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표현의 자유와 비둘기 발

정신분석은 삶의 허약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성찰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논평자들의 세계

직접경험의 소멸과 한국문학의 행로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정 지 된 시 간 의 발 견

인도로 가는 길

바다를 닮은 소설가 한창훈

붕당을 넘어서서 임진왜란과 그 인물들을 증언하다

매일 태어나는 신화들의 강남

연기자 겸 해설가이자 무대감독, 무성영화 시대 변사

비슷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시 1 시 2

매일 건강과 시 리처드 스콧 씨에게

앞으로도 궁금한 개구리들

하프를 잃어버린 시인들 카프카의 가르마 이것은 김밥이 아니다 기이한 나무를 찾아가는 길

글밭단상

하프를 잃어버린 시인들

글 홍신선 ㅣ 시인. 1944년생
시집 『서벽당집』『겨울섬』『우리이웃사람들』『다시 고향에서』『황사바람 속에서』『자화상을 위하여』『우연을 점 찍다』
『삶의 옹이』, 연작시집 『마음경』 등

첫 번째

“하프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 이제 그의 앞에는 그의 노래에 취하는 새도 도마뱀도 없고 그의 노래에 취하여 춤추는 나무도 강물도 바위도 없다. 귀에 익은 하프 소리가 없는 오르페우스의 노래. 그 노래는 이제 그의 노래를 듣고 감동되던 모든 것들에게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다. 모두가 외면한다. 이미 그의 노래는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전봉건, 「하프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에서

하프를 잃어버린 시인. 반세기 전 이 나라 모더니즘 시의 앞줄에 섰던 시인 전봉건은 이렇게 오늘날 시인의 운명을 예견한 바 있다.
도대체 오늘날의 시인은 하프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린 것일까. 음악에 얹어 부르던 노래를 더 이상 시인이 선호하지 않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나는 전봉건 시인의 위 글을 읽으며 이런 저런 물음을 앞에 한다. 더욱이 시의 소통 문제를 두고 말들이 많은 작금의 우리 시 동네가 아닌가. 여기서 전봉건의 얘기를 조금 더 따라가 보자. 그는 시인들이 하프를 잃고 진출한 곳은 대뇌(大腦)의 전두엽 무대라고 한다. 그 옛날처럼 시인의 무대란 도마뱀이 출몰하고 바위가 웅크린 황량한 들녘도 아니며 숱한 군중들이 모인 노천극장은 더더욱 아니란다. 자신이 스스로 마련한 대뇌의 전두엽이 그 무대라고 한다. 이 자폐성 무대에 서서 부르는 노래란 그 누구에게도 전달될 턱이 없는 것 아닌가.
그는 고독한 자기 노래를 홀로 불러야 할 뿐이다. 누구에게나 귀에 익었던 하프 소리가 없을 뿐 아니라 노래도 지난날 듣던 그런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프로 표징(表徵)되던 낭만도 가슴에 품어 온누리에 토하던 서정도 벌써 거기엔 없는 것이다. 대신 대뇌의 전두엽 무대에서 그는 자기 노래를 장인(匠人)처럼 만든다. 아니 부른다. 오르페우스처럼 주변 뭇 것들의 박수소리에 취하는게 아니라 시를 만드는 창조의 쾌락과 만든 뒤의 성취감에 단지 무젖을 따름이다. 이들 시인에게 주어지고 누리게 되는 무슨 보상이 있다면 아마 이뿐일 터이다.
그러면 오늘날 시인이 만드는 시/노래는 과연 어떤 노래인가. 나는 그 노래는 두 충동들을 내부에 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새로움이란 충동이다. 따지자면 예술치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충동을 지니지 않은 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모험이 현대시에 있어 왔는가. 누구는 생금처럼 거친 이미지들이 매장된 울창한 삼림인 무의식 세계를 두루 탐험했고 누구는 시의 기존 경계표지판을 열심히 옮기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당대 정신의 정점(頂點)을 오르려는 욕구이다. 이는 세계와 사람에 대한 해석을 당대 누구보다도 가장 현저하게 해내려는 충동일 것이다. 오늘에 와서 이 두 가지 충동이 결핍된 시인의 노래란 기실 얼마나 공허한 것이랴.

얼마 전 젊은 편집자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이즘의 글 얘기들을 주고받은 끝이었다.
“이제 긴 글은 안 읽힙니다. 일단 분량이 많다보면 읽을 생각들을 안 해요. 골치 아픈 건 물론이고 그 걸 읽을 만한 지구력이나 집중력들이 없는 겁니다.”
“문장도 이제는 속도감 있게 읽혀야 합니다. 될수록 짧은 단문들이라야 하는 거죠. 긴 문장, 이를테면 복문이나 혼문으로 된 건 아니 옳습니다인 겁니다.”
그런 얘기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나는 딴에 쓴 소리를 한답시고 “그건 독해력이 바닥이란 얘기구먼. 허기사 누구는 신 문맹(文盲)시대라고도 해 쌓드만” 공허한 소리만 내뱉고 말았다.
그랬다. 긴 글보다는 단문만을, 웅숭깊은 생각보다는 경쾌한 느낌만을 선호하는 그 정신의 자리에 ‘대뇌의 전두엽’이란 무대가 어디 당키나 한 소릴까.
이제 하프를 잃어버린 시인은 홀로 제 흥에 겨워 노래 부를 뿐이다. 그러나 정점의 정신을 새롭게 탄주하려는, 아니 탄주하는 한 그는 인문(人文)의 중심에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서 있을 터이다. 아니 문학의 에센스로 시는 남아 있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