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카프카의 가르마
글 류신 ㅣ 평론가, 중앙대학교 유럽문화학부 교수. 1968년생
저서 『다성의 시학』 『수집가의 멜랑콜리』 『장벽 위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 『독일 신세대 문학』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등
어딘가 침울해 보이는 카프카의 사진에서 정갈하게 갈라진 앞가르마가 유독 눈에 띈다. 젊은이들이 보면, 동안 열풍에 휩싸인 이즈음의 미적 트렌드에 역행하는 촌스러운 의고풍 헤어스타일이라고 난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철훈 시인은 미적 허세가 없는 카프카의 반듯한 머리 모양에서 그의 위대함을 간파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
밤에는 글 쓰는 고독한 작가
사진 속 카프카의 가르마는
내가 보는 시선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2대 8로 단정히 나뉘어 있다
보험회사 직원이 2라면
작가가 8일거라는 생각
밥벌이와 영혼의 관철이 2대 8일 거라는
생각의 연장이 카프카의 사진이다.
- 정철훈, 「카프카의 가르마」 중에서
카프카는 전형적인 ‘주경야독’형 작가였다. 낮엔 보험회사 직원으로서 주판알을 튕기며 생계를 꾸렸고, 밤엔 작가로서 만년필을 움켜쥐고 불면의 밤을 새웠다. 출근하면 성실했고 퇴근 후엔 필사적이었다. 그는 생활을 위해 창작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아실현을 위해 일상의 답답함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카프카의 진정성은 이 모순의 긴장을 체화하는 뚝심에 있었다. 그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은 꿈의 미로를 닮았지만, 그만큼 현실적인 생활인도 없을 뿐더러 그의 소설만큼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철저하게 캐물은 작품도 드물었다. 카프카의 불멸의 소설은 낮과 밤, 사실과 환상, 생존과 실존, 비애와 몽상의 단애를 비뚤배뚤하게 오가며 남긴 고투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2대 8로 단정히 나눠진 가르마. 그렇다. 카프카의 가르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밥벌이에 비해 네 배는 더 무겁다는 등식을 상징한다. 도전의 열정이 현실 속 웰빙보다 네 배는 더 커야한다는 정언명령이 2대 8 황금 비율의 전언인 셈이다.
거울에 비친 내 헤어스타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카프카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르마가 나 있다. 내 영혼의 정수리에는 현실과 꿈이 8대 2로 무기력하게 갈라져 있는 것이다. 꿈이 현실을 견인하지 못하고 현실에 편입된 형국이다. 제도권에 편입된 대학교수라는 밥벌이가 8할이라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지적 열망은 2할에도 못 미친다. 현실의 리얼리티를 직시하고 존중하되 마음껏 현실의 굴레에서 이탈하는 해방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마음뿐이었다. 고백컨대, 생계와 승진을 위해 논문을 작성하는 궁핍한 전문 기능인 역할이 9할에 육박한다면, 독자의 영혼을 울리는 살아있는 글을 조탁하는 인문학자의 몫은 1할에도 못 미친다. 정철훈의 「카프카의 가르마」는 이렇게 갈무리된다.
카프카는 고독한 불면의 밤을 지새면서
여러 번 타오르고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문장을 불살랐다가 다시 소생시키는 거대한 불을 만났을 것이다
카프카의 밤은 격리되어 있었다
그 긴 밤의 어느 순간에 상처가 터져버린 것이다
밤이나마 밥벌이를 잊을 면죄부를 주는 건 불의 제의다
내 안에서도 불이 일어나 모든 상념을 태워버리길
영혼의 궁핍을 깨닫기까지
밤이여, 새지 말기를
불혹의 중반을 넘은 나도 이제는 가르마의 방향을 바꾸고 싶다. 밥벌이를 잊을 면죄부를 모색할 시기가 온 것이다. 고독한 불면의 밤, 카프카가 독대했을 “불의 제의”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르마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가르마를 바꾸면 삶이 변한다.
