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마이너리티
글 박은정 ㅣ 번역가. 건국대학교 강사
다케다 다이준의 소설 『반짝이끼』
TV에서 어느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고통스럽다. 마치 세상이 다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면 예를 들면 죽을병에 걸린다든지 하는 상황이라면 실연이라는 것이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고 고전도 읽는 것이라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우리지만 때로는 막연하면서도 커다란 질문을 던져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케다 다이준(武田泰淳)의 『반짝이끼』는 그런 소설이다. 묵직하고 중후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봤던가? 이런 고민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작가는 일본 전후문학 최고의 실험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말을 들을 만큼 독특한 구성으로 자신만의 소설의 세계를 보여준다. 문예평론가 가와니시(川西政明)는 『반짝이끼』가 현실로부터 발현되어 허구에 다다르는 소설의 방법을 확립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일본 쇼와(昭和)문학사에 남을 명작이라고 했다.
|
이 작품은 사토 모리오(佐藤盛雄)의 『라우스(羅臼) 향토사』에 나오는 「난파선 선장의 식인사건」(1943년 홋카이도에서 발생한 조난 사건으로 선장이 동료의 인육을 먹고 혼자 살아남았다)을 바탕으로 했다. 1부는 기행문 형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2부에서는 그 인육사건을 문학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희곡을 선택한다. 소설에는 희곡이 나오기 전에 인육과 살인에 대해 정리한 부분이 있다. ‘인류가 왜 살인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인육에 대해서는 그 흔적조차 감추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인육’에 대한 어떤 선입견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머릿속 어딘가에서 기묘하게도 살인과 인육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이 정리가 된다. 소설에는 아이누 사람도 등장하는데 아이누인, 전쟁 등에 대한 다케다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적인 요소에 철학적으로 질문을 더하고 있다. 소설의 2부에서 법정에 서게 된 선장은 “나는 참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말을 한다. 참고 있을 뿐이라는 말은 살아남은 게 수치스럽고 괴롭지만 견디고 있다는 말이다. 평론가 가와니시는 이 “사는 게 수치스럽고 괴롭다”고 하는 자각이 작가 다케다 다이준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다케다가 1943년에 쓴 『사마천』이라는 소설은 “사마천은 살아남아서 수치를 당한 자이다”로 시작된다. 사마천의 『사기』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70열전 중 첫 장은 「백이열전(伯夷列傳)」으로 시작된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사기』를 처음 읽었을 때, 「백이열전」이 왜 맨 처음에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 적이 있었다. 백이는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무왕(武王)의 무력혁명에 반대하고 저항의 의지를 나타내고자 결국 동생 숙제(叔齊)와 함께 굶어죽었다는 얘기다. 참으로 현실성 없는 얘기라서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한테는 이 부분이 너무 재미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중국사상’이라는 수업을 들었을 때,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서 그리고 「백이열전」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자료 중 요시카와 코지로의 「상식에 대한 반항」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하늘(天), 즉 운명의 자의(恣意)로서 상식을 쉽게 정리해 버리는 경우가 있지만, 사마천은 실은 인간의 자의(恣意)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역사가는 상식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케다 다이준은 「백이(伯夷)부터 화식(貨殖)까지」에서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절망에 빠진 사마천은 극단적인 정신주의인 「백이열전」을 열전의 첫 장으로 했다. 하늘에 버림을 받게 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결국 자신을 믿어야하고 그것은 자신의 역사이고 『사기』인 것이다. 사마천은 스스로가 천도(天道)가 되어 역사를 조명한다. 그가 백이를 존경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는 백이의 경지를 스스로에게도 부여하고 백이의 결의에 뒤지지 않는 결의를 다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이에 있고 그게 늘 겪는 일상사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반짝이끼』에는 전부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4편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번째 작품인 「유배지에서」는 현대판 유배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번째로 「이질적인 존재」는 사회주의 학생이었던 주인공이 승려가 되기 위한 수행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바다의 향기」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이단아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들 단편의 주인공들을 보면 다케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케다는 이단아들, 혹은 마이너리티에 대해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이너리티라고 해도 그들이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윤리적 혹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4편의 단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과연 상식인 것인지, 또 그것을 강요해도 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다케다 다이준은 1912년 2월 도쿄출신으로 조센지(潮泉寺)라는 절에서 태어났다. 우라와(浦和)고등학교 시절에는 좌익그룹A에 가입을 했고,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반전운동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리고 1937년 10월에 소집되어 보병으로 중국 대륙에 파병되었다. 이 전쟁의 체험이 문학사상에 길이 남을 『사마천』을 쓰게 된 배경이 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살무사의 후예』, 『풍매화』, 『반짝이끼』, 『후지(富士)』, 『쾌락』 등이 있다.
※ 『반짝이끼』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가 번역을 완료하였으며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로 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