를 수 있는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물건을 구입하고, 길을 찾고, 음악을 듣는다. 스마트폰은 이제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애인이자 친구이며, 비서이자 선생님이다. 지식을 얻는 것도, 식사를하는 것도, 운전을 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경험의 상당부분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정보의 범주 속에 갇혀있다.
나는 20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현재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문학의 변화, 구체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사라지고 추상적인 언어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문학 자체가 야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변화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시간과 장소를 바탕으로 한 서사성이 사라지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나 감정의 세계가 늘어나는 일이라든가 시에서 고뇌어린 방황을 정련된 언어로 형상화하는 작품이 사라지고 순간적인 감정을 영상화시키는 언어가 증가하는 일 따위가 모두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우리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경험을 할 시간을 축소시키고 영상적 이미지와 언어에 함몰된 생활을 증가시키는 최근의 생활방식이 문학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책이나 영상을 통해 얻은 이미지는 삶을 통해 습득한 실제적인 경험보다 사실성과 신뢰도가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보고 감각하며 얻은 경험적 지식에 비해 간접적으로 획득한 지식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보리’라는 식물을 직접 키워본 경우와 책이나 영상으로 본 경우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직접 키워 본 사람은 보는 순간 ‘보리’를 바로 알아보지만 간접적으로 알고 알는 경우는 쉽게 확신하지 못한다. 요즘의 젊은 독자들이 과거의 문학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들은 ‘보리’라는 식물을 추상적 언어로는 잘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으로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그들은 김영랑의 시 「오월」에 나오는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는 표현을 생생하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갓 팬 보리 이삭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어려운데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가씨의 허리가 살짝살짝 드러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까닭이다. 이처럼 간접적인 지식을 자신의 살아 있는 체험처럼 사용하는 데에는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언어의 의미와 언어가 구성하는 이미지의 해독에 가장 먼저 작용하는 것은 우리의 직접경험이다. 경험 중에서 직접경험은 간접경험보다 훨씬 강력하게 이미지의 해독에 작용한다. 우리 속담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말은 직접경험의 이미지가 활동하는 모습을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화의 「나의 침실(寢室)로」에 나오는 “앞산 그리메가 도까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느끼고 이해하는 데에는 지능보다 경험이 우선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소를 먹이며 산등성이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았던 사람은 산 그림자가 소리 없이 길어져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모습에 대한 기억을가지고 있다. 또 그런 생활을 했던 사람은 아침 일찍 마을까지 내려왔던 산 그림자가 짧아지는 것을보며 들로 나갔던 기억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산 그리메가 도까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에 그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도시 사람은 이 시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을 듣기 전에는 유추능력을 쉽게 발동하지 못한다.
스마트폰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21세기의 우리 생활은 직접경험을 박탈하거나 현저하게 축소시키는 생활이다. 사물을 감각하고 대상과 만나면서 경험의 폭을 넓혀가는 생활이 아니라 언어적 이미지, 영상적 이미지를 획득하는 생활이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획득한 간접적 경험, 다시 말해 지식이나 이미지는 실제적인 모습과 접촉하며 확인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한 추상적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의 한국문학에 가져올 변화를 내 나름대로 예견해보면 이렇다.
먼저 과거 문학과 현재 문학 사이의 단절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경험에 의존하고있는 과거 작품들과 상상과 추상적 언어에 의존하는 현재 작품들 사이의 단절 현상이 두드러지게 될것이고, 다음으로 현재 작품들 사이의 소통과 상호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 뒤따를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질감 때문에 그럴 것이고 후자의 경우 각자의 경험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고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동일한 물질적 기반 위에서 펼쳐진 상상이 아니라 언어가 언어를 만들고 상상이 상상을 만들어 내는 추상적 작품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작품이 잊히고 사라지는 속도는 빨라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다음으로 기왕의 문학 장르가 해체되고 붕괴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현상이지만 최근의 작가들은 창작의 모티브를 고전적인 문학작품에 대한 독서나 자신의 실제적인 삶에서 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에게친숙한 음악, 영화, 가상현실 등의 세계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구하면서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창작의 방식은 일정한 기간 동안은 소설이나 시의 형태 속에서 이루어지겠지만 필연적으로 전통적 장르의 형태나 성격과 불화를 초래하면서 장르를 해체하고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실제의 현실이나 직접경험에 근거한 소설이 줄어들고 상상에 의존하는 판타지소설, SF소설, 무협소설 등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현실적 서사성을 상상적 서사성이 대체하면서 고전적 소설의 입지점을 축소시키는 모습이 소설의 몰락으로 이어질지 새로운 장르의 출현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나는 섣부르게 확신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의 문학 장르의 성격과 존재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 본질적 이유가 스마트폰 혁명으로 상징되는 우리 삶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직접경험의 소멸과 한국문학의 행로
글 홍정선 ㅣ 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1953년생
저서 『역사적 삶과 비평』 『신열하일기』 『카프와 북한문학』 『인문학으로서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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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폰이다.
21세기의 우리 생활에서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는 혁명적이다. 손 안의 컴퓨터라 부를 수 있는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물건을 구입하고, 길을 찾고, 음악을 듣는다. 스마트폰은 이제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애인이자 친구이며, 비서이자 선생님이다. 지식을 얻는 것도, 식사를하는 것도, 운전을 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경험의 상당부분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정보의 범주 속에 갇혀있다.
나는 20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현재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문학의 변화, 구체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사라지고 추상적인 언어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문학 자체가 야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변화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시간과 장소를 바탕으로 한 서사성이 사라지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나 감정의 세계가 늘어나는 일이라든가 시에서 고뇌어린 방황을 정련된 언어로 형상화하는 작품이 사라지고 순간적인 감정을 영상화시키는 언어가 증가하는 일 따위가 모두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우리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경험을 할 시간을 축소시키고 영상적 이미지와 언어에 함몰된 생활을 증가시키는 최근의 생활방식이 문학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책이나 영상을 통해 얻은 이미지는 삶을 통해 습득한 실제적인 경험보다 사실성과 신뢰도가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보고 감각하며 얻은 경험적 지식에 비해 간접적으로 획득한 지식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보리’라는 식물을 직접 키워본 경우와 책이나 영상으로 본 경우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직접 키워 본 사람은 보는 순간 ‘보리’를 바로 알아보지만 간접적으로 알고 알는 경우는 쉽게 확신하지 못한다. 요즘의 젊은 독자들이 과거의 문학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들은 ‘보리’라는 식물을 추상적 언어로는 잘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으로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그들은 김영랑의 시 「오월」에 나오는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는 표현을 생생하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갓 팬 보리 이삭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어려운데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가씨의 허리가 살짝살짝 드러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까닭이다. 이처럼 간접적인 지식을 자신의 살아 있는 체험처럼 사용하는 데에는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언어의 의미와 언어가 구성하는 이미지의 해독에 가장 먼저 작용하는 것은 우리의 직접경험이다. 경험 중에서 직접경험은 간접경험보다 훨씬 강력하게 이미지의 해독에 작용한다. 우리 속담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말은 직접경험의 이미지가 활동하는 모습을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화의 「나의 침실(寢室)로」에 나오는 “앞산 그리메가 도까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느끼고 이해하는 데에는 지능보다 경험이 우선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소를 먹이며 산등성이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았던 사람은 산 그림자가 소리 없이 길어져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모습에 대한 기억을가지고 있다. 또 그런 생활을 했던 사람은 아침 일찍 마을까지 내려왔던 산 그림자가 짧아지는 것을보며 들로 나갔던 기억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산 그리메가 도까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에 그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도시 사람은 이 시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을 듣기 전에는 유추능력을 쉽게 발동하지 못한다.
스마트폰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21세기의 우리 생활은 직접경험을 박탈하거나 현저하게 축소시키는 생활이다. 사물을 감각하고 대상과 만나면서 경험의 폭을 넓혀가는 생활이 아니라 언어적 이미지, 영상적 이미지를 획득하는 생활이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획득한 간접적 경험, 다시 말해 지식이나 이미지는 실제적인 모습과 접촉하며 확인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한 추상적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의 한국문학에 가져올 변화를 내 나름대로 예견해보면 이렇다.
먼저 과거 문학과 현재 문학 사이의 단절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경험에 의존하고있는 과거 작품들과 상상과 추상적 언어에 의존하는 현재 작품들 사이의 단절 현상이 두드러지게 될것이고, 다음으로 현재 작품들 사이의 소통과 상호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 뒤따를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질감 때문에 그럴 것이고 후자의 경우 각자의 경험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고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동일한 물질적 기반 위에서 펼쳐진 상상이 아니라 언어가 언어를 만들고 상상이 상상을 만들어 내는 추상적 작품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작품이 잊히고 사라지는 속도는 빨라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다음으로 기왕의 문학 장르가 해체되고 붕괴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현상이지만 최근의 작가들은 창작의 모티브를 고전적인 문학작품에 대한 독서나 자신의 실제적인 삶에서 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에게친숙한 음악, 영화, 가상현실 등의 세계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구하면서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창작의 방식은 일정한 기간 동안은 소설이나 시의 형태 속에서 이루어지겠지만 필연적으로 전통적 장르의 형태나 성격과 불화를 초래하면서 장르를 해체하고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실제의 현실이나 직접경험에 근거한 소설이 줄어들고 상상에 의존하는 판타지소설, SF소설, 무협소설 등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현실적 서사성을 상상적 서사성이 대체하면서 고전적 소설의 입지점을 축소시키는 모습이 소설의 몰락으로 이어질지 새로운 장르의 출현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나는 섣부르게 확신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의 문학 장르의 성격과 존재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 본질적 이유가 스마트폰 혁명으로 상징되는 우리 삶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